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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아트&디자인
[월간 작가탐구] 말의 틈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도밍'
문희경 칼럼니스트  |  sinclair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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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0  02: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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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안내*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젊은 작가 분들의 인터뷰기사를 연재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현재 학부생으로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혹은 미술 관련학과에 진학하지 않았지만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20대층 청년 작가들의 작업들을 미약하게나마 알리고, 아카이빙(Archiving)하는 데에 있습니다. 형식적인 질문들 보다는 한 사람에 대한 사전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자세한 이야기들을 다뤄보고 싶기에, 조금은 긴 호흡으로 기사들을 업로드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작업들이 쌓여감으로써, 아직 메이저 시장에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자신만의 빛을 내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 인터뷰어인 저처럼 20대의 한가운데에서 불안하게 부유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예술이라는 가장 적극적인 스피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안받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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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문희경] 말은 마음을 담지 못한다. 대체로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감정들은 입으로 씹어 발음하는 순간 형체를 잃고 흩어져버리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부터 일주일 간 불행한 사람이 된다고 해도, 내일 불행할 나의 ‘우울’과 그 다음날 불행할 나의 ‘우울’은 결코 같은 감정일 수 없다. 그러나 오직 나만이 감지할 수 있는 그 미묘한 차이를, 마땅히 표현해낼 방법을 찾지 못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그저 ‘우울하다’고만 말한다. 내가 느끼는 우울과, 타인에게 전해진 나의 우울 사이에는 그렇게 채워질 수 없는 필연의 간극이 생긴다. 그러니까 인간의 ‘고독’이라는 건, 아마 그 좁혀질 수 없는 언어의 틈 사이에서 자라나는 그림자가 아닐까. 말은 마음을 담지 못하기에, 나는 나 아닌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때로는 나 자신마저도. 그러므로 말솜씨가 유창한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사람이건, 순간순간의 나를 포착하는 데 있어 우리는 모두 실어증 환자인 셈이다.

   
▲ 도미솔(도밍) 작가. ⓒ문희경

 ‘도밍(Doming)’은 그렇게 말의 틈 사이로 사라져버린 마음의 덩어리를 건져 올리는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녀는 남에게 쉬이 설명할 순 없지만 끊임없이 일상을 잠식해오는 어두운 색채의 감정들을 잡아내어, 마치 병원균을 배양하는 페트리 접시처럼 종이위에 증식시킨다. 펜선을 따라 인어, 마녀, 긴 머리의 여인, 때로는 사물의 모습을 하고 눈앞에 나타난 감정들은 평면의 화면위에서 마치 비극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춤춘다. 그림 속 인물들의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간절한 몸짓, 체념한 듯한 표정 같은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기묘한 병 백과’. 이들 그림을 묶어 부를 때 붙여지는 이름인데, 정말로 ‘기묘하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화면들도 종종 보이지만, 그처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점은 오히려 그림의 감상폭을 넓히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바로 그 모호함 덕분에 누군가에게는 한 장의 판타지로 끝날 그림이, 내게 와서는 파도만한 격앙의 순간으로 증폭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반짝이는 유리잔처럼, 오늘 당장은 읽히지 않는 그림일지라도 후의 어떤 아픈 날이면 더없이 명확하게 나의 상태를 대변해주는 장면으로 바뀌어 나를 위로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밍의 그림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시(詩)를 읽을 때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던가. 대체로 불명확한, 난해한 언어의 숲을 헤매다가 기적처럼 나를 사로잡는 한 줄의 시구를 만날 때. 그러니까, 마치 얼굴 모를 그 시인이 나를 대신해서 내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쾌감―. 그 단 한 순간을 위해서 ‘어렵다’고 되뇌면서도 수많은 시집들을 뒤적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비단 시뿐만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문학을 찾게 되는 이유, 예술을 찾게 되는 이유 모두 같은 선상에 있을 것이다. 일상의 언어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일상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너무도 작으니까. 내가 그녀의 그림을 제대로 보고 있었던 것인지 그녀는 자신의 그림 하나하나를 고유한 ‘시각언어’로 정의했다. 마치 상형문자처럼, 그녀는 그녀의 화면들이 일상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대체해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표징’처럼 기능할 수 있기를 바라는 듯 했다. 정말로,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기보다 ‘시를 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그림만큼이나 신비롭고, 하지만 배려심 넘치며 상냥한 ‘도미솔(도밍)’작가를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기묘한 병 백과> 중 - 037. 손틈새로 ⓒ도밍

Q1.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선,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간단한 본인소개 부탁드릴게요.

