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Instagran

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네이버 20Pick

THE ARTIST MAGAZINE

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다음 스토리볼

THE ARTIST MAGAZINE

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네이버 블로그

THE ARTIST MAGAZINE

> 칼럼 > 영화
인연의 최상급이 있다면...<너의 이름은>
김진아 칼럼니스트  |  originaljina@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9.12  19:23:3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디아티스트매거진=김진아]

*스포가 일부 포함되어있습니다*

   
▲ ⓒ네이버 영화

 인연이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운명적 만남들이 가볍게 느껴져 버리고 말았다.

 현재와 과거 혹은 시공간이 다른 이야기를 볼 때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잠시라도 그 순간을 놓치면 전혀 다른 감정으로 이해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현재이지만 그 시점은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과거에서 그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간절했는지 집중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만났는지 그러지 못했는지 궁금해 해도 늦지 않는다. <너의 이름은>이 그렇다. 그렇게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 ⓒ네이버 영화

 

 미츠하와 타키는 서로 연결(무스비)되어있다. 애초에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었기 때문에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순간에도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한다. <시월애>(2000)나 <동감>(2000) 같은 타임루프 영화에서도 시공간을 다르게 설정한다. 서로를 만날 수 없고, 또 만난다고 해도 누군가는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은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감정적으로 그 애틋함을 배가 시킨다. 하지만 애니 <너의 이름은>에서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행하는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이미 봐왔을 법한 타임루프의 식상함을 완전히 신선함으로 바꿔 놓는다. 특히, 흔한 소재들의 적절한 사용을 그 예로 들 수 있는데,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손바닥에 이름을 쓴다거나, 미츠하의 머리끈이 애초에 그들을 이어주는 인연의 끈이었다는 설정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시야를 넓혀준다. 어렵지 않게 서로의 이름을 공유했던 미츠하와 타키는 그런 기억과 흔적들이 서서히 지워지고 사라지면서 이름을 기억하기가 가장 어려워졌고, 타키가 3년 동안이나 손목에 감고 있었던 미츠하의 머리끈은 그들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인지 타키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흔적과 기억이 사라져버리고 남은 것은 이상하리만치 애틋한 마음뿐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미츠하와 타키는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어디를 찾고 있는지 더 많은 질문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무스비.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있던 운명이었던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 ⓒ네이버 영화
   
▲ ⓒ네이버 영화

 <너의 이름은>은 내러티브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니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를 섬세한 표현력 또한 압도적이다. 극에서 미닫이문이 열리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꼭 닫히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의 시작은 미츠하와 타키가 본격적으로 몸이 바뀌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시공간이 열리는 것을 미닫이문이 열리는 것으로 보여준다. 매우 직설적이지만 매우 은유적이다. 미츠하가 타키를 만나러 도쿄로 갔을 때, 타키를 발견하고 지하철에 오르는 그 장면에서도 그 문은 클로즈업되어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공간이 열린 그 시간에 타키는 미츠하를 알아보지 못한다. 또, 기적의 시간이라는 황혼. 그리고 처음 그들이 마주한 그 장소에 황혼이 진다. 문처럼 선명한 황혼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들은 드디어 처음 마주한다. 그 짧은 기적의 시간동안 그들은 서로를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처음으로 닫히고 그들은 서서히 기억을 잃는다. 하지만 무스비.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있던 운명이었던 그들은 결국, 서로를 알아본다.

 

 판타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것이 판타지의 강점이다. 영화는 애초에 정해진 판타지물이라는 장르로 인해서 딱 그만큼의 기대감 까지만 허락한다. 때로는 매우 비현실적인 장면이나 설정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누군가가 손으로 옮겨놓은 허구, 애초에 허구인줄 알고 보는 이 애니메이션은 자꾸만 현실이길 바라게 된다. 미츠하와 타키가 결국 서로의 무스비, 반쪽이 되었듯이 꼭 현실에서도 그러한 운명적 만남과 인연이 있길 바라게 된다. 우리는 그런 허무한 상상을 하면서, 기대하면서, 기다리면서 사는 것은 아닐까?

김진아 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디아티스트
디 아티스트 소개기사제보광고홍보 및 제휴문의 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회사명: 골든허스트  |  The Artist Daegu: 대구광역시 수성구 들안로 59, 4층  |  대표자명: 김혜인
대표전화: 070-7566-8009  |  일반문의메일: theartistmag@naver.com  |  사업자등록번호:107-20-48341  |  신문 등록번호: 대구,아00205
등록일: 2016년 12 월 14일  |  발행인/편집인: 김혜인  |  청소년 보호 책임자: 김경식
Copyright © 2019 디아티스트. All rights reserved.
golden hurst
by ndso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