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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영화
당신의 관념을 인버전할 테넷미래가 지키고자 한 것은 미래가 아니었다
민소영 칼럼니스트  |  msy6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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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22  23: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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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칼럼은 영화 <테넷>의 스포일러를 다량 포함하므로, 관람 후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 copyright © 네이버 영화

 

근래 인간의 과오로 황폐해진 자연으로부터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효과를 자주 생각한다. 올해 초 창궐해 지금까지 전세계를 공포와 위협에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지난 여름동안 미친듯이 퍼붓는 폭우로 곳곳에 수해를 입은 국가들, 지나칠 정도로 빈번한 산불. 그 모든 것이 우리가 미래를 방관한 채 지금의 편의에 안주한 결과라고 많은 학자들은 앞다투어 당장에 변화가 시급함을 매일같이 언급하고 있다. 인류는 긴 역사를 지나오면서 자연의 많은 부분을 훼손했고, 이제 그 대가를 다음 세대들이 이어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먼 미래의 일 일것만 같았던 기후 변화는 당장의 현실로 나와 우리 모두의 일상을 저지하고 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만년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듯이, 언젠가 인류도 같은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당장 오늘의 현실이 되었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 때문에, 조상들이 미처 모른채 혹은 알면서도 모른채 저지른 만행들이 고스란히 인류의 절망으로 돌아온다고 느끼는 이들은 분노할 것이다. 필자는 막연히 그 분노와 절망 속에 내 후손을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지난 인생동안 간절한 꿈이었던 자식을 낳는 기쁨을 즐기지 않으리라 결심한 바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결심의 근원에 삐뚤어진 내면을 영화 <테넷>을 통해 들여다보고야 말았다.

‘감당할 수 없는 세상에 자식을 내놓은 것이 잘못’, ‘현세대의 종말로 보존하려는 미래’라는 개념은 마치 우주의 절반을 먼지로 만들어버린 마블의 타노스나 가질 법한 관념이다. 영화 속에서 '세상의 인버전'을 통해 모든 것을 과거로 되돌려 미래를 보존하고자 제3차대전을 벌이는 미래의 세력들이 바로 이번 영화 <테넷> 속의 타노스겠다. 그런데 필자가 하는 생각의 근본이 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다음 세대가 건강한 지구를 얻고 미래를 보장 받는다면, 현재를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그 오만함이 영화 <테넷>을 보며 증발했다. 단순히 영화 하나가, 대사 하나가 한 사람의 관념을 인버전(inversion)한다.

 

   
▲ copyright © 네이버 영화

 

매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과학과 철학의 집요한 결과물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인간적인 요소에 중심을 두고 있다. <다크나이트>는 무너진 인간성과 그럼에도 그 속에서 인간 내면의 선함을 믿으며 고군분투하는 흑기사가 있었고, <인터스텔라>에서는 방대한 우주와 5차원에 대한 상상력보다도 아버지의 사랑을 절절히 느끼게 했다. <인셉션>도 아버지의 사랑, 남편의 사랑, 자식의 사랑이 있었고, <덩케르크> 또한 인류애가 내재했다. 그의 신작 <테넷>도 다를 것이 없다. 다가오는 현실이 된 기후 변화 앞에서 일어날 법한 인간적인 첩보 액션의 탄생이다. 놀란 버전의 007이라는 후기가 있을 정도로 첩보액션에 적합한 요소들과 놀란 특유의 메시지가 결합되어서 오묘한 SF가 탄생했다. 특히나 시간의 순행과 역행, 그 속에서 발견되는 진실들을 발견하는 재미와 쾌감이 대단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이름이 없다. 극 중 유일하게 이름이 없는 이 인물은 스스로를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 즉 '주도자'라고 부른다. 세상의 인버전을 막고자 발 벗고 나서 인류를 지키는 조직 '테넷'을 설립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에 다다르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닐(로버트 패틴슨)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그 둘의 우정 속에서 테넷의 규정이 만들어지고, 작전이 시행되며, 결국 세상을 구하기까지 그의 역할이 얼마나 큰가를 영화 속 단서들로 유추해볼 수 있다.

 

   
▲  copyright © 네이버 영화

 

첫 장면에서 오페라 극장에 침투해 한 고위직 인물을 구출하고, 플루토늄 241(실제로는 9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 알고리즘 중 하나)를 회수해 나갈 때 공격받는 주도자를 구하는 인물이 있다. 겹겹이 무장하고 있어 얼굴을 식별할 순 없지만, 그가 등을 돌렸을 때 가방에 달린 빨간 끈으로 닐임을 확신할 수 있다. 해당 빨간 가방끈은 주도자와 마지막 인사를 하는 닐의 뒷모습에서도, 스탈스크-12 작전을 시행하던 중 지하에 잠긴 문을 열어준 인물에게서도 발견된다. 모든 시간대에 주도자의 조력자로서 활약하는 닐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탄식할 수 밖에 없다. 닐이 던진 말도 영화의 주축이 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거다."

회전문을 통해 인버전하게 되더라도 결론적으로 변치 않는 운명에게 그는 '현실'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마도 큰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아니요, 과거를 바꿔 다른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해 맞서 나가는 것임을 역설하고자 했을 것이다.

영화에는 여러 개념들이 등장한다.  인버전, 핵분열로 인한 열복사, 사물의 엔트로피, 양전자 역학, 할아버지 역설, 평행우주며, 다중현실... 그렇지만 결국에 이 모든 것은 장치일 뿐 주요한 메시지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리게 한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다가오더라도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렇기에 세상을 인버전함으로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를 보장하기보다, 생존은 각 세대가 마주할 미션이며 이것이 결코 방관이 아니라는 주도자의 대사는 필자가 지난 몇 개월을 혼자 마음 아파하던 것들에 위로와 힘을 주었다. 시간의 순행과 역행 중 맞부딪히는 모든 충돌에도 언제나 고군분투하고 바뀌는 것은 '지금'이요, 현재만이 '현실'에 힘을 싣는다. 특히나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순간, 같은 마음으로 기꺼이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강력한 힘을 닐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놀란이 우리를 설득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미래의 주도자가 지키고자 한 것은 인류 학살을 통해 보장된 미래가 아닌, 불투명한 미래를 함께 바라보고 행동하는 개개인이며 그 속에 얽힌 운명이자 현실일 것이다. 이 시국에, 마스크를 쓰고 본 영화 한 편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와닿고, 하나의 움직임이 둘이 되고 여럿이 되어 전세계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꿔나가길 감히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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