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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빙 프로젝트 : '작가탐구'] 02. 요새 젊은 것들
문희경 칼럼니스트  |  sinclair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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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4  21: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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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규(요새 젊은 것들)

[디아티스트매거진=문희경]“요즘 젊은 것들은 감사할 줄을 몰라. 맨날 불평만 하고 말이야. 그 정도가 힘들어서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우리 자랄 때처럼 고생을 해봤어야 알지!”

 

시대를 막론하고 몰이해에 기반을 둔 세대갈등은 마치 사회를 견인하는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존재한다. 가만히 보면 세상의 논리구조란 너무도 단순해서, 그저 지키려는 자와 깨부수려는 자 사이의 줄다리기만으로 모든 역사를 다 설명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아이러니한 점은 오늘날 ‘꼰대’로 불리는 기성세대의 상당수가 한 때는 또 다른 ‘꼰대’에 맞서 싸운 ‘젊은 것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와 대립각을 세웠던 젊은 놈이었고,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웠던 젊은 놈이었으며,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이 묘한 순환고리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불멸의 저주와도 같은 동서고금의 잠언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너도 자식 한 번 낳아봐라 인마.’ 흥, 까짓거 애 안낳으면 그만 아니야. 했는데 둘러보니 애가 없는 꼰대들도 무척 많다. 아뿔싸. 덜컥 겁이 난다. 가만 보자, 나도 이대로 나이 먹으면 저렇게 되는 거 아니야...?

 

예술 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걱정이 남의 일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싶어서 예술학도가 되었건만, 청년 김의규가 맞닥뜨린 예술‘계’란 그 어느 곳 못지않게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인정받는 예술과 그렇지 않은 예술 사이에는 분명하게 누군가가 그어놓은 기준선이 존재하는 듯 했다. 문제는 여느 전공자들이 그렇듯 스스로가 그러한 시스템에 속해있으면서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애초 살아남는 자는 한정되어있기 마련인 제도권의 레이스 안에서 예술의 본질에 대해 묻는 일은 공허했다.

 

그래서 그는 이런 흐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만의 트랙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한다. 독립 미술 그룹 <요새 젊은 것들>의 탄생이다. 망원동 수산시장 2층 창고 건물을 작업실 삼아 6개월간의 실험 전시를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탓에 그 짧은 기간 동안 좌충우돌 멤버들도 여럿 바뀌었고, 건물주가 마음대로 철거를 결정하는 ‘갑질’도 경험했다. 8월 전시를 끝으로 새로운 작업실을 물색하고 있는 그를 영등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기성세대가 되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꼰대가 되지는 않는다고, 자기 자신부터 그렇다는 믿음을 작업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했다.

 

   
▲ '요새 젊은 것들' 팀 디렉터 김의규 / ⓒ문희경

 

Q1.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우리 서로 인사부터 할까요? ‘요새 젊은 것들’에 대해 궁금해 하실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의규님은 누구이고, ‘요젊것’, Young Dudes Club은 어떤 팀인가요? 현재 소속되어있는 멤버들에 대한 소개도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A1.

네, 안녕하세요. 우선 저는 사진을 전공 했고요. 세부전공으로는 복합매체라는 것을 공부해서, 사진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가지고 이것저것 작업 하고 있는 ‘김의규’라고 합니다. 그러한 개인작업 외에는 좀 더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친구들과 함께 “요새 젊은 것들(Young Dudes Club)”이라는 팀을 결성해서 운영하고 있고요. “요새 젊은 것들”은 미술을 기반으로 하는 젊은 작가들로 이루어진 아티스트 그룹인데요. 멤버는 현재 디렉팅과 팀 작업의 전반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저와 순수회화를 전공한 친구(윤서현), 선적인 드로잉을 맡고 있는 친구(김수빈) 그리고 사운드아트를 담당하는 형(이용우) 이렇게 총 네 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Q2.

