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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의 르포르타주](1) 백남준과 플럭서스
김민준 칼럼니스트  |  lawrence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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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29  14: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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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1932-2006)

[디아티스트매거진=김민준] 20세기는 급변의 시기였고 우리는 많은 기념비적 예술가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국내외 모든 예술가들은 저항하고 소통했다. 이성의 지나친 합리성에 등을 돌리고 인간 실존의 길을 찾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기존의 문화, 예술은 안주하기 급급했으며 새로운 시각을 가진 예술가들은 현실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반예술이 곧 인생‘ 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동안의 기존 예술의 불신을 종식시키기에 충분한 행동 재현의 근거를 가지고 있었던 전위예술운동 “플럭서스(Fluxus)” 그리고 존 케이지와 플럭서스를 통해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독보적인 예술 흐름을 주도했던 백남준(1932-2006)을 시작으로 국내외 동시대 미술의 *르포르타주의 막을 올린다.

 한국의 기념비적 작가이자,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 등 다양한 수식어를 이끌고 독보적 예술흐름을 주도했던 백남준. 모니터를 연쇄적으로 설치하는 비디오 설치의 개념을 탄생시킨 것, 그리고 음악, 퍼포먼스, 비디오를 융합하여 새로운 예술을 보여준 그는 ‘전방위적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오늘은 그의 9번째 기일이다. 그의 기일과 마주한 동시대 미술은 무엇을 사유하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왼쪽부터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

플럭서스(Fluxus)

 플럭서스(Fluxus)는 1960년대 초반 미국 출신의 예술가인 조지 마키우나스에 의해 추진되었다. “유동”, “변화”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모든 예술적 의도는 상대적으로 인위적이며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바탕으로 ‘*융합매체(Mixed Media)적 액션형식의 반예술적 전위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전적 정의로만 본다면 극단적이고 과격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플럭서스의 의의는 섣부르게 판단하면 곤란하다. 동시대 예술은 플럭서스로부터 끊임없는 소통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개념미술, *포스트모더니즘도 플럭서스와의 소통을 통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영향력은 고사하고 그들의 작품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할 것이다.

   
▲ ⓒ존 케이지, 4분 33초 악장, 1952년
   
▲ ⓒ요제프 보이스,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 퍼포먼스, 1965년
   
▲ ⓒ백남준,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퍼포먼스, 1967년, 백남준 아트센터

 플럭서스로 대표되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이다. 일반적 접근을 할 때 상당히 난해하고 사진으로 본다면 어리둥절할 뿐이다. 사실 위의 한 작품은 악장이고 나머지 두 작품은 퍼포먼스를 실행할 때의 부분 사진들이 때문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존 케이지의 악장 형태 <4분 33초>는 제목 그대로의 시간동안 무대에 있는 연주자들은 연주를 하지 않는다. 재현되는 상황에서 존재하는 것은 관객들과 연주자들의 숨소리, 기침소리와 같은 일상적인 소리들로만 구성된다. 즉 서로가 예술 작품에 참여하게 되는 순간을 노래하게 된다. 두 번째로 요제프 보이스의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는 1965년 그가 자신의 개인전에서 실행한 퍼포먼스다. 퍼포먼스의 내용을 보자면 유리창 너머에선 관객들이 그를 보고 있고 요제프는 꿀과 금을 얼굴에 도배하고 2시간 동안 죽은 토끼를 안고 마치 살아있는 이에게 설명을 하듯 그림을 상세하고 간절하게 설명해주는 형식이다. 그리고 당황해하는 관객들에게 중요한 말을 언급한다. “완고한 이성주의로 무장한 인간보다 토끼가 더 잘 이해한다. 나는 토끼에게 그림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그림을 그저 훑어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즉 그의 퍼포먼스는 일방향적 소통으로는 해석하기에 무리가 있다. 아직까지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고 다양한 이해를 요하는 작품이다. 두 작품만 언급했지만 난해하고 요제프의 말처럼 완고한 이성주의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세 번째 백남준의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1964년 뉴욕으로 건너간 백남준은 클래식 첼리스트인 샬럿 무어만과 함께 음악, 퍼포먼스, 비디오를 결합한 융합매체 작업들을 진행한다. 그 중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는 1967년 실행한 것으로 샬럿 무어가 상반신 노출을 한 채 연주를 진행했고 퍼포먼스의 제목그대로 섹스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나치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지만 본능적 행위에 대한 이상을 노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요제프의 퍼포먼스처럼 해석은 자유롭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플럭서스의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보았다. 난해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플럭서스가 펼친 저항의 결과가 새로운 예술, 이상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 ⓒ백남준,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습작, 퍼포먼스, 1960년

