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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영화
슬픔이란 좋은 시의 재료가 되더라김양희 감독의 <시인의 사랑>
강규일 칼럼니스트  |  louis1s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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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8  16: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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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인의 사랑>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강규일 칼럼니스트] 작가 마광수씨는 <즐거운 사라>를 포함해 다수의 작품을 집필한 소설가이자 국문학을 가르쳤던 대학교수였다. 외설과 예술 사이에 존재하던 그의 작품들은 끊이지 않는 논란에 휩싸여 왔지만 문학계에 굵은 획을 그은 인물인 것만은 자명한 사실이다. 호불호를 떠나 '마광쉬즘’이라는 키워드까지 생겨났으니 말이다. 우울증과 슬픔에 시달렸던 그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사람은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설령 외설일지라도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육체는 사라지고 마치 유산처럼 남겨진 글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파된다.

영화가 바로 그중 하나다. 문학이라는 텍스트가 영화라는 예술로 탄생하는 케이스는 너무도 흔한 일이 되었다. 이달만 해도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토마스 컬리넌의 소설을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매혹당한 사람들>이 박스오피스에 올라와 기대감을 한층 더하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몬스터 콜> 역시 미국의 소설가 패트릭 네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를 연출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이 소설을 기반으로 각본을 썼다.
김양희 감독이 연출한 <시인의 사랑>은 김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을 토대로 영화화되었다. 가을로 접어든 9월에 문학의 감성을 한가득 입은 영화라는 측면에서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유사한 정체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김양희 감독은 이번 작품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고 일본에서 영화 촬영 중이던 양익준을 찾아가 캐스팅을 의뢰하기도 했으며 직접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다. 캐릭터들이 뿜어내는 대사에 시적인 감각을 덧칠했지만 굳이 우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접적이고 직설적이라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영화 <시인의 사랑>은 제42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 아래 작성 글에는 스포일러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슬픔은 좋은 시의 재료가 돼”
이 영화는 제주에 살고 있는 시인 현택기(양익준)와 임신을 간절하게 원하는 아내 강순(전혜진) 사이에 찾아든 질풍노도의 소년 세윤(정가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택기는 시인이다. 감수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사실 딱하다 싶을 정도로 변변치 못하다. 임신을 원하는 아내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자(精子)는 그의 외적인 모습처럼 힘이 없다.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 없는 택기는 오늘도 묵묵히 시 몇 구절을 끄적인다. 하지만 이렇다 할 감성과 감정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추운 겨울 날씨처럼 온통 메말랐다. 
아내와는 알콩달콩한 듯 보이면서도 이면에서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긁어 상처를 내곤 한다.

 

   
▲ 택기(양익준)에게 도넛은 건네는 강순(전혜진)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 도넛 가게가 생긴다.
“한번 먹어봐. 우울할 땐 단 게 최고야”
"아, 안 먹어"
라면을 끓여 후루룩 먹어대는 택기 입에 도넛을 쑤셔 넣는 아내. 번뜩이는 시상(詩想)이라도 떠올랐나 싶을 정도로 택기의 눈빛이 돌변한다. 도넛 가게에 들러 박스채로 사들고 나온 택기는 몇 개씩이나 집어먹어댄다.
택기에게 있어 도넛이라는 오브제는 축 늘어진 삶에 한줄기 빛이라도 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론 아르바이트생 세윤과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 도넛가게를 자주 찾게 되는 택기

택기는 아르바이트생 세윤을 보고는 아내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택기와 아내 강순 그리고 세윤까지 이 세 사람의 감정과 갈등이 뒹구는 109분간 그들의 대사는 감각적이고 날카로운 칼로 무를 잘라내듯 예리함을 갖췄다. 덕분에 시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굳이 빙빙 돌리지 않는다. 직설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귀에 쏙쏙 꽂혔다.  
“시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는 제자의 질문에 택기는 말한다.
“슬픔은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재료가 돼”
"그럼 시인은 슬픈 사람이에요?"
"시인은 슬픈 사람들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야"
사람들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누구나 시련을 맞이한다. 시련 속에서 경험하는 슬픔은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인생의 원동력이 되고 기쁨이 주는 소중한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택기에게 있어 소년 세윤이 가진 상처와 아픔은 간접적인 경험이지만 직접적인 시의 재료가 된다. 그런 측면으로 바라보면 이 영화를 ‘퀴어(Queer)' 즉 동성애라고 단언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택기가 바라보는 세윤에 대한 감정은 목적에 근거한 '사람에 대한 단순한 사랑'이거나 지극히 평범한 연민일지도 모르겠다.

