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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I scare so easily, 영화 <단지 세상의 끝>
김범진 칼럼니스트  |  bjkim3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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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24  00: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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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영화

[디아티스트매거진=김범진] 루이(가스파르 울리엘 분)는 자신의 삶의 끝을 알리고자 삶의 시작을 함께하였던 가족들을 떠나온 고향으로 향한다. 같은 날 해가 질 무렵, 가족들이 떠나간 저녁식사의 끝자락에서 그는 홀로 남겨진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헤메며 루이는 다시 집을 나선다.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실질적인 이해의 정도의 삼면관계에서 어디에 발을 디디고 있느냐에 따라 루이를 비롯한 그의 형(뱅상 카셀 분), 어머니(나탈리 베이), 동생(레아 세두), 형수(마리옹 코티아르)의 감정과 태도가 결정된다. 그들은 어느 날 오후, 하필이면 더운 날에 서로의 이해의 정도와 그 의지의 정도를 꺼내보인다. 루이는 단지 삶의 끝을 알리려고 왔는데, 모두는 시작과 끝보다는 그 내용을 시끄럽게 말한다. 

 가족들이 모인 세 시간 동안, 루이만이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 루이를 마주하고 형과 어머니와 동생과 형수는 서로 싸운다. 루이는 말이 없다. 그리고 한 명씩, 따로 독대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루이는 앙투안을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앙투안의 눈에서 문득 적개심 이외의 다른 것을 발견한다. 그 다른 것이 루이로 하여금 앙투안이 자신에게 눈빛으로 건네는 말, 그러니까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게 하지만, 그가 눈을 돌린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향하는 앙투안의 주먹에 새겨진 상처와 그에 얹힌 흉터였다. 루이는 그 상처와 흉터가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기에 앙투안의 적개심에는 자신의 귀책사유가 없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차 안에서와 달리 형에게 차마 형식적으로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지 못한다. 그는 적어도 앙투안은 루이 자신과는 다르게 루이를 자신과 완전히 분리된 타자의 위치에 놓지 않고 가족이라는, 보다 가까운 자리에 두었다는 것을 알아서 황망하다. 처음 본 형수에게는 쉽게 건네던 그런 친절한 말들과는 다르게 앙투안에게 루이 자신이 할 말 또는 해주어야 할 말, 아니면 앙투안이 그렇게 듣고 싶어하던 말은 이미 닫아둔 지 한참이 되어 먼지가 쌓인 동생의 창고 한 켠에 기대어져 있는 집을 떠나기 전 자신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매트리스처럼 아파서 쉽게 꺼내기가 어렵다. 12년의 시간 동안 그가 가지지 않아온 가족에 대한 관심은 바로 그가 만들어낸 무지로 인해 가족과의 거리감이 덧씌워졌으며 그래서 진심을 모사하여 만들어낸 값싸고 조악한 관심의 형태는 결코 루이를 맞이하는 가족들에게 오랜만의 방문에 대한 선물이 될 수 없다. 결국 루이는 가족이 원하는 그의 마음은 이미 닫아둔 지 오래라 꺼내기엔 글러서,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과 유사한 무언가를 만들어서라도 보여주기에는 그들이 가지는 루이에 대한 마음은 루이와는 다르게 짙고 살아 숨쉬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만다.