그룹 이름이 상당히 도발적입니다. 사실 제가 이번 인터뷰를 결심하게 된 계기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이름 때문이었는데요. 팀 로고를 보는 순간 ‘어, 얘네 뭐하는 애들이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척 궁금해지더라고요. (웃음) 굉장히 단호한 ‘의지’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단순히 ‘개성 있다’ 정도가 아니라, 이름만으로도 그들의 작업과 예술관이 어느 정도 그려지는 듯한 그런 느낌 있잖아요. ‘요새 젊은 것들’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도와 의미가 담겨있나요?

 

A2.

사실 처음 이름을 구상하던 시기에 “요새 젊은 것들”외에도 후보로 생각했던 이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지금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다 비슷한 느낌의 이름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너무 뉘앙스가 강하거나 혹은 너무 약해서 마음에 차지 않는 거에요. 여기서 뉘앙스가 ‘강하다’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너무 지나치게 도발적이어서, 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그러니까 우리 ‘젊은이’들이 어떤 사회적인 약자로서 비춰지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걸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는 듯한 느낌에서 오버스러운 이름들이 있었거든요. 후보 중에. 그래서 당시에 초창기멤버로 들어와 있었던 민성이라는 친구랑 같이 ‘젊음’이라는 키워드가 중심축이 되면서도, 그렇게 너무 전투적이거나 오버스럽지 않은 이름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결정된 게 “요새 젊은 것들”이었어요.

구체적인 이유들을 좀 더 말씀드리자면 두 가지 정도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는, 보통 ‘어르신’ 혹은 ‘어른’이라고 칭하게 되는 분들이 있잖아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위치에 올라있는. 그 분들이 우리세대를 못마땅하게 비꼬아서 부르는 말로 요새 젊은 것들, 피도 안마른 것들. 이런 표현들을 쓰시곤 하는데. 사실 듣는 우리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 있는 표현이잖아요? 무시하는 표현이니까. 그래서 저는 이런 부정적인 표현들을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욱하고 핏대를 세운다기 보다는 ‘그래, 우리 젊다. 그래서 뭐?’ 약간 이렇게. 기성세대의 몰이해가 담겨있는 이 표현을 우리 스스로가 먼저 적극적으로 인정해버리면, 그건 욕이 아니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젊음을 치부삼아 꼬투리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요즘 젊은 것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작업을 한다’라고 당당하게 보여준다면, 그런 사람들도 할 말 없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요새 젊은 것들”이라는 이름의 컨셉을 잡게 해준 출발점이 되었고요.

거기서 좀 더 들어가 보자면 한편으로는, 제 자신이 나이 들어서 그런 ‘어르신’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요. 배타적이면서 보수적이고 틀에 박혀있는 그런 무리.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그런 어른 말이에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는 젊으니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즉 아직 그런 기성의 관습과 생각에 물들지 않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들은 아마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그런 이름을 지었던 것 같아요.

 

 

Q3.

이름이 워낙 독특하다보니, 팀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더라고요. 이번 인터뷰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지난 6월, 매체 [월간 디자인]에 단신으로 실린 ‘요새 젊은 것들’의 소개 기사를 읽었는데요. 전공으로 예술을 선택하고 공부하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회의감이 그룹의 모토가 되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의규님 스스로도 전시 팸플릿이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팀에 대한 소개를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설명하시는 내용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 소개문 마지막 문장이 이렇잖아요, ‘우리는 창작자로서 무심코 받아들이던 것들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 기존의 예술 제도에 종속되지 않기 위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 ‘작가의 신분으로 자유와 자립을 추구합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생각이 무척 많아지더라고요. 지금껏 한 번도, ‘창작자’의 시점에서 예술을 고민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창작자로서 답답함을 느끼는 ‘기성의 예술제도’란 무엇이고, 또 그것으로부터의 자유와 자립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6개월 전 “요새 젊은 것들”을 결성하던 시점의 고민들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 김의규씨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그룹 '요새 젊은 것들' 소개문.

 

A3.

무척 다양하고 복합적인 계기들이 있었는데요. 우선 저는 아시다시피 사진을 전공했는데, 이 ‘사진’이라는 장르 자체가 미술이라는 큰 영역 안에서 유독 더 심하게 틀에 박혀있는 분야거든요. 회화라던가 조소 같은 다른 분야들의 경우는 작품제작에 쓰이는 재료나 도구만 하더라도 비교적 그 선택지가 넓잖아요. 반면에 저희는 어찌됐건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서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사용가능한 도구 자체가 한정되면서 생겨나는 필연적인 한계들. 이게 첫 번째였고요.