 

A1.우선, 저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에요. 작업하는 분야가 딱 정해져있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는 출판물이나 포스터, 앨범 재킷, 이런 쪽으로 일을 많이 하고 있고요. 외주 작업 외에 개인 작업으로는 네이버 그라폴리오(Grafolio)에서 <기묘한 병 백과>라는 타이틀로 스토리 픽쳐를 정식 연재하고 있어요. 저는 모든 그림들을 컴퓨터가 아닌 수작업으로만 제작하는데요. 특유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가진 잉크펜화에 수채화를 접목시켜서, 환상동화 같은 느낌의 그림들을 주로 그리고 있어요. 그라폴리오에 연재중인 <기묘한 병 백과>에 대해 조금 설명 드리자면, 사람들의 심리상태나 정서적인 현상들을 소재로 다루는 작업인데요. 누구나 일상 속에서 느끼며 살아가지만 말로 딱 규정해서 표현할 수는 없는 애매모호한 감정들을, ‘인물화’의 형태로 가시화해서 일종의 시각언어로 보여드리는 프로젝트에요. 이렇게 제 개인 연재작업이나 외주로 맡게 되는 일들은 장르로 분류할 때 ‘일러스트레이션’ 영역에 들어가고요. 외주 작업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저에게 감상이나 소장 목적으로 그림을 의뢰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분들을 위해 작업하는 액자형태의 그림들은 좀 더 일반회화 영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답니다.

 

 

Q2. ‘도밍’이라는 활동명이 무척 독특합니다. 몽글몽글하면서도 통통 튀는 어감이 주는 귀여운 이미지가 작가님과 어울려요. 본명인 ‘도미솔’이라는 이름과 어떠한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활동명은 직접 지으신 건가요?

 

A2. 사실 제 본명이랑 활동명을 보면 아시겠지만, 당연히 본명하고 관계가 있겠죠?(웃음) 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전에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블로그를 통해서 인터넷에 그림을 올려왔는데요. 그 때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는 ‘시나’라는 이름으로 활동 했었어요. 제가 ‘시나브로’라는 단어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일단 그 이름은 저 말고도 사용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았고, 저 스스로가 추구하던 느낌과 어감상 어울리지 않아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평소에 제 친구들이 저를 애칭처럼 ‘도미’라고 부르는데요. 이것을 활동명으로 써보면 어떨까 하다가, 너무 특정 생선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라서(웃음) 밑에 ‘ㅇ’자를 붙여서 닉네임화 시킨 것이 ‘도밍(Doming)’이 되었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좀 캐주얼한 이름일 수 있지만, ‘-밍’이라는 발음이 서구권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어감이기 때문에 외국인분들이 보실 때에도 친근한 느낌을 줄 수 있거든요. 사실은 그래서 가끔 남미분들이 영어로 표기된 제 닉네임을 보고 많이들 물어오세요, 남미 사람이냐고. 그 쪽 문화권에 ‘도밍고(Domingo)’라는 이름이 많잖아요. ‘도밍고’를 별명처럼 부를 때 줄여서 그냥 ‘도밍’이라고 부르기도 하는가보더라고요. 물론 저는 그 때마다 아니라고 하죠(웃음). 해외에서도 제 그림을 많이 봐주시지만 어쨌건 저는 국내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좀 특이한, 잘 쓰지 않는 닉네임이다 보니까 간혹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요.

 

 

Q3. 작가님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보다보면, 팬들과의 소통을 굉장히 중요시하시는 게 느껴져요. 특히 블로그에 연도별로 분류 해두신 작업폴더들에서 매해 12월이면 ‘올해 그림 연말정산’이라는 게시물을 올려서 한 해의 작업성과를 팬들과 나누는 모습이 인상 깊더라고요. 평소에 이렇게 독자들과 주고받는 다양한 피드백이 작품 활동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아요.