 앙투안은 루이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고 자신을 속이며 또 그렇게 행동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루이는 자신의 사랑하는 동생이기에 그래서 더욱 루이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인정해내고 싶어하는 자신을 혐오한다. 이 마음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깊어져 가고 루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짙어진다. 루이는 앙투안의 꽁한 마음을 어떻게 돌려놓을지 고민해본다. 하지만 타인의 복합된 호혐의 감정에서 한 가닥만을 골라내려 한다는 자체가 루이가 앙투안을 통상적인 형제관계의 양 당사자에 자신과 그를 놓아두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반증하는 것이라 그 거리감을 앙투안은 루이와의 대화에서 느끼기에 서운하면서도 또다시 그런 배려를 받는 자신에 대해 화가 난다. 단지, 그는 루이에게서 호감을 얻고 싶은 것도 아니며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어떠한 감정이든지 편안하게 오갈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뒤엉킨 자신의 감정과 자존감, 부담감과 책임감은 그 무게에 의해 부정적이고 날카롭게 바깥을 향하지만, 앙투안은 가족에게 기대한다: 뒤엉키기 전의, 오랜 시간이 흐르기 전 자신이 싫어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가족이 찾아내고 알아봐주고 보듬어주기를 말이다. 그건 큰 소망이 아니며 당연한 권리도 아니지만 적어도 가족이라면, 자신을 제외하고 자신과 가장 가까운 타자라면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호의의 범위에 든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틱틱대는 자신의 말에 상처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앙투안은 남들보다 자신에게 상처를 낸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건 적어도 전부가 진심인 것은 아니다.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보면서 픽 웃고 마는 그와 루이 사이에 오가는 눈빛이 보다 진심에 가까울 것이며, 어릴 적에는 파리를 좋아하지 않았냐는 루이의 말에 동요한 마음 또한 그럴 것이다. 그걸 알기에 어머니는 앙투안을 무작정 나무라지 않는다. 쉬잔이 보기에는 앙투안이 루이와의 하루를 망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루이의 가족에 대한 무관심이 그 역할을 한 것이며, 앙투안은 그걸 알고 또 그도 마찬가지로 동생과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루이에게 화가 나지만, 그래도 자신의 동생 루이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지 않아 괜히 더 못되게 군다. 그냥 앙투안은, 서운하다. 많이 서운하다. 그리고 그만큼 루이를 사랑한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어머니의 말마따나 이해는 못하지만 사랑할 수는 있다. 반대로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할 수도 있으며, 루이는 둘 다를 하지 않았고 가족들은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하려고 하였기에 긴 시간보다도 더 먼 거리감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루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하고, 동생은 루이를 이해하려고 한다. 형은 루이 또는 가족들에게 이해받고 싶어한다. 형수는 루이를 이해하고자 하지 않고 사랑하고자 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들에게서 자신을 분리해 내려 하고 또 그랬던 루이를 어머니는 사랑한다. 그 사랑에는 힘들어서 이해를 수반하지 않으려는 체념이 포함되어 있지만, 체념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래 가지고 있던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취할 수 있는 태도이기에 그들 사이에는 한 방향으로만큼은 겉으로 느껴지는 거리감보다 진하게 인력이 작용한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혈육들의 모든 마음에도, 형태는 다르지만 똑같이 애절한 호소에도 루이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자신의 삶의 끝을 알리지 못한다. 마치 마음을 여는 것이 삶의 끝과 같다는 듯이. 형수는 비록 피가 이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그리고 아직 어색하지만 노력한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가족이 되어 말주변이 없지만 언젠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 수 있기를 소망하며 때로는 거친 앙투안을 이해하려 하고 처음 보는 루이에게 말을 건다. 둘은 완벽한 남이지만, 그래서 형수는 루이가 어떤 와인을 마시는지 모르고 그리고 자녀를 가지는지의 여부에 대해 실례되는 말을 하였지만 그녀는 와인 잔에 작은 장식을 달아 건네는 것처럼 작게 차근차근 노력한다. 조금이나마 무의식적으로도 마음을 연다. 말을 하고 또 누군가 비웃거나 화를 내고, 욕을 먹지만 그걸 피하지는 않는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훌쩍 커버린 여동생은 루이의 닫아둔 마음을 질책한다. 쉬잔이 루이를 마주하며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들과 물어보고 싶었던 소식들은 그에 얹힌 약간의 원망에 가려지고 당사자를 앞에 두고서 증폭되어 줄담배를 피우게 하는 긴장감과 더불어 피어나지만, 루이는 결코 끝까지 여동생의 방에 앉지 않는다. 어떤 이유가 그를 가족에 대해 마음을 닫게 하는지는 관객들만큼이나 가족들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유의 존재가 루이에 대한 서운함을 해소시켜주는 정확한 처방이 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성과 감정의 거리감은 생각보다 멀고 이해는 언제나 사랑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엽서에도 흥분하며 두세 단어로만 대답하는 상대방에 대해 끊임없이 문을 두들기며 이해하려는 노력은 사랑이 수반되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애처로우며 때로는 사랑보다 짙고 깊다. 

