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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모방 사이, 라이선스 뮤지컬
김유영 칼럼니스트  |  yu207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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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1  00: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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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선스 뮤지컬이란?

[디아티스트매거진=김유영] 라이선스 뮤지컬이란 국내 제작사가 원제작자와 저작권을 계약하여 로열티를 지급하고 그 외 기획, 제작, 유통 등의 전 과정을 거쳐 국내에서 공연을 올리는 뮤지컬을 뜻한다. 예를 들어, 영국 웨스트엔드의 최장기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을 한국어로 번안하고 국내 배우를 기용하여 공연을 올리면 이를 라이선스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포스터

 

한국 공연계 속 라이선스 뮤지컬의 현황 및 성찰

현재 한국 공연계에는 라이선스 뮤지컬이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수입성과 작품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이상적인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워낙 유명하여 대다수가 들어봤을 법한 고전적인 작품 외에도, 한국 대중에게는 생소하나 본 나라에서는 인기가 많은 작품, 근래에 브로드웨이를 뜨겁게 달군 최신작 등 수많은 종류의 작품들이 밀려오고 있다. 이는 보다 다양한 라이선스 작품을 올리고자 하는 국내 제작사들의 욕구가 반영된 추세이다. 그러나 요즘 제작사들은 작품 자체 및 현황에 대한 통찰 없이 서로 앞 다투며 해외 뮤지컬의 판권을 사고 옮겨오는 데 급급하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라이선스 뮤지컬은 그저 외국의 작품을 베낀 복사본이 될 수밖에 없다. 원작을 따라하는 데 안주한 복사본은 관객에게 어떠한 매력도 어필할 수 없다. 오히려 어색한 모방에 관객은 눈살을 찌푸리고 결국 이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흥행 및 작품성을 가르는 기준

관객을 만족시킬 라이선스 뮤지컬을 올리기 위해선 원작을 옮기는 것에서 나아가 충분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에 알맞게 각색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원작의 작품성을 그대로 구현해야 한다. 애초에 라이선스 뮤지컬은 기존에 승산이 있다 평가된 타국의 작품을 옮겨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원작의 작품성을 훼손하지 않고 그 뼈대를 잘 담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악과 극작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을 들여오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 뮤지컬 작곡가와 극작가 등을 위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작사는 이미 음악성을 인정받은 넘버들로 구성됐으며 극적 전개가 촘촘한 해외 뮤지컬에 눈길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관객 역시 라이선스 뮤지컬을 감상할 때 기존 작품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갖고 공연을 관람한다. 따라서 라이선스 뮤지컬을 올릴 시에는 기존에 높게 평가받던 음악성과 극의 완성도를 재현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선 안 되고 재창작의 여지를 남겨놓아 원작과는 차별화된 한국적 특색을 담아야 한다. 아무리 원작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한국 공연의 개성을 살릴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다. 고로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고려하여 재창조를 시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원작 판권을 확인하여 재창작의 범위를 확인해야 한다. 원작 판권에 따라 라이선스 공연에 개입하는 정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라이선싱 관여의 정도가 크므로 재창작이 가능한 범위가 좁다. 이에 반해 유럽의 작품들은 라이선싱 관여의 정도가 크지 않아서 재창작의 범위가 비교적 넓다. 원작 판권의 라이선싱 관여 정도에 따른 재창작의 허용 범위를 확인한 후 이를 고려하여 새롭게 각색을 시도해야 한다. 본 작품의 정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국 관객에게 더욱 울림이 큰 공연을 만들 수가 있다.

 

원작의 재현과 재창작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키기 위해선 충분한 연구와 해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극에 관해 꼼꼼히 연구한 후 어디에 초점을 맞춰 보여줄 것인지, 어떻게 색다른 방법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탐구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야 원작에서 어느 부분을 그대로 담고 어느 부분을 바꿔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영역은 바로 번역과 번안이다. 원작의 대본과 가사를 우리나라 말로 옮길 때, 대다수의 공연들은 원곡의 의미와 음절 단위를 살리는 데에만 초점을 둔다. 이에 따라 탄생한 대본과 가사는 어색한 번역 투와 직역으로 관객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이러한 난국을 피하기 위해선 원어와 우리말, 두 언어 간의 차이를 파악하고 그 간극을 연결시켜줄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원어의 의미를 최대한 담되 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닌 우리말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노랫말을 탄생시켜야 한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이처럼 꼼꼼한 연구를 토대로, 원작의 정통성을 보존하며 독창적인 재창작을 시도했는지에 따라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라이선스 뮤지컬은 좋은 작품을 보고자 하는 우리나라 관객의 욕구를 채우고 더 많은 관객을 이 분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성공적인 예