3인의 감정선 위에 나열된 슬픔의 요소들
택기는 아내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등단을 했지만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기에 어려운 현실에 처했다. 아내는 임신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정자 감소증을 앓게 되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나, 자신 없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챙겨야 할 구성원을 늘린다는 것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겠다.
택기는 축구게임 속에서나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자신의 캐릭터와 대조를 이루지만 유사한 구석이 있다. 도넛을 사러 갈 때나 뛰어가는 택기는 평소 걸음에서 조차 힘이 나지 않는다. 힘이 날 일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게임 속 캐릭터는 필드를 휘젓고 다닐 만큼 힘차다. 그렇다고 그 캐릭터가 골을 넣어 택기가 환호했던 적은 없다. 열심히는 뛰어다니지만 골을 획득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면 택기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동창들끼리 모여있을 때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아내의 감정 섞인 토로와 함께 날카로운 비수로 꽂힌다.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울고 싶은 건 택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 강순을 바라보는 택기


소년 세윤에게는 병든 아빠가 있다. 호흡기를 달고 있으며 겨우 숨만 쉬고 있다. 세윤의 엄마(방은희)는 시장에서 물건을 팔며 돈에 집착한다. 10년 넘게 누워만 있는 남편을 보살피고 엇나가기만 하는 아들을 챙기느라 고된 삶을 감내해온 엄마의 모습에서 슬픔 속에 갇힌 짙은 어두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윤과 세윤의 엄마 모두 피폐한 삶 자체가 곧 슬픔이고 지긋지긋한 상처다.
"행복한 건 불안하고 불행한 게 익숙해요"
세윤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감정의 변화는 활화산처럼 심하게 꿈틀대며 요동친다. 불우한 환경과 질풍노도의 격동기가 뒤섞인 10대 청소년의 평범한 외형일 수 있지만 본심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아이러니함을 지녔다. 마냥 순수한 어린 소년 같으면서도 반항기 다분한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세윤의 택기에 대한 감정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이자 살아있어도 그렇지 않았던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버스 안에서 택기와 함께 시 구절을 읊어내는 세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눈망울에서 지독한 현실 속에서 겪고 있는 괴로움이 비친다. 안쓰럽고 안타까웠으며 한편으론 먹먹했다.

   
▲ 택기에게 도넛을 선물로 내미는 세윤(정가람)


강순은 남편만 바라본다. 시인이 되어 등단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택기를 보살펴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윤을 향한 택기의 애절한 눈빛과 그 현실을 인정할 수 없으니 그녀에겐 숨 쉴 수 없는 고통이고 지독한 슬픔이었을 것이다. 
불우한 환경의 중심에 서있는 세윤과 그에게 연민을 느끼며 교감하고자 하는 택기 사이에서 택기의 아내 강순은 늘 공허하다. 한번 화를 내면 무서울 정도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으며 먼저 다가갈 만큼 쿨하다.
임신을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강순에게 있어 비좁은 집안과 남편이 자리했던 텅 빈 공간이 싸늘하기만 하다. 같이 있어도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경우가 없다. 강순은 택기가 있어도 밥상머리 위에선 혼자다. 운전 조차도 강순의 몫이다. 임신을 바란다면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야밤에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나가지마. 그냥 그렇게 지내. 여기서만 있어!"
털썩 주저앉아 울부짖는 강순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애처롭고 애잔했다.

   
▲ 잠들지 못하는 두 사람, 강순과 택기


잘 사는 사람도 없거니와 잘 나가는 사람도 없다. 극 중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이들의 삶은 지난한 시간과 아픔의 과정을 거쳐 찌든 내가 날 정도다. 사람은 누구나 슬픔을 겪지만 이들의 환경과 현실은 슬퍼하라 강요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엔딩신은 희망적인 미래를 이야기한다. 비록 그리움에 사무친 눈물이 흐르더라도 세 사람 모두에겐 따스한 햇살 같이 포근한 날이 지속될 것만 같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 숲길을 걷고 있는 택기와 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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