 

A3. 정말 많은 영향을 받고요. 사실 단순히 영향을 받는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서, 그림을 감상해주시는 분들과의 소통은 제 작업의 존립을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순수회화 작업을 하는 화가라기보다는 스스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정의하며 활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물론 예술가로서 저만의 세계관을 구성하고, 그 세계관에 충실하게 몰입하는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업을 하는 과정 안에서의 이야기이고요. 그렇게 완성된 작품들이 실제 감상자의 마음에 가 닿도록 만드는 건 제가 별개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어쨌거나 제 작업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결국 관객을 필수적으로 요구하잖아요. 물론 그 관객과의 소통을 ‘어떻게’할 것인지와 ‘얼만큼 중요하게’ 둘 것이냐, 하는 부분은 작업하시는 분들마다 다를 수 있지만요. 만약 제가 저의 창작활동에 대해서 스스로 ‘이건 자기만족을 위한 작업이고, 그 무엇보다도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주는 만족감이 가장 중요해’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라면 말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저는 어쨌거나 항상 대중적인 작업, 대중을 향하는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 작품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고 받아들이느냐는 제게 굉장히 중요해요.

 

사실 ‘관객’이라는 개념 자체도 조금 모호할 수 있는 게, 저를 전혀 모르고 있거나 평소 제 그림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지나가다 우연히 제 작품들을 보게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누구나. 하지만 그렇게 ‘우연히’ 제 그림을 보게 된 사람들을 ‘저의’ 관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끊임없이 사람들로부터 제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지 않고서는 작업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어요.

 

또 다른 이유로는 제 작업의 주제가(소재가) 실제 사람들이 느끼며 살아가는 정서적 현상, 느낌들을 표현하는 것이잖아요. ‘나의’ 정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떤 감정과 느낌들을 갖고 살아가는지 끊임없이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그런 소통 없이 저 혼자 꾸려나가는 세계관이 계속 살아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림을 놓고 소통 하는 과정은 제게 있어 계속 이 작업을 해나가기 위한 필수적인 원동력인 거죠.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에 대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이, 그렇게 그려낸 그림을 남들이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도 모르고 진행한다는 건 지속가능한 작업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그래서 단 한두 줄이라도 다른 분들이 제 그림을 보시고 해주시는 이야기들이 엄청난 양분이 돼요. 그림을 그려나가는 데 있어서만이 아니라, 제 마음에 있어서도요. 저는 어쨌건 사람들에게 공감이나 카타르시스를 주는 작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려서 보낸 것들이 과연 보는 분들에게도 제대로 가서 닿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다시 돌려받아야 하니까요.

 

 

