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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영화
예술과 상품, 그리고 여성의 침묵<빅 아이즈>
이준건 칼럼니스트  |  dlwnsrjs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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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3  14: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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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빅 아이즈>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 지난 1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아이즈>가 개봉했다. 직역하면 ‘큰 눈’이라는 이 영화는, 글로 설명하기보단 포스터를 직접 보는 것이 훨씬 간결하겠다. 한국에선 그리 유명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젊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보고 지나쳤을 테다. 큼지막하게 그려진 큰 눈,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모든 사연을.

영화는 한 여성이 딸과 함께 집에서 그리고 남편에게서 탈출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50년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나레이터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아직 그런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라고 말이다. 남편 몰래 도망치고 자신의 유일한 재능인 ‘빅 아이즈’를 그려 생계를 유지하려하는, 그러나 그것이 영 쉽지 않음을 느끼는 마가렛. 그녀는 공원에서 즉석초상화를 그려 판매하던 중 자칭 화가라 말하는 월터를 만난다. 자신이 사실은 부동산 중개업자지만 언제나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고 고백하는 솔직한 월터에게 마가렛은 호감을 느끼고, 결국 마가렛은 월터의 청혼을 승낙한다.

비슷한 예술적 취향과 자부심을 갖고 있어 두 사람 다 신혼 초기에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월터의 술주정으로 마가렛의 ‘빅 아이즈’가 유명하게 되자 둘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월터는 자신과 결혼한 마가렛이 그림에 월터의 성(姓)인 ‘킨’을 그려넣은 사실을 알았고, 그는 자신이 빅 아이즈의 창시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부부 사이의 계약 아닌 계약이 이루어진다. 마가렛은 그림을 그리고, 월터는 마가렛을 위한 풍족한 예술 환경을 제공하며 작품의 홍보를 담당하기로. 물론 작품의 저자로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월터였다.

   
▲ 빅 아이즈를 그리는 마가렛.

자신의 작품을 빼앗긴 마가렛은 월터와 위태로운 관계의 줄타기를 하던 중, 마침내 갈라서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사건을 경험한다. 어느 유명한 비평가가 월터의 성이자 마가렛의 성인 ‘킨’의 작품을 맹렬히 비난한 것이다. 언제나 자신이 대단한 예술가이자 화가라는 착각에 빠져있던 월터에게 이것은 큰 충격이었고, 그 길로 마가렛에게 달려가 혹독하게 따지며 집에 불을 지른다. 결국 마가렛은 또다시 딸과 함께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한때 월터와 행복한 신혼을 보냈던 하와이로 떠난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던 마가렛은 점점 심해지는 월터의 협박에 고소를 준비하고, 기묘하고 희한한 월터와 마가렛의 재판이 시작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화가는 누구일까? 2004년 12월 1일, 영국의 미술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뒤샹의 <샘>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혔다. 한때는 그것이 예술인가 아닌가를 놓고 활발한 논쟁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공산품조차 작가가 의미가 부여하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이 인정됐다. 이러한 미술계의 인정은 그동안 있었던 모든 예술의 기준을 뒤바꾸어 놓았고 새로운 장르의 탄생에까지 영향을 준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의 중심에 뒤샹의 작품이 있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 뒤샹의 <샘>(1917)

이 영화 또한 그런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만약 100년 전의 미술가에게 ‘공원에서 즉석 초상화를 그려 팔던 사람의 작품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조금은 고민하겠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당시는 미술의 분명한 기준이 있었던 시기였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작품은 예술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50년대만 해도 그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영화에서 비평가가 킨의 작품에게 가혹한 판단을 내린 이유도 아마 그런 까닭과 연관이 있을 테다.