 

또 하나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갖는 특징 중에 하나가 ‘복제성’인데. 쉽게 말해서 마음만 먹으면 그게 몇 장이건 원하는 만큼 계속해서 똑같은 사진을 뽑아낼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 너무나도 빤하고 단순한 사실을 쉬쉬하는 거에요. 작업마다 ‘에디션(Edition)*’이라는 걸 정해놔요. 가령 잘 찍힌 작품이 하나 나오면, 이것을 딱 열 장만 뽑을 수 있게 하는 거죠. 작품의 희소성을 위해서. 이런 게 저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그럼 수 백, 수 천 장씩 뽑아낸 사진은 예술작품으로서 가치가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요.

 

그런가하면 어떤 공모전이나 실기시험 등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제작할 때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무조건 15장에서 20장 사이의 시리즈물 형태로 제출해야 돼요. 사실 단편적으로만 생각해봐도, 유명한 사진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한 장의 사진을 생각하잖아요. “○○연작”이라는 이름의 작업 전체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저는 그 이유가 사진은 영화의 쇼트 개념과는 다르게 각각의 독립적인 화면 안에 작가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회화 같은 다른 분야의 미술작품들처럼. 그래서 꼭 20장까지 찍지 않더라도 단 한 장만으로 주제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혹은 세 장, 다섯 장, 이렇게 다양할 수 있는 건데. 왜 매번 그렇게까지 많이 찍어야 하나, 하는 생각? 이런 식의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들로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그 의심의 범주가 넓어지기 시작하면서 더 너머의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 거죠.

 

   
▲ 오민성, '4000장에 45000원', 420 x 252cm, color laser print, 2017 / <월간 작업실> 6월 ⓒ오민성
   
▲ 김의규, '올랭피아', 248 x 76 x 208cm, 혼합재료, 2017 / <월간 작업실> 6월 ⓒ김의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 역시도 처음에 예술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예술가’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멋있고, 무엇보다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는데. 실제로 예술학도가 되고 나서 보니까, 방금 전에 말씀드린 내용처럼 예술 안에서조차 자기가 전공하는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발목을 잡혀버리는 거에요. 제가 아까 처음 질문에 저 스스로를 ‘사진 전공한 김의규입니다’라고 소개했는데, 이 ‘전공’이라는 단어만 해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사진을 ‘전공했다’고 한다면 적어도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제가 프로페셔널한 사람으로 인정되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전공이 ‘사진’이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영역에 끼어드는 것은 터부시되는, 그런 한계가 되기도 해요.

 

가령 사진공모전이 아닌 다른 미술 분야의 공모전에 출품하려 할 때, 제가 내는 작품이 사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진 전공자라는 이유만으로 최종심사에서는 제외된다던가 하는 식의 경향들이 있는 거죠. 각자의 전공에 따라 인정받을 수 있는 창작의 범위 역시 한정되는 듯한. 또 단순히 전공뿐만이 아니라 출신학교의 네임 밸류(name value)나 관련 전공의 석/박사 학위 여부 같은, 예술의 외적인 부분들도 제도권 안에서 작가의 위상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는 것 같고요.

 

