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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위해 영화가 할 수 있는 일
최정원 칼럼니스트  |  hanaire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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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0  12: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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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수살인> 스틸컷   ©네이버 영화

 ‘암수살인’은 공식적인 범죄 통계조차 잡히지 않은, 말 그대로 ‘어둠 속에 묻혀버린’ 사건을 의미한다. 암수 사건은 뚜렷한 범인이나 증인, 혹은 증거가 없어 수사 기관에서도 해당 사건을 해결하기가 어렵다.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암수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쉽지 않다. 사건이 그대로 묻혀버린다면 남는 것은 죽음의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낼 수 없는 피해자와 유족의 억울함뿐이다. 영화 <암수살인>을 보는 관객은 조사 과정에서 사건의 실마리조차 건지기 힘들어 세간의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유족과 피해자의 입장에 서 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암수살인>은 개봉 시작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피해자의 유족이 영화를 제작하는 측에서 동의를 받지 않고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순식간에 온라인상으로 관련 기사와 글들이 퍼졌고, 영화는 자칫 논란으로 인해 흥행이 좌초될 위험이 있었다. 다행히 유족과의 합의는 원만하게 마무리가 되었고,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작품 자체로 영화가 더 이상의 논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피해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영화계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피해자에 대한 예의

 언제부턴가 국내 관객들은 범죄 장면을 과도하게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에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한 징후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감수성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관객의 뚜렷한 변화를 감지한 시기는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개봉될 당시였다. 영화는 그리 많은 관객이 관람했다고는 보기 힘들었지만, 범죄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도 범죄의 잔혹함과 피해자의 아픔을 고발했다는 평을 받았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는 피해자의 고통을 묘사할 때 가해자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다. 물론 범죄자의 잔인함을 보여주기 위해 어느 정도의 묘사가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영화의 포커스는 피해 사실이 아닌 범죄자의 폭력성에 집중된다.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 역시 조금씩 감지되고 있었다. 성폭행 피해자의 아픔을 다룬 수작이라 평가받았던 <한공주>,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다뤄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귀향>조차 피해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논란의 정점은 <V.I.P>였고, 미처 예상치 못한 논란으로 인해 영화는 결국 관객의 외면을 받아야 했다.

 <암수살인>은 이러한 흐름과는 결이 조금 다른 영화다. 영화는 기존 스릴러 영화와 달리 장르적 쾌감에 집중하지 않는다. 가해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은 남성 피해자가 강태오에게 살해당하는 한 신 뿐이며, 그마저도 자극적으로 비춰질 만한 묘사를 최대한 줄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피해자 역시 살해당하기 직전까지만 묘사된다. 영화는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폭력적인 묘사를 감춘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달래다

 대신 영화는 피해자를 찾아내고 사건을 밝히려는 형사의 집념에 집중한다.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계속 매달린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형사에게 어떠한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헛수고라며 주변에서 핀잔만 들을 뿐이다. 하지만 형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피해자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시신조차 찾지 못한 피해자와 유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형사의 의지는 관객이 끝까지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아직도 공권력을 불신하는 한국 사회에서 형사 이형민은 관객이 공권력에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투영하는 인물이다. 그는 강태오의 의도적인 훼방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고, 결국 강태오의 범죄 사실을 증명해냄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중심을 잡고 한 방향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김윤석의 연기는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한편 범인 강태오는 자기 과시적인 인물이다. 애초에 수사가 시작된 이유도 사건에 대해 강태오가 먼저 형사에게 말을 꺼냈기 때문이었다. 강태오는 여유 있는 태도로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형사를 유린한다. 그는 자신의 죄를 증명하기 힘들다는 점을 악용해 형량을 줄이려는 치밀함을 보이면서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어린아이 같은 면모도 있다. 형사보다 나이는 한참 어린 강태오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형사에게 결코 밀리지 않으며, 상대방이 자신이 던지는 퍼즐을 맞춰 보도록 자극한다. 여기서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범인 강태오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 주지훈의 새로운 연기가 돋보인다.

 <암수살인>은 기존의 범죄 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기대했다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현란한 액션이나 탈출 장면, 극적인 재미를 노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강태오를 제외하면 특별히 개성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는 인물도 많지 않다. 인물들의 과거 회상은 사건에 대한 설명 그 이상의 기능은 거의 하지 않는다. 관객을 현혹시킬 극적 기교를 부리는 대신 영화는 범인의 범죄 사실을 증명하려는 형사의 노력을 우직하게 따라가고, 더 나아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가 어려운 한국 사회의 현실을 차분한 시선으로 돌아본다.

 <암수살인>은 피해자를 위해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기존의 국내 범죄 스릴러 장르의 궤도를 벗어난다. 억울한 사람의 죽음과 같이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사건을 환기하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야말로 대중성을 무기로 지닌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노을이 지는 갈대밭에서 여전히 실종자들을 찾아다니는 형사의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흥행으로 ‘암수살인’, 시신조차 찾지 못해 억울함도 호소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사건이 조금이라도 밝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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