게다가 킨의 작품에는 ‘상업성’이라는 요소도 함께 크게 들어가 있었다. 자신의 작품이 유명해지고 작품을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싶었던 월터는 아내의 그림을 비싼 값에 팔고 그림이 프린트된 엽서와 포스터까지 판매한다. 이러한 전적은 마가렛의 그림이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상품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예쁘고 특이하다는 이유로 팔려나가는 그녀의 작품은, 아우라를 지니지 못한 채 싼 값에 팔려나가는 공산품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그녀의 작품은 과연 예술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영화는 반대로 그녀의 그림이 예술이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녀의 작품 또한 예술로서 인정받을 가치가 충분했다는 말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나레이터는 말한다. “그녀에게는 가장 소중한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딸과 그림이었다.” 비평가의 평론에 일일이 가시를 돋우며 신경을 썼던 월터와는 달리 마가렛은 꿋꿋이 작품을 그렸다. 뒤샹이 미술계의 혹독한 비난을 신경 쓰지 않고 변기를 샘이라고 칭했듯이, 그녀 또한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그림 그리기를 계속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좋아해주었고, (가격이 모든 가치의 척도라 할 수는 없지만) 비싼 값에 팔려나간 걸 테다.

   
▲ "그녀에게는 가장 소중한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딸과 그림이었다."

비록 평론가는 인정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사람들은 인정해주었다. 미술에 대해 잘 몰랐던 판사 또한 ‘빅 아이즈가 월터가 아닌 마가렛의 작품임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녀만의 화풍을 다른 누군가가 훔쳐갈 수 없는 하나의 재산으로 인정한 것이다. 일견 보기에는 특허 출원과도 비슷하지만, 대상이 미술 작품이라는 점에서 판결의 의미는 그녀의 그림들 또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녀만의 독특한 화법, ‘마음의 창인 눈을 크게 그리는’ 빅 아이즈는 이제 하나의 예술품이 되었다.

 

예술인가, 상품인가? 끊임없는 논쟁 속에서 영화는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낸다. 그 둘의 경계가 얼마나 흐릿한지, 모든 작품이 예술이 될 수 있으며 반대로 상품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팀 버튼 감독은 여기에 한 가지 의견을 덧붙인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떤가? 여성은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아니면 여성 또한 상품으로 취급되는가?

 

처음 장면이 남편으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후에도 그녀의 삶은 철저하게 남성에 종속된 삶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애초부터 자신의 성을 가질 수 있었더라면 ‘킨’ 때문에 고통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마가렛은 어떻게든 여자 혼자 생계를 꾸려 나가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그녀는 월터와 결혼한 뒤 마치 공장 속의 기계처럼 그림을 그린다. 주문자인 월터가 어느 작품을 그리라고 명령 혹은 설득하면 그녀는 마지못해 그림들을 찍어 낸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가치가, 그림을 그려내는 기계로서의 가치가 떨어지자 그녀는 내쳐진다. 마치 수명을 다한 건전지가 쓰레기통에 내던져지듯이.

   
▲ 그녀는 마치 공장처럼 그림을 그려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다행히 그녀의 성공으로 끝이 난다. 그녀는 승소했고, 자신의 그림과 딸을 모두 지켜낼 수 있었다. 영화가 실화라는 점에서 월터는 2000년도에 죽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살아 빅 아이즈를 그리고 있다. 어쩌면 영화는 예술과 상품이라는 주제 뒤의 여성의 침묵이라는 주제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언제나 침묵해야만 했던 여성, 남성의 이름 뒤에 그림자처럼 숨어 다녀야만 했던 여성. 그 여성이 재판을 통해 자신의 작품이, 그리고 자기 자신이 인정받았으니 어쩌면 빅 아이즈는 여성의 권리 신장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처음 나레이터인 “아직 그런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라는 말을 뒤집어 보자. 아마 그때 이후 그런 여성들이 많이 등장했으니 나레이터도 그렇게 말한 게 아닐지.

 

그림과 예술을 주제로 다룬 영화라 그런지 시각적으로 볼거리도 풍성하고 각 장면들 또한 그림처럼 아름답다. 실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최후에는 권선징악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편하게 보려거든 얼마든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한편으론 재미있게 다 보고 나서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점 하나가 찍힌다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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