그런 생각들을 쭉 해오다가, 마지막으로 팀을 결성하게 만든 가장 궁극적인 물음이 생겼는데요. ‘한국에서 미술은 왜 영화나 음악처럼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지 못할까’에 대한 거였어요. 음악과 영화도 결국 예술의 한 장르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즐기고 있잖아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미술은 그렇지 못하니까요. 대중과 미술을 멀어지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비싸다, 어렵다, 같은 ‘선입견’도 있을 수 있고요. 영화나 음악 같은 경우에는 상업영화와 대중음악 외에도 ‘젊음’이라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잘 자리 잡았고, 그렇게 나온 게 독립영화, 독립음악(인디음악)이잖아요. 소위 ‘인디씬’이라고 불리는 생태계가 열악하게나마 존재하는데. 왜 ‘독립미술’이라는 건 없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사실 저희처럼 이렇게 무명으로 미술 작업하는 친구들이 엄청 많거든요. 아마 음악만큼 많을 거에요. 그런데 그 많은 젊은 창작자들의 작업이 하나의 문화장르로서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애초에 등용문에 대한 기회 자체도 너무 적은데다가, 그렇게 ‘성공’이라고 불리는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야하는 경로마저도 어떤 제도적인 틀로 정해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경쟁구도의 힘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나만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제도권 안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는 인식이 미술인들 사이에 강하게 박혀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서로 꾸준하게 교류할 여력이 잘 없는 거죠 환경적으로.

 

음악 같은 경우에는 ‘버스킹’이라는 것도 있고, 거리 어디서든 노래를 부르면 그게 음악이 되는 거잖아요. 그게 자기작업을 하는 건데, 반면 미술의 경우는 아예 ‘공공미술’의 영역으로 빠지지 않는 이상 공간적으로 받는 제약이 분명히 있거든요. ‘전시’라는 형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갤러리나 미술관이라는 곳을 통해야하고, 전문 큐레이터의 기획을 거쳐야하는. 그런 일련의 관습이 자연스러운 시스템처럼 되어버린 거죠. 우리는 어떤 공인된 공간이 꼭 필요한 장르다, 라고 말씀을 드려야 될까요. 그래서 월간 작업실이라는 프로젝트를 처음에 했었던 거에요. 굳이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음악하는 친구들이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듯이 우리는 우리 작업실에서 전시를 하겠다는 의도였죠.

 

그런 물음들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저희 ‘요새 젊은 것들’이 팀으로서 바라보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미술인 친구들까지 합심해서 어떤 ‘인디 미술씬’이라는 걸 성립시키는 거에요. 물론 이런 생태계가 창작자 입장에서만 애쓴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저희를 시작으로 이런 시도들이 계속 생겨나서 많은 사람들이 꼭 대림미술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곳에 찾아가지 않더라도, 또 ‘거리축제’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 속, 골목 사이사이에서 쉽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형태의 작업들을 지향하기 때문에 소개문의 맨 마지막 문장에 ‘실험적인 프로젝트’라는 설명이 들어갔던 거고요.

 

   
▲ <월간 작업실> 8월 "The past room" 전경. ⓒ김의규
   
▲ 김의규, 'Witness : I'm sitting in a tin can', 비디오, 2017 / <월간 작업실> 8월 ⓒ김의규

 

Q4.

방금 답변해주신 내용이 아마도 지금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들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열쇠가 될 것 같네요. 이제부터는 전시 얘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올 해 3월부터 시작한 <월간 작업실> 프로젝트가 지난 8월 전시를 마지막으로 끝났죠. 6개월이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조금은 아쉬움이 듭니다. 소설에 비유를 한다면 마치 중요한 사건이 시작될 것 같은 장면부터 이야기가 끝나버린 느낌이랄까요. 어딘지 황급히 정리되는 듯해서 그 이유가 궁금했던 차에, 계약기간 도중에 바뀐 건물주가 작업실을 철거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동안 <월간 작업실> 전시들을 통해 꾸준히 고민하고 문제제기 해왔던, 일상 속에 존재하는 모종의 정치적 관계 내지는 정치적 상황이 팀의 예술적 보루였던 망원동에서 또다시 발생했다는 사실이 씁쓸하더라고요. 마치 ‘젊은 예술인’으로서 싸우고 있는(혹은 싸워내야 하는) 대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 Jeff Wall, 'The Destroyed Room', 1978 / ⓒJeff Wall

 

하지만 그런 불편하고 속상한 상황을 ‘우주여행’이라는 패러디적인 방식의 전시로 풀어낸 점은 재밌었어요. 특히 전시실 입구에 설치되어 있던 두 점의 비디오 아트는 굉장히 유쾌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기록을 남기는 우주비행사 컨셉으로 녹화화면 안에 의규님이 나와서 독백하는 작품(Witness : 'I'm sitting in a tin can')은 이상한 비장함 같은 게 느껴져서. (웃음) 하지만 전시 연출의 모티프가 되었던 'Jeff Wall'의 사진작품 “파괴된 방”과 본 전시 사이의 상관관계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명되지 못했던 점은 살짝 아쉬워요. 어쨌거나 ‘요젊것’의 1부를 마무리하는 피날레 전시였던 만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철거하는 과정에서도 멤버 분들 모두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소회를 좀 듣고 싶습니다.

