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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영화
한계, 높이 더 멀리나를 한계에 몰아부치는 이는 누구인가
정인채 칼럼니스트  |  inchaijung@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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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4  1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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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디아티스트매거진] 사제지간을 다룬 이야기는 흔하다. 음악 학교를 무대로 다룬 영화는 물론, 음악을 다룬 영화 또한 적지 않다. 이러한 장르의 영화는 인물의 성장과 더불어 감동과 교훈을 주거나 추억과 낭만을 되새기게 만든다. 때로는 이야기 뒤에 흐르는 음악의 선율에 매료되어 흠뻑 감성에 취하기도 한다. 영화 <위플래시>를 보며 이 중 어떠한 부분을 부각시켜 바라볼 지는 아마 관객 각자의 몫일 것이다. 다의적인 측면에서 영화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남기고, 이 자체가 관객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비명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각자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보든지 <위플래시>를 본 관객들은 꽤 흡족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저예산이라는 한계가 되려 훈장이 되어 휘몰아치고 천지개벽하며 충만하게 스크린을 가득 채운 감동의 비트는 그 설레이는 충격과 여운 그리고 감동을 증폭시킬 것이다.

 

   
▲ 영화 <위플래시> 중에서

반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되는 영화이지만 어쩐지 영화를 본 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봄이 다가오기를 주저하는 밤, 차가운 숨을 토하며 극장을 나서며 어떨떨한 마음에 잠시 멍해졌다. 시종일관 현란하게 귀를 사로잡던 드럼 비트, 재즈 악단의 연주가 한껏 마음을 들썩여 놓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서자 느껴진 것은 지독한 고요함이었다. 연주가 끝난 뒤의 여운처럼 <위플래시>가 지나간 밤은 마치 무대 뒤의 어두운 조명처럼 적요했다. 잔뜩 감상에 취했다거나 영화를 보고나니 괜시리 허탈해졌다거나 극한의 감동 뒤에 찾아온 침잠함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위플래시>의 앤드류는 결국 웬수 같은 스승 테렌스 플렛처가 마음껏 던지고 부수며 망가뜨렸던 자신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낸다. 플렛처에 의해 끊임없이 던져졌던 숙제들은 결국 앤드류의 몫이다. 심술궂고 매정하며 괴팍한 스승 플렛처가 현실적으로 부조리한 캐릭터임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나칠 정도로 앤드류를 자극하고 궁지에 몰아넣는 그가 아무리 순수한 동기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심정을 가지게 된다. 아무리 처절한 극복을 통해서만 궁극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해도 어느정도 납득하고 타협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손에 피와 땀이 흥건하고, 집착과 강박 속에 사고를 당해도 약간의 타협의 여지조차 불허하는 플렛처의 모습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플렛처를 두고 진정한 스승을 표현한 캐릭터로 기꺼이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키팅 선생처럼 현실에 좀처럼 없는 선생에 열광한 것과는 정반대의 이유로 스승 플렛처를 달갑게 받아들일 수 없다. 학교에서 해임된 플렛처는 화해 무드를 취하는 듯 파멸하는 앤드류에게 손을 내밀지만 그는 또 다시 처절한 시련을 안겨준다. 

 

   
▲ 영화 <위플래시> 중에서

앤드류의 시련을 경감하고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 플렛처가 아니다. 원한다면, 그리고 쟁취하려면 앤드류 스스로 극복해야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플렛처의 존재는 영화 속의 특정 인물을 넘어 어떤 상징적인 존재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끊임없이 거칠게 앤드류를 몰아부치는 스승은 갈수록 높아지는 통곡의 벽을 세우고, 그것을 극복해야할 것은 자기자신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나를 몰아부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많다. <위플래시>를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아티스트의 특별한 성장기로 볼 수도 있으나, 동시에 평범한 앤드류들의 꿈과 목표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학교, 사회, 가족과 직장, 현실과 이상 속을 살아가는 앤드류들은 끊임없는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플렛처와 같은 스승의 역할이 앤드류의 성장을 견인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 모든 것은 앤드류가 원했던 것이다. 더 완벽한 것, 더 위대한 것으로 향하고 싶은 이들에게 플렛처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로도 들린다.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그 누구도 처음부터 달갑게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시련 속에 노력하고 좌절하며 극복하기를 거듭한다. 극복 속에 끝끝내 넘지 못한 벽 앞에 어느 정도 타협해야하는 것은 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살다보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지’라는 말은 술자리에 둘어앉아 우리가 포기의 과거를 납득하며 곧잘 되뇌이는 것이다. 수긍이 간다. 사실 살면서 평타를 치는 것만도 나쁘지는 않다는 말에 위안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위플래시>는 그것보다 한 발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OST를 먼저 듣고, 그 길로 부랴부랴 영화관으로 향했다. 보는 내내 북으로 세차게 두드리리는 듯한 자극의 마사지를 받고 나서자 ‘나’라는 앤드류와 또 다른 ‘나’를 원하며 꿈틀대는 플렛처 속에 말문이 막힌 것은 결코 지나친 일이 아닐 것이다. 플렛처가 미워도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일에 한번 더 세차게 자신을 몰아쳐 보는 것은 해볼만한 일이다. 영화를 통해 또 한번 용기를 얻게되는 것이다. 무아의 경지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지금 마주한 시련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시각 속에 한 가지에 불과할 뿐이더라도 영화 <위플래시>는 플렛처만큼 혹독하고 매몰차며 잔인하지는 않아도 내 속의 또 한 명의 플렛처를 소환해보는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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