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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한 첩보영화도 취향입니다, 즐겨주세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B급 코드와 유쾌한 액션, 감독의 취향으로 만들어진 스파이 영화의 리부트
송지은 칼럼니스트  |  songjay93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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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4  22: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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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송지은] 정갈한 걸음걸이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루저 소년을 도와주기 위해 한 영국 신사가 걸어 들어온다. 몸에 흐르듯 꼭 맞는 근사한 투 버튼 수트와 깔끔히 넘긴 포마드 헤어, 뿔테 안경과 긴 장우산을 블랙 아이템으로 갖춘 신사의 반듯한 에티튜드는 그를 둘러싼 양아치들 사이에서도 단연 빛을 발한다. 물론 수트가 방탄이었다는 것, 그리고 장우산은 언제든 장전과 발사가 가능한 총이라는 사실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지만. 신사가 클래식한 영국식 발음으로 오늘의 교훈을 말해주며 몸소 보여주는 레슨을 시작으로 관객은 영화의 어마 무시한 매력에 빠져든다.

‘예의가 사람을 만든다.’ (Manners maketh man)

   
▲ 양아치를 상대하기 전 가게 문을 닫으러 가는 해리역의 콜린퍼스

웹툰 <노블레스>에 ‘꿇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눈높이 선생님 라이가 있다면 <킹스맨>에는 예절 선생님이 등장한다. 샌님 같은 복장에 고리타분할 것이라 예상했겠지만 수트핏 만큼 살벌한 그의 액션을 본다면 감히 확신하건대, 박수가 절로 터져나올 것이다.
첩보 영화의 정석을 지키면서도 호쾌한 액션과 디테일, 거기다 감독의 B급 마이너 취향까지 모두 저격한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다. (Kingsman: The Secret Service, 2015)

 

주체할 수 없는 B급 마이너함

사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마블(Marvel) 히어로 무비에 흔히 등장하는 스토리다. 태생적으로 좋은 운동신경과 타고난 두뇌를 가졌으나 불우한 가정형편 탓에 친구들과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양아치였던 에그시(태론 에거튼)에게 어느 날 자신을 재단사라고 소개하는 신사 해리(콜린 퍼스)가 나타난다. 해리는 에그시의 부친에게 자신이 목숨을 빚졌던 과거를 밝히며 그에 대한 보답으로 비밀 요원이자 현대판 기사(騎士, Knight)인 ‘킹스맨’이 될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에그시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킹스맨 선발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영화의 전개가 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이렇게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음에도 <킹스맨>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위를 덮고 있는 감독 메튜 본(Matthew Vaughn)의 마이너한 취향 때문이다. 매튜 본은 007시리즈와 같은 정석부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 (Kill, Bill, 2003)로 대변되는 B급 무비 연출과 폭력의 미학까지 수 많은 영화들을 오마주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탄생 시켰다. 다양한 히어로들의 유니폼에 지친 관객들에게 역시 스파이는 수트라는 클래식함을 강조하면서도 악당 발렌타인(사무엘L. 잭슨)의 머리 위엔 언제나 스냅 백이 쓰여져 있다. 독이 담긴 만년필과 수류탄 라이터 같은 올드한 느낌의 소품들이 등장하면서도 반대로는 <킬빌>에서 장검을 들고 있던 우마 서먼을 떠올리게 하며 두 다리에 날카로운 칼로 된 인족을 달고 있는 발렌타인의 비서 가젤(소피아 부텔라)의 강력한 존재감도 드러난다.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을 말살하려는 작전을 세우는 악당 발렌타인은 역설적으로 자기 손으로는 동물 하나 못 죽이며 피를 무서워하는 가지고 있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감독이 여태까지 첩보 영화를 구상하기 위해 많은 영화들에서 쌓아온 그의 덕후 기질을 느낄 수 있다.