 

A4.

사실 이 <월간 작업실>이라는 프로젝트 자체가, 제가 기획하긴 했지만 굉장히 빡세더라고요 (웃음). 한 달 안에 구상부터 작업을 거쳐서 디스플레이와 전시 팸플릿 제작까지 해야 하니까. 그래서 솔직히 저나 멤버들이나 첫 3월 전시부터 8월 마지막 전시까지 쉴 틈이 없었어요. 그랬던 데다가 특히 지난 7월 같은 경우는, 저를 포함해서 멤버들 모두가 전시가 끝난 후에 후유증이 굉장히 심했어요. 그 전시가 이전까지의 전시들에 비해서 저희한테 의미가 좀 남달랐거든요. 그 전까지는 전시들의 내용이 주로 외부의 어떤 대상을 향해서 밖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었는데, 7월 전시는 그 반대로 각자 자기 자신한테 속삭이는 듯한 전시였거든요. 저희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 고백하는 전시.

 

   
▲ <월간 작업실> 7월 : "나의 그림자는 나의 그늘로 드리우고" / 사진 ⓒ문희경
   
▲ <월간 작업실> 7월 : "나의 그림자는 나의 그늘로 드리우고 / 사진 ⓒ문희경
   
▲ <월간 작업실> 7월 : "나의 그림자는 나의 그늘로 드리우고" / 사진 ⓒ문희경

 

어떻게 보면 치부를 드러내는, 조금 부끄러울 수 있는 작업이었는데 신기하게 그 전시가 다른 전시들보다 월등하게 반응이 좋았어요, 관람객 분들한테도. 그래서 다들 약간 그 행복한 느낌에 취해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전시 기획을 하면서도 거의 8월 둘째 주까지 7월 전시에 대한 여운을 함께 안고 있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당장 8월 전시가 끝나면 작업실을 잃게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집주인과 세입자’ 혹은 ‘갑과 을’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비참함에 빠져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왕 가는 거, 좀 멋있게 떠나보고 싶었고 사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은 우리가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좀 유쾌하게 풀고 싶었어요.

 

물론 7월 전시를 하기 전에, 처음 8,9월 중으로 작업실을 빼야한다는 집주인의 통보를 받았을 당시는 저도 어떤 분노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 전시를 할 때는 어차피 철거될 거 벽 한 면을 부숴버리자’, 라는 생각도 했었고. 전시의 주제도 어떤 ‘계약서’에 관련된 것으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7월 전시 이후에 그 전시에 대한 저나 팀원들의 애착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피날레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려놓은 거죠.

 

   
▲ 윤서현, '순간의 지금과 새로운 지금', 가변크기, 혼합재료, 2017 / <월간 작업실> 8월 / 사진 ⓒ문희경

 

우리는 비록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과거의 공간에 대한 미련보다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희망으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지만 그러한 희망이 펼쳐지는 무대는 어쨌건 우리가 ‘떠나가야 하는’ 과거의 공간이니까, 마치 배설물처럼 우리의 분신이기도 한 우리의 작업들을 이 곳에 흔적처럼 남겨놓고 가는 식의 컨셉이 좋겠다. 이런 식의 의논들을 거치다가 마침 제프 월이라는 사진작가의 ‘파괴된 방(The Destroyed Room)’이라는 작품이 그런 의도를 녹여내기에 적합한 모티브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시장 내부 배치나 연출을 사진 속의 구도와 맞췄죠. 그런데 다들 잘 캐치를 못하시더라고요 (웃음). 여러모로 아쉬워요 그래서. 마지막인 만큼 좀 더 화려하게 장식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Q5.