   
한국 라이선스 공연 <엘리자벳>의 포스터

라이선스 뮤지컬의 성공적인 예로 2012년에 초연을 올린 뮤지컬 <엘리자벳>을 꼽을 수 있다. 제 6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8개 부문의 상을 싹쓸이해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으며 JYJ의 김준수, 옥주현과 같은 호화 스타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던 뮤지컬이다. <엘리자벳>의 원작은 92년 빈에서 초연을 올린 독일어권 뮤지컬이다. 당시 초연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이에 힘입어 현재까지도 계속 공연이 오르는 중이다. 2012년에는 20주년을 맞이하며 독일의 저명한 쇼 프로그램인 “헬레네 피셔쇼”에서 엘리자벳을 연기한 각국 배우들을 초청하여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여기에는 옥주현 배우가 우리나라의 대표로 다른 나라 배우들과 함께 <엘리자벳>의 대표곡을 부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의 초상화

 

<엘리자벳>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이자 역대,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왕비로 꼽히는 엘리자벳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다. ‘황후’라는 굴레와 황실의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구하던 그녀의 내면에 공감을 유도하면서도 무책임한 정치인,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면모를 함께 보여준다. 또한 ‘죽음’이라는 초월적 존재를 캐릭터로 삽입하여 죽음을 갈망하면서도 이에 저항하는 엘리자벳의 운명을 부각시킨다. 그와 함께 제국이 몰락해가는 시대적 격동기의 세기말적인 모습을 맞물려 보여준다. 이 작품은 극의 정서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각국의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았다. 특히 유럽 뮤지컬계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실베스터 르베이-미하엘 쿤체 콤비의 음악은 가히 명작이라 할 수 있다. 

   
원작 뮤지컬 <엘리자벳>의 포스터 이미지 중 하나

유럽에서는 명성을 떨쳤으나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생소하던 <엘리자벳>이 2012년 한국에 입성했다. 그리고 이 공연은 엄청난 흥행몰이를 했고 원작과 또 다른 매력을 뽐내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공연의 대표적인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원작의 음악성을 수려하게 재현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인물의 정신세계를 묘사하면서도 서사의 흐름과 인물구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배우들은 이러한 음악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입혀 캐릭터를 구현했다.

   
©EMK Musical Company, Musical ELISABETH, 2012, Blue Square, Korea

특히 엘리자벳을 연기한 옥주현은 자유분방하던 한 소녀가 황후가 되며 자유를 박탈당하고 광기의 캐릭터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죽음 ‘토드’를 연기한 김준수는 자신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음악에 녹아들게 해 초현실적인 죽음의 유혹을 현실성 있게 그려냈다. 엘리자벳을 죽인 무정부주의자 루케니를 연기한 박은태는 캐릭터의 사이코패스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하여, 엘리자벳을 비아냥거리며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해설자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리고 이 세 배우는 그 해 뮤지컬 시상식에서 나란히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EMK Musical Company, Musical ELISABETH, 2012, Blue Square, Korea

여기서 나아가 공연은 원작과는 다른 한국의 맞춤 요소를 넣어 새롭게 재창작을 시도했다. <엘리자벳> 원작의 창작자들은 라이선스 공연을 올리는 국가마다 각자의 문화적 특성에 맞게 극을 변형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재창작이 가능했다. 우선 한국의 <엘리자벳>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을 과감히 제거하여 원작의 역사적 측면을 약화시켰다. 주제의 포커스를 사적인 영역으로 맞추고 극이 인물 간 관계와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방향 중심으로 전개되도록 그 흐름을 바꿨다. 이에 따라 역사적 서사가 약해진 가운데, 무대연출에 시각적 화려함을 더하여 그 빈자리를 메웠다. 기존 무대에서는 볼 수 없던 거대한 무대 장치들, 토드의 곁을 맴돌며 춤을 추는 죽음의 천사들, 밝은 조명과 화려한 색깔의 의상들은 관객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EMK Musical Company, Musical ELISABETH, 2012, Blue Square, Korea  
 