 루이가 두려워하는 것이 가족 자체인지, 가족에게 심각한 소식을 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소식을 듣고 나서 가족과 해야 할 일련의 행위에 대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그는 그의 마음을 열지 않았고 만들어낸 무관심을 통하여 그들과의 연대를 유기하였다. 루이의 잘못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안다. 그렇지만, 이해하는 것은 공감하는 것과는 다르며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의 방향과 크기가 타인의 마음의 방향과 크기와 비슷하거나 평행하기를 모두는 바라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본인의 진심이 어떤 모습과 형태와 색상을 가지는지도 불확실한 경우가 많은데 다른 사람과 그걸 맞춰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렵지만서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 마음을 서로에게 이해받고자 하며 미안하게도 그 쉽지 않은 길을 때로는 강요하고 때로는 구걸하곤 한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갈등은 때로는 아프지만 언제나 솔직하다. 솔직하게 각자의 품 안에 있던 마음과 말들이 드러나야 부딪힐 수 있으며, 그것이 맨살에 가까울수록 큰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드러난 입장들이 보다 헐벗을수록 봉합 또한 깔끔하게 이루어진다. 충돌 이후의 각자의 향방이 같은 방향일지 반대 방향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방향이 어디를 향하던 깔끔하게 털어내고 다음으로 향하려면 그래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루이를 중심으로 보면 이 부분에서 그의 잘못을 찾아볼 수 있고, 반대로 변호할 수도 있다. 그는 덜 열어둔 만큼 덜 상처받을 수 있었겠지만, 같은 크기만큼 타인에게 덜 이해받는다.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의 크기와 상처받기 싫은 마음의 크기를 매달아둔 저울이 치우친 방향과 그 정도는 자신의 선택일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타인이 그 마음을 열어보고자 노크하고 언제 열리고 얼만큼 열렸는지를 알 수 있기를 고대한다면 못 이긴 척 열어줄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못 이긴 척'을 상대방이 하기를 서로 쑥스럽게 기대하면서 그들은 서로를 할퀴고 또 부둥켜안으며 자신의 삶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되기를 때로는 진심으로 바라면서, 외로움을 더 이상 괴로움으로만 남기지 않게 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서로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은 부끄러울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기대하는 것마저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건 너무 차갑고 잔인하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까운 타인이 가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또 그만큼 가까워지며 많은 것을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에 대한 대답을 듣기를 바라는 것 또한 환상이 되어서는 아픔이 생각보다 많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심을 바라거나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와 사랑의 출발점이며,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겠으나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그 선택의 결과에 따른 것들을 감내해야 하기도 하는 것이고 그 중 좋은 것들은 아픔이 파놓은 삶의 주름에 스며들어 보다 깊숙히 서로의 진심에 스며든다. 

 

 시간이 얼마 없는 루이는 집을 떠난다. 그는 끝을 알리지 않고 말없이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자신의 마음은 결코 열어두지 않은 채, 미팅이 있다는 이유로 피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동안 시간은 살아 숨쉬었지만 곧 숨을 거둔다. 짧은 시간 동안 온 집안을 날아다녔던 그의 삶의 시간은 모두를 뒤로 하고 떠나며, 루이도 마찬가지이다. 

 루이는 그의 삶은 그의 것이라는 것을 씁쓸하게 확인한다. 그가 지킨 것은 자신의 삶이지만 지키지 못했던 것은 모두가 함께하는 삶이었다. 동시에 그가 지킨 그의 삶은 자신이 만든 환상이며 만들어오고자 그토록 바랐던 환상이고 애처롭게 문을 닫아가며 굳게 지켜온 환상이었으나 적어도 그것이 환상이길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현관은 다시 닫힌다. 루이가 남긴 것은, 남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에게 그 환상이나마 지켜주는 것이었기에 그는 죽음을 알리지 못한다. 

 

(제목은 'These days - Wet'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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