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매거진=한임연 에디터] 어느덧 무더운 여름날들이 주춤하면서 계절도 서서히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입추가 지났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 여름도 곧 떠나보낼 생각을 하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오늘은 2주 전에 다루었던 ‘달리와 프로이트’ 1편에 이어서 지난번에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편에서는 프로이트와 그의 정신분석학 이론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고, 이것이 달리의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달리의 삶과 견주어 살펴보았습니다(기억이 가물가물하시거나 2편부터 보시는 분들은 1편을 다시 한 번 읽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아래 작품 속의 어떤 물체나 상황이 달리의 무의식을 대변하고 있는 걸까요? 

    먼저 가장 오른편 하단의 남자부터 보겠습니다. 괴상하게 웃고있는 그는 하의로 그저 속옷만 걸치고 있어 어딘가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의 속옷에 묻어있는 배설물입니다.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이 남자는 감상자들에게 아주 대놓고 자신의 배설물을 드러내고 있지요. 이것 때문에 당시에도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사실 달리 본인도 바로 그 센세이션을 의도하였을 뿐 별다른 뜻은 없었는데 이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가 식분증(食糞症)에 걸린 정신병 환자가 아닐까 의심스러워 했다지요. 이에 대해 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맹세컨대, 나는 ‘식분증’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당신이 혐오하는 정도로 나 역시 그런 일탈은 의식적으로 혐오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변학은 피처럼, 아니면 내 메뚜기 공포증처럼 공포를 끌어내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달리에게 있어 배설물이 본인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간에 ‘공포를 끌어내는 요소’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이 또한 달리의 무의식의 영역에 내재된 공포의 대상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음산한 유희>에는 달리의 의식 저편에 억눌려 있던 공포의 대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답니다. 그럼 또 어떤 것들이 달리의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여기에서는 <음산한 유희>에서 가장 주를 이루고 있는 달리의 ‘성性적 공포심’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계단’은 성교(性交)를 의미합니다. 달리의 그림에서도 계단이 아주 거대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이 계단은 지평선과 공중의 경계가 모호한 배경과는 달리 명암 대비가 뚜렷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심지어 이 계단은 우측에 있는 조각상보다도 더 또렷하게 두드러지고 있지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압사당할 만큼 거대한 계단은 바로 달리가 지니고 있던 성관계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달리는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 사랑하는 연인 갈라를 만나기 전엔 단 한번도 여자와 성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요(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기작품들 속 여성들의 몸은 정말 아름답고도 섬세하기 그지없지요. 역시 천재들이 가진 예술적 재능은 타고나는가 봅니다), 때문에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달리가 일전에 가지고 있던 성적 불능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바로 위 그림을 그린 시기가 그러한 시기였답니다. 그에게 있어 성(性)이란, “바람직한 욕망이라기 보단 끔찍한 공포”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성적 불능에 대한 달리의 불안과 공포는 비단 계단에서 뿐 아니라 오른쪽 하단에 늘어져 있는 초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축 늘어져 휘어진 초를 보면 여러분은 무엇이 연상되시나요? (우리는 지금 우리의 맨정신으로 달리의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최대한으로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부드럽게 휜 초는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발기부전인 남자의 성기를 나타내는 요소입니다. 달리가 원래부터 의도적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정신분석학적 특징들을 한껏 담아내고자 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서 언급한 계단과 더불어 휘어진 초 역시 달리가 가지고 있던 성적 불능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달리의 다른 많은 작품들이 주로 성적인 것, 특히나 자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는 하나, <음산한 놀이>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 그림은 그저 자위 행위에 관한 달리의 욕망과 죄책감, 두려움 등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달리 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던 성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이 그림에서는 단순히 자위 행위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이에 대한 달리의 죄의식과 불안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예컨대, 왼쪽의 조각상을 한번 보실까요? 조각상에 걸터 앉은 사람을 달리라 하고 조각상은 달리의 또 다른 자아라고 본다면, 걸터 앉아 있는 사람이 조각상의 성기를 쥐고 있는 모습은 일종의 자위현상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조각상에 기대어 있는 남자가 조각상의 성기를 떼어내려 하는 것으로 가정한다면, 이는 거세의 행위로 달리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달리의 성적 욕망과 이에 대해 그가 본능적,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던 죄의식이 그림을 통하여 표출되고 있는 셈이지요. 게다가 조각상이 부끄러운 듯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 다른 한 손이 과할 정도로 확대되어 있는 모습 등을 미루어 본다면 앞서 말한 해석은 충분히 설명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살펴본 달리의 작품 읽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사실 이 밖에도 <음산한 유희> 속 많은 이미지들은 달리가 그의 무의식 속에서 지니고 있던 수많은 공포와 불안감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의식의 영역이 분명하게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일 정도니까요(실제로 프로이트 역시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다빈치 같은 과거의 명화가들의 작품에서는 ‘숨겨진’ 무의식의 세계를 찾아내지만, 자네의 작품은 그저 자네의 비밀을 ‘겉으로’ 드러내는 기제에 불과하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2주에 걸친 ‘달리와 프로이트’ 속 내용만이라도 제대로 숙지하고 계신다면 이후에 달리의 작품들을 더욱 풍성하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언급한 내용들이 불변의 진리는 아니랍니다. 작품은 감상자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 배경지식 등에 의해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니까요. 감상은 어디까지나 여러분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 잊지 마세요. 그럼 지금까지 그림 읽어주는 여자 art-lighter였고요, 다음 번에도 재미있는 예술과 철학 이야기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