<월간 작업실>은 매 월 한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멤버들 각자의 작업물(혹은 공동 작업물)로 풀어내 선보이는 전시 프로젝트였죠. 방금 전에도 언급하셨지만 한 달이라는 기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잖아요. 저의 경우도 학교 다니면서 매 달 한 편 이상의 기사를 써내는 게 쉽지가 않거든요(웃음). 특히나 그룹전의 형태로 매 달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개인작업과 다른 부담감이나 어려움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궁금했던 것이 바로 이 팀의 기획회의 장면이었어요. 처음엔 두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 팀원들이 조금씩 늘어났잖아요. 서로 다른 개성과 예술관을 가진 팀원들을 데리고 매 달 통일된 주제를 선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결과물로 나온 작품들을 실제 전시장 안에 배치하는 과정도 그렇고요. 다들 어쨌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테니까요. 전시가 구성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조금 듣고 싶습니다.

 

A5.

아시다시피 처음에는 저와 민성이라는 친구 단둘이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전시 컨셉을 잡고 기획하는 방식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가장 큰 문제점은 아무래도 사람이 둘 밖에 없다보니까, 한 사람당 작업실 공간의 절반 이상을 채워야한다는 압박감이었어요. 한 달 내내 작업에만 매달리느라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거든요. 카톡으로 간단한 수준의 이야기만 한다거나, 같이 담배 피우면서 각자가 이번 전시에서 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지 물어보는 정도가 전부였죠. 그렇게 큰 주제만 던져놓고 각자 알아서 해석하던 식이었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로 함께 전시를 하면서도 작품들 간에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어요. (Q.그러고 보니 확실히 초창기 <월간 작업실>의 전시들은 조금 불친절하고 난해하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네, 아마 보시는 분들에게도 그게 느껴졌을 거예요.

 

   
▲ '요새 젊은 것들'. 왼쪽부터 김의규, 이용우, 윤서현, 김수빈. 출처 : 김의규

 

그래서 그런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소할 돌파구로서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작업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팀원으로 모집하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민성이는 팀을 나가게 되었고, 몇 차례의 구성변화를 겪으면서 현재와 같은 4인 체제가 되었죠.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멤버들을 뽑았는데, 감사하게도 그 친구들이 전부 자기 작업에 진정성도 있고. 무엇보다 ‘팀’이라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굉장히 강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멤버들이 먼저 나서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찾아와주니까 직접 만나서 작업 얘기를 나누는 기회들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고요. 팀원들의 배려 덕분에 최근 들어서는 이 ‘한 달’이라는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잘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기획회의’라고 한다면,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시점부터 어떤 큰 그림이 있어서 매 달 어떤 주제의 전시를 하겠다, 하는 어떤 체계적인 계획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보다는 매달 전시가 끝나면 다함께 모여서 그 전시의 주제를 토대로 다음 전시의 주제를 만들어나가는 편인데요. 만나면 자유롭게 서로간의 아이디어들을 던지고, 대체로는 제가 그렇게 오고가는 아이디어들 중에 괜찮은 것을 골라내고 정리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가 소속 아티스트이면서 디렉터 역할을 겸하고 있는 셈인데, 사실 요즘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여럿이 목소리를 내면 그 중에 누군가는 그것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해야 하잖아요.

 

제가 이 팀을 만들긴 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저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팀을 위해서 작업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일 뿐이거든요. 그런데 회의할 때 주도권을 쥐다보니까, 자칫 어떤 결론을 내는 과정에 있어서 다른 팀원들에게 약간 독재처럼 (웃음) 느껴질까 봐서. 그게 항상 고민이에요. 또 특정 멤버의 의견이 어떤 틀처럼 지어져서 그 안에서 생각을 주고받다보면 아무래도 작업 자체가 단조로워질 위험도 있고요. 그래서 멤버들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최대한 그 방향성에 있어서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제안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정말 자유롭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도록.

 

 

Q6.