위와 같은 무대 연출은 볼거리를 원하는 관객의 바람을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극의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회전 장치와 리프트를 활용한 입체적인 무대 구도는 인물의 내적갈등과 혼란스러운 시대상황을 시각화한다. 가장자리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2중 회전 무대는 절정으로 치닫는 인물의 감정 및 카오스적인 시대의 모습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또한 거의 모든 씬에 등장하는 죽음의 천사들은 어디든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위압감과 존재감을 극대화시킨다. 이에 따라 죽음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엘리자벳의 상황 역시 부각된다. 원작에 비해 화려해진 색 배치와 밝은 조명은 극 속 시대배경의 퇴폐적인 분위기와 부조화를 이룬다. 어둡고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원작과 달리 한국 공연은 화려한 무대와 위태로운 시대 간의 간극을 형성하여 시대가 내포한 모순을 표면화한다. 한편 황실 장면에서 두드러지던 화려한 색감은 엘리자벳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면이나 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후반부의 장면에선 전반적으로 어두워지며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무대의 변주는 엘리자벳의 고독과 절망감을 강조한다.

   
©EMK Musical Company, Musical ELISABETH, 2012, Blue Square, Korea

원작과 달라진 극 전개와 무대 연출은 모두 ‘엘리자벳’의 위태로운 삶을 형상화하는 장치들로 관객이 그녀의 내면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이로써 “엘리자벳”이라는 인물과 생소했던 우리나라 관객은 우리와 동떨어진 여인을 지켜보기보다 굴곡졌던 한 여성의 삶을 마주한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엘리자벳>은 원작의 장점을 살리되 한국 고유의 정서를 반영하며 원작과는 차별화된 연출을 선보였다. 이로써 <엘리자벳>은 호평을 받았고 매진 신화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2012년에 초연을 올린 <엘리자벳>은 2013년에 재공연을 올렸으며 그 성원에 힘입어 2015년, 올 해 또 공연이 오를 예정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이 나아가야 할 방향

라이선스 뮤지컬은 원작에 대한 모방과 새로운 창조라는 두 요인의 균형이 맞을 때 가장 모범적인 재창작물로 거듭날 수 있다. 원작을 베끼기에 앞서 주체적인 태도로 작품을 연구하여 각색해야 할 부분과 원작에서 그대로 살릴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 없이 자의적으로 원작을 바꿔 작품성을 훼손하거나 원작을 어설프게 따라하다가 개성을 잃는다면 라이선스 뮤지컬에 대한 반감만 자아낼 것이다. 실제로 라이선스 뮤지컬은 해외작품에 대한 단순 모방이므로 창조성과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많이 받아왔다. 이러한 비난을 면하려면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우리의 맛을 더하여 모사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작품의 틀은 같다 해도 이를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므로 라이선스 뮤지컬 역시 예술적인 가능성이 무한하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분명 우리나라 뮤지컬계의 견고한 초석이 될 수 있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00년대 초반에 대형 라이선스 작품들을 들여오면서 고공의 성장을 보였다. 이후 공연이 오르는 라이선스 작품 수가 급증하며 창작 뮤지컬이 부재하는 한국 공연계의 비대칭적인 구조에 대해 많은 우려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우려가 라이선스 뮤지컬을 비판하는 화살로 날아오기도 했다. 한편 라이선스 뮤지컬의 성장을 발판으로 삼아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창작 뮤지컬들이 잇달아 등장하기도 했다. 라이선스 뮤지컬의 발전으로 자본을 확보하고 더 많은 관객과 신뢰를 쌓으며 보다 획기적인 창작 뮤지컬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라이선스 뮤지컬은 창작 뮤지컬의 기반 형성에도 크게 일조할 수 있다. 앞으로 새로 등장할 라이선스 뮤지컬 작품들은 재창작물로서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실현함으로써 한국 공연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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