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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영화
고전영화 들춰보기-<부초>
최정원 칼럼니스트  |  hanaire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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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3  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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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최정원] ‘부초같은 인생’ㅡ. 이보다 <부초>의 주인공 고마즈로의 인생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요?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유랑극단을 이끄는 배우 고마즈로가 아들의 출생의 비밀을 둘러싸고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겪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좀 속된 말로 하자면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소재 같지요?

 고마즈로의 아들을 둘러싼 갈등의 양상도 그렇습니다. 고마즈로의 정부 스미코는 고마즈로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복수심에 불타 같은 극단의 젊은 여배우를 시켜 그의 아들을 유혹하게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젊은 여배우는 정말로 아들을 사랑하게 되고, 고마즈로는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꽤 자극적인 줄거리지만, 부초를 보고서는 결코 막장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네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오즈 감독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가 사는 모습처럼, <부초>의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사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초>에는 뼛속까지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고마즈로는 모든 일이 일어나게끔 한 장본인이지만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고, 스미코에게 되려 호통을 치는 완고한 남자지만 결국 아들과 그의 연인을 인정하고 스미코를 다시 받아들입니다. 스미코는 부자간의 갈등을 부추기지만 결코 고마즈로를 끝까지 미워하지는 못합니다. 고마즈로의 아들 기요시는 자신을 삼촌이라고 속인 아버지를 원망하며 아버지를 다신 보지 않겠다 선언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아버지를 찾습니다. 젊은 여배우 카요는 스미코가 벌인 일에 동참하지만 결국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며, 그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해줍니다. <부초>를 보는 관객은 인간적인 그들의 모습을 좋아하게 됩니다.

 

 오즈 감독의 배경 음악과 세심한 화면 배치는 선곡도 영화를 독특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영화의 초반부, 극단 등장인물들의 소개가 끝난 후 나오는 배경음악과 시골 풍경은 매우 정겨운 느낌을 줍니다. 특히 투명한 유리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배경음악은 음악만 들어도 한가로운 시골 바닷가의 풍경이 떠오를 정도로 맑고 생생합니다. 영화의 맨 첫 화면에서는 맑은 날 잔잔한 바닷가에 멀리 등대가 보이며 유리병과 빨간 우체통, 어선 등 여러 사물들이 가지런히 정렬된 마을의 정경을 보여줍니다.

 오즈 감독의 스타일을 하나 더 꼽자면 등장인물들을 차분히 지켜보는 듯한 연출인데요, 이는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이 심화될 때에도 계속 유지됩니다. 스미코가 고마즈로의 아들과 그의 어머니를 찾아오자 고마즈로는 그녀를 끌고 나갑니다. 이 다음 장면이 참 독특한데, 보통 감독 같았으면 두 등장인물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말싸움을 벌이는 식으로 찍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즈 감독은 그렇게 찍지 않았습니다.

   
 

 

 

 

 

 

 

 

 

 

 

 

 오즈 감독은 스미코와 고마즈로 사이의 거리감을 탁월하게 시각화하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스미코와 고마즈로는 각자 양쪽 처마 밑에 서 있으면서 말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말싸움 도중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면서 평행선을 달립니다. 비가 쏟아지지만 그들은 젖지 않으며, 그들은 싸우는 도중에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말을 전혀 받아들이고 있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와중에 관객은 빨간 우산을 보고 묘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부초>를 떠올리면 당장 떠오르는 색감이 붉은 색인 것은 스미코의 빨간 우산 덕분일 것입니다.

 인물 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순간은 기요시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고마즈로가 그의 결혼을 반대할 때입니다. 이들은 가장 심각할 때조차 절제된 듯 보입니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이 몸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오즈 감독은 둘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합니다. 그나마도 싸움 장면은 두 장면밖에 되지 않으며, 인물들은 한 화면에 같이 찍힌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감독은 격정적인 순간조차도 관객이 그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만듭니다. 아버지가 필요 없다는 충격적인 말을 하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는 그저 멍하니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만 할 뿐입니다.


 결국 고마즈로는 다시 유랑길에 나섭니다. 잠시 정착하고자 했던 소망은 부초처럼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겠다며 그는 기차를 타러 떠납니다. 여기서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차역에서 고마즈로는 스미코를 만납니다. 고마즈로는 담뱃불을 붙여주는 스미코를 거부하지만 이내 그녀를 받아들이고 동행합니다.

 여기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기차 안에서 고마즈로를 바라보는 스미코의 시선입니다. 그녀는 고마즈로가 음식을 집는 막대기에 침을 뱉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다 이내 웃음을 짓습니다. 이 장면은 그들이 아직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에게 익숙한 부부 사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고마즈로는 앞으로도 부초같이 떠도는 삶을 살게 되겠지만, 그래도 관객이 마지막 장면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는 이유는 그의 곁에 아직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떠나가는 모습은 그리 쓸쓸해 보이지만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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