   
▲ <킬빌>의 우마서먼을 연상하게 하는 가젤 역의 소피아 부텔라

영화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부조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감독의 뻔뻔하고도 자신만만한 태도에 있을 지도 모른다. 킹스맨들이 소지하는 전투용품과 같은 소품의 디테일, 연출, 대사, OST까지 모두 감독의 취향대로 메이저와 마이너를 섞어 만들어놓고 컬트적 요소를 처음 경험해보는 관객들의 당황스러운 심리는 신경 써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이토록 불친절한 감독은 야속하게도 재미 하나만큼은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잘 따라만 오면, 재미의 끝을 보여줄게’라는 대담함이 관객에게도 느껴져 우리는 그 자신만만함을 믿고 영화를 지켜보게 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해리의 말처럼 감독의 당찬 배포는 뻔하고 빈약할 수 있는 스토리에 그만한 정당성을 부여하여 작품을 그만의 개성으로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 말고도 이 영화엔 특별한 무언가가 많고, 관객들은 그것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감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곳곳에서 타란티노 감독의 영향이 자주 목격되는 만큼 감독이 폭력을 표현하는 방식은 꽤 고어하다. 그러나 적나라하게 살육을 다루는 와중에도 절대 유쾌함을 놓지 않는 것이 감독의 이 영화에서 지키는 철칙이다. 다양한 액션씬들이 나오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에서의 원테이크 씬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잔인한 동시에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준다. 카메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찍은 <올드보이>의 장도리 씬과는 달리 매튜 본 감독은 배우의 신체에 카메라를 달아 상대를 가격하는 장면을 더욱 실감나게 담기도 하고, 슬로우 모션과 패스트 모션, 줌인 아웃을 적절히 섞어 완급조절을 했다. 또한 사방에 포진되어 있는 상대과 한꺼번에 합을 맞추는 연출로 마치 관객이 실제로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생동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유혈이 낭자한 살벌한 장면을 그토록 공들여 찍어놓고 신나는 리듬을 가진 음악인 Lynyrd Skynyrd의 ‘Free Bird’를 중반부부터 OST로 삽입해 아주 유쾌하고 호방한 액션으로 만들어버려 잔혹함을 감지하기 어렵게 만든 감독의 취향은 도저히 말릴 수가 없다. (이런 식의 OST활용은 영화 전반에서 자주 등장한다.) 꽤 높은 수위의 액션씬이 아이언맨이 악당을 물리치는 것만큼 발랄하게 그려지는 감독의 마법은 마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에서 세 명의 남녀의 난교 장면을 패스트 모션으로 처리한 후 베토벤의 음악을 깔아, 성적인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기호로 만드는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 <올드보이>의 장도리씬에 영향을 받았다는 교회의 원테이크 씬 중 스틸컷

이 밖에 그의 마이너함은 영화의 종래에 갈수록 폭죽놀이처럼 (영화를 보면 무슨 말인 지 알 수 있다) 걷잡을 수 없이 터지는데, 그 스스로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를 만들 때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어떤 얘긴 지 알만큼 감독의 덕후 본성은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한다. 그래서 감당하기 벅차기도 하지만 감독의 모든 무리수를 용인하고 영화 속에 빠져든다면 성인용 오락영화로서는 손색이 없을 만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모든 첩보 영화들에게 보내는 매튜 본만의 헌정사

첩보 영화는 긴 역사를 거치며 발전해왔다. 어느새 더블-오-세븐(double -0-seven)은 젠틀맨의 초기의 이미지를 벗어나 육체파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넘어왔으며 가장 최근 시리즈인 <007 스카이폴> (Skyfall, 2012)를 통해 코드 네임 M과 Q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메튜 본은 자신의 영화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대 첩보 영화들에게 <킹스맨>이라는 헌정사를 보내는 동시에, 그들을 한번 더 비꼼으로써 그가 생각하는 첩보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정석은 지키되, 그만의 취향을 입히는 것이다.

   
▲ 영화 <킹스맨>의 '해리' 캐릭터 포스터
   
▲ 영화 <유어 아이즈 온리> 포스터

위 포스터는 <킹스맨>의 캐릭터 포스터이다. 쭉 뻗은 여자의 두 다리 아래에 인물을 배치하는 이 포스터의 구도는 007시리즈 중 하나 였던 <유어 아이즈 온리> (For Your Eyes Only, 1981) 의 포스터를 활용한 것이다. 포스터부터 007시리즈에 대해 감독이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냥 띄워주지만은 않는다. 감독은 예상치 못한 전개 변화로 관객의 예측을 매번 무너뜨린다. 발렌타인의 대사였으며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모토였던 ‘인생은 영화와 같지 않아’ 라는 말대로 흔히 클리셰로 여겨졌던 요소들을 타파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런 영화적 정서는 관객이 영화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첩보 영화는 여태까지 많아 왔고, 또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물론 고전이 있기 때문에 모던이 있을 수 있지만 이제 지겨워진 것들은 쳐 내고 새로운 감각을 입힐 때가 됐다고 감독은 말하고 있다. 어쩌면 이번 헌정사가, 올드한 것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지키고 그만의 새로운 영화들을 제대로 시작하려는 초석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트에 총을 쥔 콜린퍼스와 스냅 백을 쓴 사무엘 잭슨