Q3.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셨는데, 흑백 펜화 위주였던 초기작들부터 오늘날의 수채화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작업으로만 그림을 그리고 계세요. 선입견일지 모르지만 저는 왠지 ‘일러스트레이션’하면 우선 그래픽 이미지 특유의 차가운 감성이 떠오르거든요. 디지털 작화의 기계적 느낌과 선명한 색감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매력. 물론 연필이나 마커 등을 이용한 크로키 느낌의 삽화들도 많이 보았지만, 최소한 컬러 일러스트레이션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초안 스케치는 손으로 하더라도 채색작업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한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을 비롯해서, 최근 이렇게 스케치 단계부터 채색단계까지 ‘수작업’만으로 작업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이 보이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순수회화의 영역 안에서도 재료나 기법에 따라 유화, 수채화, 기타 등등 수많은 세부 분야로 나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그간 예술에 대해 가져온 통념이잖아요. 하지만 요즈음은 이렇게 세부 장르를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가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이제는 그런 미술사적 흐름이 만든 틀 속에서의 기계적 분류보다, 창작자 스스로 자신의 작품과 작업방식에 대해 내리는 정의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일러스트레이터로 소개하고 계시니까,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A3. 사실 이제는 ‘순수회화’나 ‘일러스트레이션’같은 식의 명확한 장르 구분이 힘들어졌죠. 현대사회에서 점점 더 모든 것들이 다원화되면서 수많은 개념들이 통합되고 융합되고,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바뀌어가고 있잖아요. 예술의 영역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분야에 대해 고민하다가,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첫 번째는 ‘설명하다’ 혹은 ‘이야기하다’라는 의미이구요. 두 번째는 ‘빛을 내다’라는 의미가 있대요. 그런데 그 ‘빛을 낸다’는 게 말 그대로 발광(Shining, 發光)을 한다는 게 아니고, 비유하자면 ‘카메라 옵스큐라’ 같은, 그런 의미의 빛인 거죠. 빛을 통해 맺힌 사물의 이미지를 ‘현상해낸다’. 그래서 만약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굳이 명료하게 정의해야 한다면 저는 그것을 ‘시각언어로서 기능하는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개인작업의 영역이냐 아니면 특정한 상업적 목적을 위해 그려지는 그림이냐 하는 구분과는 관계없이, 무언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이 있어서 그 개념을 한 장의 그림으로 재탄생시켰을 때.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그 그림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했던 개념 혹은 메시지를 비교적 명확하게 전달 받을 수 있을 때, 그것을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상업 영역에서 출판물 등에 그려진 삽화나 표지그림들을 ‘회화’가 아니라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것 같고요. 같은 맥락에서 상업적인 목적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제 개인작업들도 저는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판매를 위한 것이든 아니든 제가 개인적으로 말하고자하는 바가 있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그림이 사용될 때, 즉 그림이 하나의 ‘언어’로서 작용할 때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이건 어떤 사전적인 정의가 아니라 제가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스스로 확장시킨 개념이고요. 그래서 저는, 외주를 맡아 그리는 상업적 영역에서든 개인 작업의 영역에서든 제 그림들이 그런 정의 안에서 기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불러요. 어릴 때부터 지금의 제 전공을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도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저희 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시각 디자인과는 평면의 시각 컨텐츠 전반을 두루두루 다루는 과에요. 일반 회화과나 혹은 다른 전공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예전부터 이 학과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우선 세부전공에 일러스트레이션 과목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것 자체보다도 더 중요했던 것은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시각 컨텐츠들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에요. 그렇잖아요, 그림도 결국 평면 예술의 한 갈래인 거니까.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 예를 들면 타이포그라피라든지 컬러링(Coloring), 화면 구성에 대한 것들을 공부하다보면 단순히 그림만 열심히 그릴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게 되거든요.

 

가령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요소에서 시각적인 쾌감을 얻는가, 이런 형태의 화면 배치는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는가, 하는 식의 평면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폭넓게 가지고 가면서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분명히 그 깊이 면에서 차원이 다를 테니까요. 하나만 알고 하나만 하는 사람과, 열 개를 알고 하나를 하는 사람의 차이는 그 결과물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사실 이건 제게 전공에 대한 조언을 구하시는 분들에게 해드리는 얘기이기도 해요. 그런 이유에서 저는 일찍부터 시각 디자인 전공을 희망했고, 그렇게 학교에 와서 배운 시각예술에 관한 폭넓은 이해의 지평이 제 작업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 <기묘한 병 백과> 중 - 048. 어쩌면, 가장 완벽한 이해의 숲 ⓒ도밍

Q4. 다양한 신화적 요소들과 잔혹동화, 중세풍의 이미지들이 결합된 독특한 세계관이 매력적입니다. 이러한 세계가 완성되어온 과정이 궁금해지는데요. <기묘한 병 백과>시리즈는 개별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스토리와 이미지 구성만으로도 즐거움을 주지만, 최근의 작업물로 흘러올수록 각각의 그림들 사이에 어떤 서사적 연결고리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하나의 시리즈 안에서도 다양한 옴니버스 형태의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지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가장 최근에 작업하신 ‘원근의 서사’편만 해도 그렇고요. 판타지가 점점 더 크고 치밀하게 확장되어가는 느낌인데요. 이렇게 끊임없는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만드는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A4. 이 질문을 받고 무척 놀랐던 게, 제가 실제로도 신화나 옛 전설들에 관심이 많아요. 일단 그것들이 전부 ‘판타지’문학이기 때문인데요. 사실 판타지도 장르가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무협소설부터 시작해서, SF장르도 있고, 정말 고전으로 간다면 판타지 소설의 뿌리로 여겨지는 J.R.R.톨킨의 작품들도 있고요. 그런데 하필 그 중에서도 고대 신화와 전설을 좋아하는 이유는―그것이 ‘인류’라는 개념에 대한 포괄적 사유를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서술한, 일종의 거대한 ‘사상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신화든 전설이든 전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긴 세월에 걸쳐서 완성되어온 거잖아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특히 어떤 문화권의 것이든 ‘신화’들을 읽다 보면 그것이 만들어지는 동안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확장되고 변화되어 왔는지가 보여요. 당장 먹고사는 문제, 즉 동물적인 차원에서의 의식주에 관련된 것부터 ‘인간다움’에 대한 고차원적인 사유에 이르기까지 인류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여러 개념들이 은유를 통해 이야기 되고 있잖아요.

