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매거진=한임연 에디터]몇 달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쉬린네샤트展을 관람할 기회가 생겨 다녀왔다. 현대미술은 비교적 모호하고 난해하기까지 해 그리 즐겨 찾지 않았던 분야일뿐더러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막연한 거부감도 지니고 있었지만, 공짜로 주어진 기회였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회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그저 휴식 차원에서 간 전시회치고는 꽤 그로테스크한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장엄하기까지 했다.

쉬린네샤트는 이란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여성 작가로, 그녀의 작품들은 사진과 그림, 영상 등의 다양한 형태로 이란의 여성인권 및 정치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당시(아마 어쩌면 오늘날까지도) 굉장히 선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예술 행위와 그 결과물을 통해 이란의 잘못된 세태와 모순된 현실을 낱낱이 드러내고 싶었던 듯하다. 평소 예술을 단순히 이상(理想)과 아름다움의 영역으로만 생각해왔던 나에게 있어 그 같은 전시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쉬린네샤트展에서 받은 영감은 필자가 예술에 대하여 지니고 있었던 기존의 관념과 전혀 상반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딜레마 속에서 필자는 예술이 지닌 서로 상반된 이중적 기능에 대하여 고찰해 보게 되었다.

사실 예로부터 많은 예술 작품들은 고통스러운 현실, 서로 물고 뜯기는 세속으로부터 벗어난 일종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다루어 왔다. 학창시절 역사나 미술 수업 시간에 간혹 보았던 동양의 신선도나 산수화 혹은 죽음 이후의 기독교적 세계를 그린 서양화 등을 떠올려보라. 한 폭의 아름다운 자연이나 상상의 세계를 그린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꿈꿔온 이상향을 작품과 연관 지어 마음속에 그려내곤 한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의 작품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잠시 동안이나마 자신이 속한 괴로운 현실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들 수 있다. 특히 주로 자연풍경을 묘사한 클로드 모네의 작품들은 앞서 언급한 예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모네는 인상파 화가답게 자연의 풍경을 모티브로 삼아 그 순간의 빛과 인상을 포착하여 그림 속에 담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하나같이 낯설지만은 않다. 작품 속의 세계는 모두 우리에게 어딘가 모르게 친숙한 풍경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보면서 감상자들은 이 아름다운 풍경에 사로잡히게 되며 이로써 현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마치 그림 속의 세계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과는 다를 것만 같은, 현실에서 결핍된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번 오르세 미술관展에서 전시되고 있는 모네의 습작인 <야외에서 인물그리기 습작: 양산을 쓰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을 봐도 그렇다. 여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을지라도 그녀의 시선만큼은 어딘가 저 멀리 향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치 현실의 땅을 딛고 서서 이상향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다. 또한 전체적인 색감과 더불어 그림을 통해 느껴지는 선선한 바람은 그것만으로도 무더운 여름날 지쳐있는 우리의 심신을 시원케 하기 충분하다. 그러면 모네의 대표작인 <인상: 해돋이>는 어떠한가?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수면위에 비치는 이 그림을 볼 때면 동이 틀 때의 그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 같은 연상은 감상자들을 복잡한 삶으로부터 적막이 흐르는 쉼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사실 모네 자신도 작품 활동을 통하여 이러한 예술의 기능을 추구하곤 하였다. 그가 가장 궁핍한 시기를 보내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때에 그린 <정원의 여인들>을 보면, 어두운 느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밝고 화사하며 생기가 넘친다. 모네는 자신의 예술적 행위에서 괴로운 현실의 문제로부터의 탈출구를 발견했던 것이 틀림없다.

  예술로부터 맛보게 되는 자유와 이를 통한 쉼과 재충전, 이것들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실현코자 한다. 즉 자신이 살고 있는 고된 현실과 다른 상상의 세계에서 자유와 휴식을 누리길 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미술관에서까지 마주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미술에 대한 깊은 조예나 통찰력을 얻고 싶다거나 그 밖의 어떤 중요한 정보를 캐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러한 추세에는 예술을 일종의 여가로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그 같은 예술의 기능이 갖는 유구한 역사가 기여하는 바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종류의 예술작품은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하게 다가오며 때문에 감상자들은 그 작품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예술은 반드시 이러한 기능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서두에 언급한 쉬린네샤트의 경우 자신의 예술 작품의 모티브를 사회적 문제에서 찾았고, 그 결과 그녀의 작품들은 현실과 거리를 두어 이상향을 보여주기 보단 현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그곳의 모순을 낱낱이 고발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 참여적 예술은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주의 작품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만이 현실의 문제를 제시 및 고발하는 예술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오히려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 작품이 현실의 본질적 문제를 더욱 뛰어나게 전달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낭만주의 작품 역시 현실의 모습을 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 그러하다. 이 작품을 단순히 인간 감정의 극대화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따른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모든 귀족적 계급이 철폐되고 ‘시민’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1804년 나폴레옹의 집권으로 인해 왕정복고가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오랫동안 쌓인 민중들의 자유와 평등에의 염원은 한 순간에 좌절된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바로 당시 민중들의 그 절망과 비극을 메두사호의 난파라는 실제 사건에 빗대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구조를 갈망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여전히 시민혁명의 정신을 갈구하고 있는 민중들의 염원을 발견해낼 수 있다.

예술이라는 것은 참 이중적이다. 예술은 현실로부터 유리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의 실체이며, 동시에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고 나아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실과 지속적으로 관계하는 유기체이기도 하다. 쉬린네샤트 전은 후자에 좀 더 가까웠다. 나의 경우 지금껏 후자보단 전자로서의 예술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그 때의 그 전시는 다소 고통스러웠다.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뒤틀린 현실을 마구 직면하도록 부추겼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형태이든 간에 예술은 우리가 사는 현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이다.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예술적 욕망 역시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비록 때로는 어떠한 예술 작품으로 인해 잠시라도 잊고 싶었던 현실의 문제나 자기 내부의 깊숙이 묻어두었던 트라우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할지라도 한번쯤은 그러한 예술 작품이 가져다주는 거대한 일침과 위로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묘미가 아닐까싶다.

<사진 및 그림 정보>
사진1. 쉬린네샤트,<황홀>,1999년,스틸 이미지 ⓒ쉬린 네샤트 및 글래드스톤 갤러리(뉴욕, 브뤼셀)
그림2. 클로드 모네, <야외에서 인물 그리기 습작: 양산을 쓰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1886, 캔버스에 유채, 131x88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그림3.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캔버스에 유채, 48x63cm, 마르모탕 미술관, 파리
그림4. 클로드 모네, <정원의 여인들>, 1867, 캔버스에 유채, 255x205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그럼5.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9, 캔버스에 유채, 491x716cm, 루브르 박물관,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