백남준과 플럭서스의 상관관계

 1956년 독일로 유학길을 나선 백남준은 처음부터 플럭서스에 가담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독일에서 음악을 전공할 때 플럭서스는 형성되지 않았다. 플럭서스가 태동하기 전 1958년에 백남준이 아방가르드 음악을 표방하는 존 케이지와 만나게 되고 일생일대의 대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공연 중 바이올린을 내려쳐 부수는 해프닝을 보여주는 <존 케이지에 대한 오마주>가 대전환을 설명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요제프 보이스와의 만남이 이루어 진 것도 여담이다. 그리고 1960년에 2대의 피아노를 파괴하고 관객의 셔츠,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고 머리를 샴푸시키는 격렬한 행동주의 퍼포먼스인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습작>은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와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예술적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은 플럭서스가 극단적인 행보를 하는 것과는 다르게 갑작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에 대한 ‘저항’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었던 시기라고 판단해본다면, 진부함이 아닌 새로움이 절실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플럭서스가 형성된 것은 갑작스러운 우연이 아닌 단계적인 필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백남준과 플럭서스의 수많은 접점은 오늘날 우리가 사유하는 비디오 설치까지 이어지고 개념을 확장해나간 것을 의미한다.

   
▲ ⓒ백남준, TV부처(TV Buddha), 설치, 48 × 51 × 34 cm, 2002년,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 9주기에 고찰해야하는 큰 관점

 백남준은 저항의 핵심이었던 플럭서스를 전신으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보여주었다. 플럭서스의 개념을 더 파고들어보면 어떤 내용의 표현이 아닌 시간의 경과로 저절로 구성되는 표현으로 제한해야한다는 내용이 있다. 백남준은 모니터와 같이 새로운 영역을 ‘시간의 경과로 저절로 구성되는 표현’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철저한 플럭서스 정신으로 변형하고 기념비적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러나 한국 동시대 미술에서 백남준과 같이 기념비적 작품을 보기 힘들다. 그 이면을 파고들자면 수 없이 얽혀있는 실타래를 볼 수 있다. 동시대 미술을 사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백남준 9주기가 보여주는 큰 관점은 바로 ‘기념비적 미술의 부재’ 이다. 즉 새롭고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부재의 간극을 해소해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예술이 자본에 종식되는 것과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플럭서스의 태동처럼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유하는 동시대 미술은 이성의 지나친 합리성과 더불어 자본에 저항해야하는 시점이라고 보여 진다. 한국 동시대 미술은 작가들 간의 소통의 부재, 대중들과의 소통의 부재와 같은 간극을 해소하고 서로간의 협력을 통해 유의미한 상생을 도모해야할 것이다. 20세기에는 국내외 기념비적 명성을 떨쳤던 문화, 예술 운동이 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21세기 동시대 미술에서는 ‘백남준’ 이라는 기념비적 예술가로 그칠게 아니라 한국 출신의 수많은 작가들이 그룹을 형성하고 기념비적 작가로의 활동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한국의 새로움과 깊이를 추구하는 작가들이 뉴웨이브를 불러일으킬 한국의 동시대 미술을 기대해본다.

 

*르포르타주(reportage): 기록 문학, 보고 문학 등으로 해석. 동시대 미술과 르포르타주는 기록문학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고찰을 하는 의미로 재해석한 의미로 사용.

*융합매체(Mixed Media): 영상이나 회화, 음악 등의 예술 작품에서 다양한 요소가 혼합된 것을 이를 때 사용하는 용어

*개념미술(Conceptual Art): 예술 작품이 구현하는 개념・사상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예술.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탈(脫)근대주의. 20세기의 모더니즘을 부정하고 고전적 역사적인 양식이나 수법을 받아들이려는 예술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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