BBC드라마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1995)과 <브리짓 존스의 일기> (Bridget Jones’s Diary, 2001>에서의 불멸의 로맨틱남 다아시는, 이제 50대로 들어섰지만 그 매력은 줄어들기는커녕 중후함과 함께 배가 되고 있다. 배우 콜린 퍼스는 첫 액션 영화인 <킹스맨>에서 남녀 불구하고 경탄할 수 밖에 없는 완벽한 수트 핏으로 고난도의 액션을 소화해냈다. 그의 전작 <싱글맨> (A Single Man, 2009)에서 이미 톰 포드의 수트를 입어 진정한 수트 포르노를 선사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여태까지 단골로 맡아왔던 전형적 영국 신사 역할에 감독의 연출을 거친 넘쳐나는 매력까지 장착하여 유일무이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육체적으로는 더 건강하게, 눈빛과 얼굴에서 전해지는 감정은 더욱 농익은 그의 연기는 아직도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중임을 확인시켜 준다.

배트맨은 조커가 있기에 빛나고 조커는 배트맨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영화에선 악당의 임팩트가 곧 주인공만큼 중요하다. 악당 발렌타인 역을 맡은 사무엘L. 잭슨 역시 혀 짧은 발음과 함께 엄청난 존재감으로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아이 같은 순수함과 악마성을 손바닥 뒤집듯 보여주는 사무엘 잭슨과, 묵직하지만 섬세한 눈빛연기로 관객을 설득시키는 힘을 가진 콜린 퍼스가 대면하는 장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너지는, 평온하게 저녁 식사를 나눠 먹는 장면에서조차 맞부딪친 광선검 파편이 튈 정도의 강력한 힘의 경쟁을 보인다.

   
▲ 독특한 캐릭터 발렌타인 역을 맡은 사무엘L. 잭슨

마지막으로 킹스맨의 청년 히어로 에그시 역을 맡은 태론 에거튼 역시 대 배우들 사이에서 눈에 띌 정도로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생사가 걸려있는 중대한 장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비속어를 섞어가며 20대의 현주소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오버스럽지 않으면서 편안하다. 또한 자신이 처한 극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그의 불퉁스러운 태도는 첩보물이나 히어로 무비에서 흔히 등장할 수 있는 진한 동료애로 인한 부담스러운 감정들을 깔끔히 중화시켜서 영화 자체가 가진 담백하고 시니컬한 분위기를 유지시켜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현실성이라곤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 캐릭터의 매력이 영화의 색깔을 더 선명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각자의 역할에서 묵직한 무게감을 담당하며 그만한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들 덕분이 아닐 수 없다.

   
▲ 양복점 '킹스맨'의 거울 앞에 선 해리와 에그시

 

사실 감독의 특이 취향은 그의 전작들인 <액스맨 : 퍼스트 클래스> (X-Men: First Class, 2011)와 <킥애스> (Kick-Ass, 2010, 2013)에서 그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킹스맨>에서 그가 여태까지 쌓아두었던 엄청난 잠재력이, 좋아하는 소재와 B급 코드를 만나 근사하게, 또 제대로 폭발했다. 그의 뚝심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같은 취향을 공유하고 있는 덕후들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 까지 감독만의 유쾌한 발상으로 사로잡고 있으며 연일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매튜 본은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의 반응이 좋으면 후속편을 낼 생각이 있고 그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으니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이 범상치 않은 영화의 후편 제작을 위해서라도, 잔인한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두 한번쯤 영화관에서 <킹스맨>을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 중간 중간 아델, 레이디 가가, 데이비드 베컴, 엘튼 존 등 특급 카메오들도 등장하니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또한 영화가 끝난 후 쿠키영상도 있으니 바로 자리를 뜨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기를 바란다. 아직 2015년으로 달력을 넘긴지 얼마 안된 연초라 섣부른 감이 있지만, 올해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비범한 성인용 첩보 액션 오락 영화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의 작품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하루 빨리 직접 영화를 만나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 킹스맨의 아이덴티티가 될 아이템들로 배열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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