 

결국 신화라는 것이 워낙 방대한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문학이다 보니까 그 안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상징, 즉 메타포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하죠. 신들의 이름이나 특성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현상 그리고 그것들로 구성되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실은 현실세계의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해서 느끼고 겪어온 것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한 것들이니까요.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들에 아주 많이 매력을 느꼈어요. 특히 그리스 로마신화보다도 이집트 신화를 좀 더 좋아하고요.

 

개인적으로 우리 세대는 2000년대 초반에 불었던 학습동화 열풍의 최대 수혜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바로 윗세대만 해도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것들에 그렇게 친숙하지가 않은데, 우리는 그 ‘유명한’ 만화책 때문에(웃음), 저도 거기서 시작이 된 거고요. 그냥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다분히 세속적인 것들이잖아요, 그 안에 등장하는 게. 하다못해 바람피우는 것, 치정에 대한 것들이나 지혜로움에 대한 이야기들. 모두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감정들인 동시에, 오직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개념들이니까. 그런데 그런 관념들을 전혀 현실이 아닌 것으로 재창조해서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신화 특유의 문법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어요. 그래서 자연히 제 그림들도 그런 스토리텔링 방식을 따라가게 된 것 같고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조금씩 그려왔던 것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정립된 게 <기묘한 병 백과>시리즈인 셈이죠.

 

사실 문학이든 그림이든 그 작품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입하고, 무언가를 느끼려면 그 속에 등장하는 소재 자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의 영역에 있는 것이어야 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 놓으면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죠. 왜냐하면 그건 판타지가 아니라 그냥 ‘현실’이니까요.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신화같이 우리 삶 속에 실재하고 있는 것들을 마치 전혀 다른 우주,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새로운 것처럼 한 꺼풀 위장막을 씌워서 표현했을 때,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굉장히 직관적이고 편안하게 그 속의 개념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아닌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나의 경험과 비슷한 상황이 등장해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게 되고 그 감정이나 정서, 교훈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거죠.

   
자라나는 것, 2011 (c)도밍

제 화풍에 대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에요. 말씀하셨듯이 저는 흑백의 펜화에서부터 출발을 했는데, 그냥 우연은 아니고 펜으로 그린 그림이 주는 특유의 고전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사실 제가 그리는 그림들은 정확히는 중세풍은 아니고 근세풍의 이미지들이에요. 중세풍이라면 정말 옛날 수도승들이 그리던 그런 딱딱한 느낌의 이미지인건데, 저는 그보다 훨씬 이후의 일러스트레이션 황금기, 즉 ‘알폰스 무하’가 활동하던 시대의 스타일을 모티브로 해요. 그 시대의 일러스트 그림체를 따온 이유도 신화에서 스토리텔링 구조를 차용한 것과 같은데요. 어쨌거나 현대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근세라는 시대배경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잖아요, 화풍적으로.

 

제가 인터뷰 내내 제 그림을 설명하면서 ‘고전적인’, 혹은 ‘클래식한’같은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은데, 단순히 옛날 걸 좋아하는 취향 때문은 아니고 오래된 것일수록 그것이 현실과 더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결국 제 그림의 시작이 펜화였던 건, 그런 저 나름의 의도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잉크펜화를 찾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고요.

