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기원전 4,500년부터 539년까지 지속되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심’을 뜻하는 그리스어 ‘mesos’와 ‘강’을 뜻하는 ‘potamos’가 합쳐져 어원적으로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비록 기후는 척박했으나 발전된 관개기술 덕분에 비옥한 토양이 유지되었다. 덕분에 메소포타미아는 이집트와 더불어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 지역’이라 불리우며 다른 지역과 활발한 무역관계를 이루었다.

메소포타미아는 우르크, 수메르, 악카드, 바빌론, 아시리아, 그리고 바빌로니아로 크게 여섯 개의 문명기로 구분된다. 이 여섯 시기를 통틀어 죽음과 사후세계, 그리고 신에 대한 추상적인 관념과 더불어 종교가 발달하게 된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하늘과 땅의 영적인 연결을 상징하는 건물과 주술적 소망을 담은 조각들이 다수 발견된다.

1. 우르크 시기 (4500-3100b.c.)

Sculpted vase, from Uruk, Iraq, c.3500-3000 B.C., Alabaster, 91.4cm high, Iraq Museum, Baghdad.

우르크 항아리

우르크 시기는 그림 문자가 사용된 선사시대였지만, 도시 국가의 형태를 제법 갖추기 시작한 때이다.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은 새해 때마다 사랑과 풍요, 다산의 상징인 ‘이난나’ 여신을 기리는 축제를 열기도 했다. 이 신년축제 모습이 저부조로 새겨진 <우르크 항아리>는 인류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 중 하나이다.

항아리는 가로로 4등분되어 있고, 원기둥을 빙 둘러 각기 다른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재밌는 건 각 층마다 장면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첫 번째 층에는 여신에게 재물을 바치는 모습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째 층에는 남자들이 재물을 들고 있는 모습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 번째 층에는 암양, 숫양이 번갈아가며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새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층에는 보리 등의 곡식이 조각되어 풍요로운 축제의 이미지가 강조되었다. 각 층마다 각기 다른 도상이 등장하고 방향 또한 달라지면서 일종의 리듬감이 느껴진다.

< 우르의 지구라트 (Ziggurat at Ur, Iraq) >

지구라트 Ziggurat

‘지구라트(Ziggurat)’는 아시리아 어로 ‘높은’, ‘세워진’이라는 뜻으로, 우르크 시기의 신전 역할을 한 공간이었다. 마치 산처럼 높게 지어진 건물의 형태는 하늘에 있는 신에 조금이라도 근접하고 싶은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오직 한정된 사람들만 지구라트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에 사제나 왕 등의 직급을 구분하는 위계적 사회질서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2. 수메르 문명 (c. 2800-1800 B.C.)

초기 수메르 왕조 시기(c. 2800-2300 B.C.)에는 사후세계에 입각한 종교 관념이 더욱 발달하게 된다. 따라서, 종교적 염원을 비는 상이나 장례문화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발굴된다.

<리라 울림통 (Lyre soundbox)>, from the tomb of Queen Puabi, Ur, Iraq. c.2685 BC. Wood with inlaid gold, lapis lazuli, and shell. University Museum, University of Pennsylvania, Philadelphia.

리라 울림통

이 리라 울림통은 수메르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이다. 이것은 왕비의 무덤의 부장품으로 묻혀있던 것으로 수메르 장례문화의 선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울림통의 앞부분에 조각된 황소는 파란 수염을 하고 있다. 이 때 사용된 파란색은 신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고, 그 안료가 굉장히 귀한 광석으로 만들어져 왕권의 고귀함을 나타낸다.

울림통의 앞면에는 4개의 장면이 층을 지어 묘사되었는데, 반인반수들과 그들의 의인화된 행동이 눈에 띈다. 이 그림을 통해 리라 울림통의 원형과 더불어 당시 사람들이 종교의식을 위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구데아 상

한편, 수메르 시기에는 설형 문자인 쐐기문자가 발명되었다. 이어지는 신 수메르 시기(c .2150-1800 B.C.)에는 이 설형문자가 적힌 작품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구데아 상>의 치마에는 쐐기문자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이 문자를 해석하면 작품이 만들어진 계기를 알 수 있는데, 어느 날 왕의 꿈에 신이 나타나 신전을 지을 것을 명령하고 그에게 직접 도면을 전달하였다는 내용이다. 그 도면은 무릎 위에 놓여있는 것으로 조각되었다. 그만큼 왕과 신의 관계가 가깝다는 것을 설파하는 이 유물로 미루어보아 당시 왕의 지배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3. 악카드 문명

사르곤 1세의 두상

전쟁이 빈번했던 악카드 시기(c.2360-2180 B.C.)에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을 잠시 통일했었던 왕인 사르곤 1세의 모습이 담긴 조각이다. 제법 사실적으로 표현된 얼굴에 비해 비현실적인 눈썹과 수염의 형태가 대조된다. 이처럼 도식화된 털의 표현은 이 시대 유물들의 특징이다.

