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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스나이퍼>_ 외로운 저격수의 시간
김명선 칼럼니스트  |  tapy313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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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3  11: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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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 매거진=김명선] ‘전쟁의 사신(死神)’이라 불리는 직업이 있다. 원거리 또는 적군 한가운데서 정확한 사격을 가하는, 극도의 인내심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직책, 바로 ‘저격수’이다. 작은 총알 하나로 적군의 발을 묶고, 주요 지휘관을 소리 없이 사살하니 죽음의 신이라 불릴 만도 하다.

영어권에서는 이들을 스나이퍼(Sniper)라고 부른다. 동작이 아주 빠른 도요새(snipe)를 사냥할 정도로 총을 잘 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스나이퍼가 저격수를 뜻하는 낱말로 널리 사용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부터 인데 당시 저격수들은 부대와 떨어져 개별적 임무를 수행하였다고 한다. 지휘관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표적을 찾아 사격하는 나름 자유로운 병사인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만큼 외롭기도 한 존재가 바로 저격수이다. 일 분 일 초, 매 순간 그들은 선택을 내려야 한다. 조준경을 통해 보이는 아이를 사살해야 할지 말지 판단해야 하는 그 순간만큼 외로운 시간이 또 어디에 있을까.

 

   
▲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포스터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견뎌내야 하는 탓에 저격수 앞에는 ‘외로운’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외로운 저격수의 이야기가 있다. 전설이라 불리는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를 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다. 악마와 영웅,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린 그는 방아쇠를 당겨야 할 때와 당기지 말아야 할 때를 잘 선택하는 뛰어난 저격수였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은 카일의 엄호에 용기를 얻어 적진으로 돌진했고, 적들은 어디에서 올지 모르는 저격수의 총알에 위축됐다. 전쟁은 계속되고, 카일의 사살기록은 늘어났다. 그리고 그는 전설이 되었다.

 

   
▲ 영화의 한 장면, 하루 일과를 마친 크리스 카일

누군가를 죽인 기록이 자신의 하루 성과물이라는 기분은 어떨까. 카일에게 저격이란 그저 직업일 뿐이다. 해야 할 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입대 전 카우보이였던 그에게는 어쩌면, 로데오에서 이겨 벨트를 따내는 것이 더 전설적인 일이다. 특급 저격수가 된 그가 바라는 건 긴 사살목록이 아니라 단지 더 많은 전우를 보호하는 것이다.

 

   
▲ 영화의 한 장면, 은퇴 후 크리스 카일의 모습

동료를 도와준다는 명분에 사로잡혀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기던 그는 은퇴 후 전쟁터와 집,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혼자만의 시간에 갇힌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시작이다. 오로지 당사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외로운 고통의 시간. 꺼진 텔레비전을 마치 조준경처럼 응시하는 그에게 들리는 것은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닌 전쟁터의 소음이다. 군인들의 외침과 바람의 흐름, 자신의 호흡 소리를 들으며 그는 또다시 방아쇠를 당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포스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전쟁의 승리나 기쁨 등을 담아내지 않았다. 지독한 슬픔이나 절망도 드러나질 않는다. 그 대신 그는 덤덤하게 한 저격수의 삶을 조준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망원조준경을 통해 저격수가 겪는 선택의 순간들을 경험한다. 이 영화에서 전쟁은 더 이상 볼거리가 아니다.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그곳과 연루된 모든 이에게 소리 없이 고통을 안겨다 주는 생지옥이다.

미국 내에서 이 영화를 두고 '전쟁 미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니 영화 속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타겟은 좁을수록 적게 빗나간다.’ 제목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스나이퍼’라는 글자를 과녁으로 삼고 싶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전쟁보다는 직업으로서의 군인, 그중에서도 외로운 저격수의 시간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 우린 많은 미국의 전쟁영화를 경험했다. 넓게 조준해 빗나가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스나이퍼의 삶에 명중하는 경험을 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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