 

그러다가 지금과 같은 채색화로 변화를 주게 된 건, 물론 흑백도 그만의 매력이 있지만 흑백만으로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좀 더 강렬하게 전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만일 제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두지 않을 만큼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였다면 흑백만으로도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겠지만, 저는 그림에 담으려는 주제 자체가 굉장히 추상적이고 폭넓고 두루뭉술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그림 속 상황에 대한 뚜렷한 정의보다도 그것이 풍기는 어떤 ‘인상(Impression)’이 최대한 날것 그대로, 직관적으로 관객에게 가닿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흑백보다는 색이 들어갔을 때 그런 느낌들을 좀 더 생생하고 묵직한 덩어리 형태로 드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색을 입히는 여러 가지 기법들 중에서는 제가 입시 때 가장 많이 다뤄보았던 수채화를 선택한 거고요.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펜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유의 비극적인 풍미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채색한 그림 위에 다시 펜으로 선을 얹게 되었어요.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지금 같은 화면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Q5.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 더 자세하게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더불어 최근 인사동에서 열린 전시에 대해서도요! <기묘한 병 백과>는 다양하지만 특정한 수사로 묘사하기 힘든 사람의 멜랑콜리한 감정들을 ‘의인화’시켜서 포착해내는 작업입니다. 감정이란 무릇 지극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이기에, 처음 작업을 시작하실 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연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 습기, 2011 ⓒ도밍

A5. 그 계기가 된 그림이 두 점이 있어요. 하나는 <습기>라는 작품인데, 2011년도쯤에 작업했던 그림이에요. 어떤 그림이냐면 욕실에 욕조가 있는데, 그 안에 욕조가 꽉 찰 정도로 커다란 물고기가 잠겨 있어요. 그리고 어떤 머리 긴 여자애가 욕실 바닥에 앉아서 그 물고기가 있는 욕조 위에 기대고 있는데, 그 안의 물이 밖으로도 넘쳐서 찰랑찰랑하게 여자애의 무릎까지 차있는, 그런 화면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이 그림은 그 안에 담긴 것들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작품이에요. 별도의 스토리라던가 하는 구상작업 없이 그냥 그린 것이었거든요. 하필이면 ‘물고기’가 욕조에 비좁게 잠겨 있는 이유, 여자가 한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욕실에 엎드려있는 이유 등등 뭔가 해석을 위해 의도된 이야기가 있어서 그린 게 아니라, 그냥 그런 모습의 ‘정서’를 그리고 싶었던 거에요. 물에 젖은 축축한 머리카락이라던가, 흘러넘쳐서 바닥에 어느 정도 차오른 물이 찰랑이는 감촉 등등 그 화면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처지고, 늘어지고, 어둡고, 우울한 정서.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느낌들을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면 무척 어려울 거에요.

 

사실 저는 그런 식의, 사람의 감각 중에서도 ‘촉감’에서 기인하는 순간순간의 정서들을 표현하길 좋아하는데요. <습기>같은 경우에는 특히 화장실의 욕조나 타일, 그 타일이 되게 차갑잖아요. 거기에 살이 닿을 때의 느낌 같은 것들을 종합적으로 화면에 배치해서 완성된 작품이거든요. 그렇게 특정 장소 안에서의 순간적인 느낌들을 뭉뚱그려 묘사해야만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기분이 있는데, 그건 ‘우울’, ‘슬픔’ 같은 사전적인 단어 하나만으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감정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 그림 자체로밖에 말을 못하겠는 거에요. 그 화면 안에서 느껴지는, 그냥 ‘그런’ 기분인 거라고. 그래서 제가 그 그림을 그려놓고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나는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린 걸까. 분명 어떤 정서를 표현, 전달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는데, 그 정서가 도대체 뭘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그런 것들에 관심이 생겼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생생한 느낌의 감정들. 정서들.

 

그리고 실은 그 그림이 해외에서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습기>를 올렸던 해외 웹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들을 들려주셨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나왔던 얘기중 하나가 ‘나도 가끔 텅 빈 욕조에 들어가 울 때가 있는데, 그 때 그 욕조가 살에 닿는 서늘함 같은 기분이 여기서 난다.’였어요. 그런데 그 분들이 느낀 그 기분을, 거기서 어떻게 더 축약해서 표현하겠어요. 그냥 단지 ‘슬픔’이라는 단어 하나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 가령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차가운 욕조에 살이 닿을 때의 느낌’, ‘머리카락이 물에 일렁이는 느낌’ 이런 식으로 표현하게 되는 감정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듣는 사람에게나 말하는 사람에게나 모두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만 규정 하기는 힘든’것들이고 나는 그런 감정들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기묘한 병 백과> 중 - 001. 알 수 없는 병, 2014 ⓒ도밍