나람신

<나람 신의 승리 석판(Victory Stele of Naram-Sin)>, reign of Naram-Sin(2254-2218 BC), Susa, Iran. Sippar, Iraq. Pink limestone, H. 2m; W. 1.05m, Musée du Louvre.

한편, 사르곤 1세의 손자는 전쟁에 대한 기록을 최초로 남기기 시작했는데, <나람신의 승리 석판>이 그 중 하나였다. 여기에는 전우주를 상징하는 해와 달이 묘사되어있고, 바로 밑에 다른 사람들 보다 크게 표현된 나람신이 우뚝 서있다. 주변 인물들은 나람신의 한 쪽 발에 짓밟혀 있거나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 이들은 나람신의 피정복자이고, 그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되어있다. 중요한 인물에 대한 비례강조와 더불어 여러 명의 군사들을 서로 겹치지 않게 정렬, 묘사한 방식은 이후 이집트 문명의 미술에까지 이어져 변화된다.

4. 바빌론 문명: 구 바빌론 시기 (c. 1900-1550 B.C.)

함무라비 법전

<함무라비 법전(Law Code of Hammurabi, king of Babylon)>, 1792–1750 BC. Susa, Iran. Basalt, H. 2.25m; W. 0.65m. Musée du Louvre.

구 바빌론 시기의 대표적인 유물은 함무라비 법전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로 익히 알려진 동해복수 등 메소포타미아의 법규들이 청동 기둥을 둘러가며 새겨져 있다. 기둥 윗부분에는 신이 왕에게 무언가를 건네주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왕을 신의 대리인으로서 승격시키고, 나아가 왕을 신격화 하고자 한 작업으로 간주된다.

5. 아시리아제국

<라마수(Lamassu, Winged human-headed bull)>, reign of Sargon II (721-705 BC). Khorsabad, ancient Dur Sharrukin, Assyria, Iraq. High relief and sculpture in the round; gypseous alabaster. H. 4.20m; L.4.36 m; D. 0.97m., Musée du Louvre.

라마수

아시리아 시기(c.1100-612 B.C.)에는 왕이 전쟁과 사냥을 즐기는 모습이 자주 묘사된다. 그만큼 왕권이 존중되고 강화되었다는 증거이다. 윗 작품 라마수는 그러한 왕을 수호하는 강인한 반인반수를 조각한 것인데, 사람처럼 묘사된 얼굴은 그가 인간의 지혜를 갖추고 있음을, 황소 같은 몸은 그만큼 힘이 세다는 것을, 옆구리의 날개는 새처럼 날렵하다는 것을 뜻한다. 위엄있는 상반신을 지탱하는 다리는 무려 다섯 개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얼핏 원근법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상태에서 엉성히 묘사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보는 각도와 상관없이 가장 안정적이고 완전하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시각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이 표현기법은 동시기에 자주 활용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 tablet 11, story of the Flood. L: 15.24cm, W: 13.33cm, T: 3.17cm. British Library.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길가메시 왕이 영생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길가메시 서사시. 이 유물은 왕에 대한 신화적 기원을 진흙판 위에 쐐기문자로 새겨 책으로 만든 것의 일부이다. 당시에는 도서관이 있어 역사가 기록된 진흙판 책들을 보존하기도 했다.

6. 바빌로니아 시기

<이쉬타르 문(Ishtar Gate)>, reconstruction, the Pergamon Museum in Berlin.

마지막으로, 바벨탑 이야기와 함께 성경과 고고학에 자주 등장하는, 신 바빌로니아 시기(c.612-539 B.C)의 유물 <이쉬타르의 문>을 살펴보자. 내부카드레자르 2세는 바빌론의 정북방, 왕국의 동쪽에 위치한 8번째 내성문으로 이쉬타르의 문을 건립하였다. 온통 타일로 뒤덮인 문에는 노란색이나 파란색 등의 유약이 칠해져있고, 여기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각기 상반되는 방향으로 조각되어 운동감까지 띈다. 이 화려한 건물을 둘러싸고 공중정원이나 지구라트 내지는 바벨탑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어지는 칼럼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조금 더 늦게 발전하기 시작한, 이집트 문명의 미술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 [디아티스트 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