<월간 작업실>은 매 달 다른 키워드, 다른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온 전시들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루는 주제의 범위나 방향이 점점 확대되어가는 일련의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어요. 일상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들로부터 내가 일으키는 감각반응을 무수한 ‘충돌’로 정의했던 첫 번째 전시(3월 - ‘부딪고, 부딪히다’)는, 그렇게 부딪혀가며 확인한 불분명한 경계 안에서 ‘예술’의 존재방식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죠(4월 -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시대에서 예술이 되기까지’). ‘예술이란 뭘까?’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은 곧 예술을 하는 ‘나’가 누구인지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5월 - ‘아직 나는 나를 위한 완벽한 이름이 없다’), 그 다음 전시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주체적 정의와 고뇌를 망설이고 억누르게 만드는 ‘빅 브라더’의 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6월 - ‘뚫 : 우리, 할 말은 하고 살자구요’).

 

이런 흐름을 하나의 이야기라고 가정하고 그 중심에 가상의 화자인 ‘나’가 있다고 해볼게요. 사실상 마지막 전시였던 7월 전시(‘나의 그림자는 그늘로 드리우고’)에서 화자는 다시 ‘나’ 자신에 대한 물음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여요. 낮 동안의 세계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여러 가지 폭력 때문에 파편화된 모습으로 존재하던 화자는 해가 저문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둠 안에 파묻힌 자신의 실루엣으로부터 진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데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잠든 후에, ‘나의 방’이라는 도피적인 공간 안에서야 스스로를 확신하는 모습이 체념적이고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슬픔이 빛날 즈음 하늘이 다시 밝아진다’거나 ‘나의 그림자는 세상에 스며 넓게 퍼져나간다’는 대목에서 희망이 보이거든요.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가 무한으로 팽창하는 블랙홀처럼, 웅크림 뒤에 펼쳐질 이후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데요. 지금까지 던져온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앞으로의 전시에서 ‘나’는 어떤 실험들을 하게 될까요?

 

   
▲ 김의규, '독백_의도된 발각_빅 브라더를 타도하자', 가변크기, 3개의 인터폰과 문, 2017 / <월간 작업실> 6월 ⓒ김의규
   
▲ 김경태, '正', acrylic on wall, 2017 / <월간 작업실> 6월 / 사진 ⓒ김의규

 

A6.

와, 그 스토리라인은 저만 알고 있는 거였는데. 어떻게 잘 캐치해주셨네요. 사실 이후의 전시 내용에 대해서는 작업실 계약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적인 요인들 때문에 아직 팀원들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어요. 다만 그 힌트가 될 수 있는 마지막 7월 전시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드린다면, 말씀하신대로 7월 전시에서는 ‘어둠’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어감을 역설적으로 풀어내보는 데에 중점을 두었어요. 그림자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마치 새벽처럼, 희망적인 메시지로 담고 싶었거든요. 사실 그 전시 제목(‘나의 그림자는 나의 그늘로 드리우고’)을 지을 때 멤버들하고 엄청 싸웠어요. 그림자하고 그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아시다시피 그 전시 같은 경우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모티프로 기획했던 거라서, 약간 저도 모르게 ‘아냐 이 전시는 이렇게 가야돼’라는 방향에 대한 입김이 세졌던 것 같아요. (웃음)

 

‘그림자’나 ‘그림’이나 똑같아 보이는데 미묘한 차이가 있잖아요. ‘그늘’은 뭔가 쉴 수 있고 편안한, 안정적인 느낌이 드는데, 반면에 ‘그림자’는 더 어둡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그런데 이런 치부 같은 그림자가 어쩌면 나를 쉬게 하는 그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어떤 안식처 같은. 그런 의도에서 전시를 기획했던 거고. 앞으로 작업실을 옮겨서 하게 될 프로젝트는 그런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있겠지만 아직 전시 제목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팀원들과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네요. (웃음)

 

 

Q7.

이제 망원동을 떠나 새로운 기지에서 ‘요새 젊은 것들’의 2부를 열게 되실 텐데요. ‘요젊것’의 컴백을 기대하는 분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도록, 향후의 활동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A7.