두 번째로는―그렇게 방향을 잡고 여러 가지 작업들을 해나가다가, 본격적으로 <기묘한 병 백과> 시리즈를 기획하게 만든 그림이 있어요. <기묘한 백과>의 첫 번째 그림으로 수록된 작품이기도 한데요. 잘 아시겠지만 “알 수 없는 병”이라는 제목의 그림인데, 몸에 여러 가지 무늬가 돋은 여자아이가 자기 목을 조르고 있는. 그런 기이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묘사한 그림이었어요. 그 그림을 시작으로, 제가 작품마다 그림 속의 감정들을 나름대로 설명하는 글을 써서 붙이기 시작했어요. 오늘날 ‘진단서’의 원형이 된 거죠. 그렇게 그림 속 상황에 대한 글을 써나가면서, 아,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들이 비록 명확한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되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어떤 ‘마음의 앓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하나쯤은 만성적으로 갖고 살아가는 ‘병’ 같은. 그래서 제게 처음 이런 질문을 던져주었던 <습기>라는 작품과 동일한 표현방식의 틀 안에서 그런 아릿한 감정들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고민하게 되었고요. 그런 고민의 결과물로 세상에 나온 “알 수 없는 병”을 시작으로 지금의 연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습기>는 말씀드린 것처럼 저에게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그림이기 때문에, 추후에 리메이크 작업으로 <기묘한 병> 시리즈에 등장시킬 예정이랍니다. 이 그림을 처음 내놓았을 때 사람들이 그랬거든요. “욕조에 물이 꽉 차있지도 않은데 왜 바깥으로 물이 넘치고 있냐”고. 그 당시에는 저 스스로도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그런 식으로 물이 넘쳐흐르는 느낌을 그리고 싶었다’ 까지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그림을 요즘의 제 화법으로 좀 더 다듬어서 다시 그려보고 싶어요.

 

   
▲ 지난 달 열렸던 일러스트레이터 그룹전 '다다(DADA)' 에서 도밍작가. ⓒ문희경

Q6. ‘인어’이미지를 즐겨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참여하신 토포하우스에서의 그룹전시(DADA展)는 아예 인어를 소재로 한 작품들만 모아서 선보이셨지요. 또 하나의 작은 세계관이 만들어지는 건가, 하는 기대감에 홀린 듯 구경했답니다. 작가님께 있어 ‘인어’라는 오브제는 어떤 의미를 갖나요?

 

A6. 앞서 제 세계관과 신화 이야기를 할 때 나왔던 이유들과 연결되는 부분인데요. 어쨌든 ‘인어’라는 존재는 굉장히 판타지적인 생물, 환상동물이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반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반쯤은 사람으로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인어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환상 속의 존재이면서도 반은 인간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켄타우로스 같은 동물들도 있고, 옛날부터 신화나 전설 속에는 인간의 상반신과 동물의 하반신이 결합된 환상동물들이 많이 등장해왔죠. 그런데 언젠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왜 하반신이 인간인건 없지?’ 우리가 알고 있는 환상동물들은 거의 전부가 ‘상반신’이 인간이거든요.

 

그 이유가, 사람들이 인간이 아니면서도 조금은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쨌건 ‘인간’을 생각할 때 얼굴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아무래도 얼굴에는 ‘표정’이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대상을 ‘인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 아닐까. 그래서 인어도 그렇고 켄타우로스도 그렇고, 새의 몸을 한 세이렌들도 그렇고요. 인간이 아닌 존재라고 만들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전혀 다른 유형의 또 다른 ‘인간’으로서 만들어낸 존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 역시도 바로 그런 느낌 때문에 옛날부터 신화나 전설 속에서 등장하는 환상동물들을 매력적으로 느꼈던 것 같고요.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현실이 아닌 형태로 보여주고자 하는, 즉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비현실적으로 보여주고자 할 때 적합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기묘한 병 백과> 중 - 050. 둥글게 엉켜 고인 나의 먹물, 2016

