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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영화
서늘한 매력을 지닌 스릴러, <살인자의 기억법>
최정원 칼럼니스트  |  hanaire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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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9  09: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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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꽤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딸과 함께 살아가는 노쇠한 어느 살인자가 기억 상실에 걸렸습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기는커녕 과거 자신의 범죄 경력까지 죄다 들킬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합니다. 영화에는 주인공 병수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항상 깔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극에서 가장 중요한 긴장감은 병수의 딸을 죽이려는 살인자가 병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작품의 톤과 분위기입니다. 시나리오를 시각화하여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영화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텍스트를 스크린에 이미지와 사운드를 사용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에게 달려 있습니다. 보통 스릴러 영화는 긴박감 넘치는 사건과 상황을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그에 비해 <살인자의 기억법>은 예고편에서 보았던 대나무 숲의 한적하면서도 스산한 느낌이 마음에 들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실체를 가리는 뿌연 안개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고요한 호수의 이미지가 주는 서늘하고 모호한 분위기가 부각됩니다. 주인공 병수의 노쇠함과 삭막함, 수상한 인물인 태주의 모호한 분위기가 극을 이끌어 갑니다. 영화는 이미 살인 경력이 있으며 자신의 행동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병수와 친절하고 자상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가진 태주라는 인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전반부에서 잠시 숨을 고른 영화는 어느 장면을 기점으로 결말을 향해 빠르게 질주합니다. 한편 간혹 등장하는 블랙 코미디는 영화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종종 병수와 함께 등장하는 황석정 배우는 매우 인상 깊은 씬 스틸러이며, 후반부의 사건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후반부 전까지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갈등에 집중합니다. 주인공 병수의 심리를 따라가는 관객 역시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처음부터 서로 강하게 맞부딪히기보다는 치매에 걸린 사람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기타 스릴러 영화보다는 긴장감이 다소 느슨할 지는 모르지만, 과거 살인자였던 주인공이 또다른 살인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마주하며 긴장감을 높여가는 상황은 꽤 흥미롭습니다. 뿌연 안개 속에 가려진 인물과 진실은 모호하고, 기억을 잃어가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며 믿었던 사람조차도 더는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리뷰를 찾아보니 이 영화가 주인공의 살인을 옹호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병수가 지금까지 저질러 온 살인이나, 태주가 저지른 살인은 모두 같은 살인입니다. 극 중에서 태주가 병수의 살인을 지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를 가져다 댄다 한들 두 주인공은 모두 살인에 핑계를 대는 살인자일 뿐입니다. 둘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정당 방위를 제외하고는 어느 쪽이 더, 혹은 덜 치사한 이유를 대느냐의 차이입니다. 후반부에서 두 주인공이 대결을 벌이는 행위도 각자의 생존을 위해서일 뿐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전반적으로 기대 이상으로, 각각의 이미지에 맞게 캐스팅을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병수 역은 설경구 배우가 아니면 어울릴 만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는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내면 심리도 잘 표현했으며, 주연 배우로서의 무게감을 잡고 극을 이끌어 나갑니다. 설경구 배우는 오랜만에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배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극장에서 그의 연기를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 다른 살인자 태주 역을 맡은 김남길 배우는 설경구 배우가 내공이 만만치 않음에도 밀리지 않고 극의 긴장을 유지해 나갑니다. 평범하고 순박한 인상이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의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은희 역의 김설현 배우는 생각 이상으로 마스크나 연기가 좋았습니다. 스크린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마스크였고, 극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제 몫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발전하고 좋은 작품을 만난다면 배우로서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다만 다소 모호한 결말은 호불호가 갈릴 듯싶습니다. 결말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말이 극의 전제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영화는 결말에 대해 두 갈래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여러 길을 제시하는 느낌이어서,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오로지 관객의 몫입니다. 다른 결말을 보고 싶으시다면 <살인자의 기억법 - 새로운 기억> 을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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