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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소리를 ‘보는’ 시간이상현의 《바람의 시》 캘리그라피 展
김정아 칼럼니스트  |  vivresavie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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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10  0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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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김정아]

2015.12.4~12.12 / 갤러리 뚱

   
▲ 이상현, 〈바람의 시 12>

캘리그라피 작가 이상현의 전시에서는 디지털 문자 영상시대의 서(書)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작품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작가는 조선시대 민화와 한자가 만나 이루어진 ‘문자도’를 한글 모양으로 재해석한 작품과 현대적인 소재와 컬러의 미감으로 새롭게 해석한 평면작품, 음악의 선율을 따라 움직이는 문자추상 이미지 작품, 영상, 그리고 아트상품으로 개발된 작품을 통해 디지로그 시대의 한글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 ‘디지로그’가 된 맥락에 견주어보자면, 이상현 작가에게 있어서 붓과 키보드는 둘이 아니다. 그의 문자도에는 문자와 그림, 즉 텍스트와 이미지가 병합된 새로운 언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18-19세기 조선왕조의 끝자락이자 근현대의 시작지점에 불어 닥친 민화 문자도 바람의 전조를 보는 감흥이었다. 이번 전시 작품으로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여덟 가지의 한자를 여러 가지로 도식화하여 변형시킨 우리 민화의 한 종류인 ‘문자도’를 자연을 담은 한글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또한 가끔은 내안에 부는 바람에 넋을 놓듯 음악의 선율을 따라 붓끝이 바람이 되어 움직이는 문자의 이미지추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표현하였다. 작가는 문자예술이 가독성을 필요로 하는 기록의 수단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교감함으로써 문자의 이미지추상이라는 또 다른 시각문자를 만들어냈다. 점과 선이 모여 하나의 획이 되고 그 획이 운율과 규칙의 조화를 이룬 형상들은 문자예술의 아름다움을 제고하게 했다. 이는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캘리그라피의 대중성을 환기시켰다.

하지만 화이트큐브를 압도하는 오색찬란한 문자도보다 개인적으로 더 눈길이 갔던 작품은 붓으로 그린 그림과 글씨가 함께 담겨있는 〈바람의 시〉 연작이었다. 바람이 부는 까닭은 한 그루 나무를 만나 흔들기 위해서이고, 나무는 바람을 만나 비로소 스스로의 존재를 통찰하게 된다는 한편의 시에는 이상현 작가의 자화상이 투영되어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바람은 우선 자기 자신을 흔드는 존재이다. 작가는 쉴 새 없이 달려온 인생의 길목에서 바람을 만났고, 그 바람이 마음 속 커버린 삶의 조각들을 스쳐갈 때, 작은 떨림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때마침 들려오는 음악의 선율을 따라 떠오른 자유로운 심상을 화지에 옮긴 문자의 이미지들이 〈바람의 시〉 연작이다. 뜨겁게 혹은 차갑게, 거칠게 때론 부드럽게 제 멋대로 부는 바람 같아도 바람에겐 각자의 길이 있다. 그 길이 있음을 깨닫는 지점에서 바람은 곧 작가 자신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무질서한 머리카락 같은 가는 선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의 결을 느끼게 한다. 필선에서 느껴지는 물성에서 바람과 몰아일체가 된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을 엿볼 수 있었다. 바람의 소리를 ‘보는’ 작품 앞에 서서 짧지만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었다.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타이핑을 ‘치는’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상현 작가의 작품들은 손으로 ‘쓰는’ 시간을 회상하게 했다. 한겨울의 찬바람이 용케도 나를 찾아와준다면, 작은 길을 만들어 문자문명의 역행이 주는 행복을 누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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