아마 이제 ‘월간’으로는 안할 것 같아요. 월간은 너무 빡세고요 (웃음) 한 세 달에 한 번? 세 달에 한 번이나 더 빠르면 좋고. ‘작업실’에서 전시를 한다는 그런 플랫폼은 아무래도 저희 요새 젊은것들이라는 팀이 지향하는 바를 그 자체로 보여주는 형식이기 때문에. 그런 형식은 그대로 가져가되, 전시가 열리는 텀은 세 달에 한 번 꼴로 조금 여유를 둘 생각이고요. 그 사이 기간에는 그동안 여유가 없어서 못했던 멤버들 각자의 개인작업도 조금씩 해나가려고 해요.

 

그 외의 계획으로는 작업들을 상품화한 ‘패키지’를 제작할 계획이에요. 어떤 저희 작업을 소비할 수 있을만한. 사실 그동안의 <월간 작업실 展>은 그냥 ‘저희는 이런 것들을 좋아서 하고 있어요, 저희 말 좀 들어주세요’ 정도에 머물렀는데. 다음 작업실에서는 제가 고정적으로 팀 소개할 때 쓰는 문장(**Q3.참고)의 마지막 단어, ‘자립’에 대한 부분을 이뤄보려고 해요.

 

(Q.자립이요?) 네,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자립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좀 더 모험적으로 시도해볼 계획이에요. 사실 어떤 작품을 ‘산다’고 하는 게 잘 와 닿지는 않잖아요. 특히 우리 또래 젊은 층에 있어서는 더욱이요. 좀 비쌀 것 같고. (Q.일단 실용성면에서 재고를 하게 되니까요.) 네 맞아요. 그래서 요즈음 그런 고민들을 상업적으로 잘 어우르면서 나오고 있는 게, 소위 말하는 ‘굿즈’잖아요. 이미 다른 작가분들께서도 많이 시도하고 있는 방법인건데, 다만 저희가 거기에 더할 수 있는 강점이라면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팀’이다 보니, 그 안에 담길 수 있는 콘텐츠가 세다는 것? 그런 다양한 콘텐츠들을 패키지 형태로 묶어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다보면, 그것 또한 하나의 아카이빙으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작품 자체를 팔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우선은 거기까지 욕심내지는 않고요. 팀의 전반적인 디렉팅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월세라도, 혹은 작업하는 데 들었던 재료비만이라도 우리가 만든 작업물로 충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선은 굿즈를 시작으로 해서 점차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려고 해요. 많은 분들이 사주셔야 되는데. (웃음) 그건 아직 모르겠고. 저희가 좀 더 열심히 해야죠. 요젊것을 브랜드화 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바람이라면, 앞으로는 다른 아티스트들이랑 콜라보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독립적으로 저희 목소리를 내기에만 바빴는데, 저희 외에도 요젊것과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분들 중에 멋진 작업하고 있는 분들도 아마 많이 계실 거고요. 저희도 많이 배워야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런 콜라보 형식의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다보면 조금씩 저희의 최종 목표라고 말씀드린 독립미술‘씬’을 만드는 데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웃음) 다음 작업실부터 ‘요새 젊은 것들’은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좀 더 제대로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Q8.

오늘 대화 즐거웠습니다. 언젠가 훌쩍 성장한 아티스트 그룹으로서 다시 한 번 인터뷰하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무엇이든 좋으니 인사해주세요.

 

A8.

요즘에 sns 활동을 안해가지고. ‘요새 젊은 것들’ 인스타 팔로워가 줄고 있어요. (웃음) 어떻게 만든 건데. 부디 언팔 하지 마시고.. (웃음) 휴, 얼른 작업실을 구해야하는데 시기에 대한 확답을 드릴 수가 없어서. 빨리 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중입니다. 여태까지 했던 작업들은 아쉬움도 많았지만 어쨌든 지나간 거니까요. 그것들을 좋은 발판 삼아서 앞으로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질 ‘요젊것’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프로젝트들에 대한 많은 기대 해주시고요. 저희는 미술계의 아이돌 스타가 되고자 하는 게 꿈이기 때문에 (웃음) 마치 영국의 YBA처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답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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