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한예령] 정보화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현대 사회에서 정보는 소중한 자산이다. 과거에 부의 판단 기준이돈이었다면 지금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보의 가치는 크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정보를 손에 얻음으로써 어떤 범주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정보를 차지하기 위한 소리 없는 싸움은 개인을 넘어 기업, 국가로 확대된다. 하지만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싸움이 심화되면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 <로봇, 소리>는 인공지능 로봇인 소리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영화 <로봇, 소리>는 지구 밖에 떠 있는 위성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이 위성을 설치한 미국은 이를 통해 온갖 정보를 손에 얻는다. 물론 대내외적으로 위성의 존재는 비밀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은 위성을 이용하여 테러범의 위치를 알게 되고 민간인이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테러범을 잡기 위해 공격을 감행한다. 결국 테러범을 잡는 과정에서 민간인이 다치게 되고 한 소녀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위성에 잡히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듣고 있던 위성은 갑자기 지구와의 교신을 끊고 궤도를 이탈한 뒤 한국의 어떤 섬으로 떨어지게 된다. 근처에 있던 해관이 이 위성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데 위성에는 ‘I need find her’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인간이 특정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우주로 쏘아 보낸 소리가 스스로 지구로 떨어지게 된 데에는 죄 없는 소녀의 다급한 도움 요청이 크게 작용했다. 인간들 모두가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할 때에 인공지능인 소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외친 것이다. 그리고 소리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소녀를 극한 상황으로 몰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우여곡절 끝에 함께 하게 된 해관이 소리에게 누굴 찾는 것이냐고 묻자 소리가 대답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잠시 말이 없던 소리가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은 내 책임이다”라는 말을 한다. 소리의 능력을 이용한 인간이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민간인의 희생은 어쩔 수 없었다며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인간이 한낱 기계에 불과하다고 한 인공지능 위성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소녀를 찾기 위해 결단을 한다. 투박한 겉모습의 소리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해관이 소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소리를 찾기 위해 그들을 쫓는 부분에서는 인간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소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다. 한쪽에서는 소리의 정보를 지키기 위해서 그를 찾고 다른 쪽에서는 그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서 소리를 찾는다.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모두 책임감 같은 인간다운 도리에는 관심이 없다. 쏟아지는 정보로 인하여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소리가 왜 궤도를 이탈하여 지구로 스스로 떨어지는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소중히 여겨져야 할 생명을 수단으로만 치부하는 인간의 모습이 소리로 하여금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든 것이다. 소리는 자신이 듣는 정보가 더 이상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피해를 입히는 데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렇게 소리는 인간이 당연히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을 대신 신경 쓰며 스스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애쓴다. 그것이 비록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 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 마지막까지 소리는 자신이 찾는 소녀를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소녀를 만나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소녀를 찾기 위한 어렵고 긴 여정을 홀로 이어가는 소리의 뒷모습은 어떤 사명감마저 느껴진다. 동시에 소리는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무고한 생명보다 우선시되는 가치는 없다고, 그 가치를 소중히 지켜야 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