그리고 제가 그런 환상동물 중에서도 유독 ‘인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취향 때문이에요. 사실 실제 인간은 물속에 사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있어서 인어는 말하자면 ‘물속에 사는 사람’인데, 이 ‘물’이라는 장소가 제게 상징적으로 주는 정서가 있어요. 축축하게 젖은 정서. 인어는 제게 그런 느낌을 주는 공간에서 사는 동물이니까, 뭔가 축축하게 젖어있고 늘어지는, 사람의 그런 마음 상태를 표현할 때 상징적으로 등장시키기에 더 없이 좋은 소재거든요. 그런데 말 하다보니까, 이런 취향마저도 아까 그 그림(<습기>)으로부터 비롯된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모로 저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시원(始原)이 되는 작품인 것 같아요.

 

   
▲ [기묘한 인어 해협] 중 - 좌초한 타인, 2017

Q7. 그러고 보니 전시에 걸린 인어 시리즈 중 ‘좌초된 타인’은 밴드 뮤지션 <남극혹등고래>의 신보 [사이좋은 타인]의 재킷이미지로 작업하신 그림이기도 하죠. 전시장에서 그림과 함께 노래를 듣다보니 특유의 몽환적 사운드가 작가님의 세계관하고도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콜라보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시게 된 건가요?

A7. ‘남극혹등고래’와는 이 번이 세 번째 작업이에요. 이 앨범 바로 이전에 나온 두 개의 앨범 표지도 제가 다 작업을 했고, 그 두 개 다 물 속에 있는 어떤 소녀의 이미지를 담고 있죠. 사실은 그 세 개의 앨범이 전부 하나로 연결되는 이야기에요. 세 개의 앨범 표지, 즉 세 점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이 전부 동일인물인 거죠, 그러니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마치 연극의 막처럼 세 개로 나누어서 노래한 건데, [번개], [파도] 그리고 마지막 [사이좋은 타인]까지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을 해서 시작한 작업이고요. 저와 남극혹등고래가 기획단계에서부터 함께 구상을 했어요.

 

이 분들 음악의 사운드 자체도 그렇고 전체적인 느낌이 저의 색깔과 잘 맞았기 때문에 이렇게 긴 호흡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실은 제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첫 재킷 일러스트를 그리기 전에, 멤버분들한테 과연 이 앨범들 안에 어떤 것을 담고 싶으신 건지 여쭤봤어요. 표지작업을 하려면 저도 그 분들이 음악으로 이야기하고자하는 바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저는 보통 다른 분들처럼, 가령 ‘이별 후에 ~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요’하는 식으로 어떤 스토리가 담긴 ‘상황’을 묘사해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분들이 딱 대답하시기를 “바다 속에서 듣는 고래의 울음소리를 표현하고 싶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 ‘고래의 울음소리’라고 하는 게, 정말 그런 고래 울음소리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울리는 소리를 들을 때 느끼는 감정상태, 혹은 정서를 노래로 표현하고 싶다는 얘기인 거죠. 그래서 그 대답을 듣자마자, 아, 그럼 나도 고래가 바다 속에서 우는 소리를 듣는 것 같은 기분으로 작업을 하면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실제로 그런 느낌 속에 흠뻑 빠져서 그림을 그렸어요. 이렇게 세계관이나 그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나 자신과 딱 들어맞는 다른 예술가를 만나게 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무척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콜라보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제 올 해 연말쯤이면 앞선 세 개의 앨범 수록곡들과 몇 곡의 새로운 노래들을 담은 정규 앨범이 나오거든요. 그 정규앨범의 표지와 내부 디자인도 전부 다 제가 맡을 예정이랍니다.

 

Q7―1. 그럼 처음에 이 3부작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그분들하고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오랜 시간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서로 비슷한 색깔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한데요.

 

A7-1. 우선 밴드의 리더분이 평소에 제 그림을 꾸준히 보고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연작앨범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되면서부터 제게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어떤 이어지는 선상의 이야기들을 담는 3부작의 디지털 싱글을 기획하고 있는데, 그 싱글 앨범들의 재킷 외주를 맡기고 싶습니다.’라고 하셔서 콜라보를 하게 됐고요. 그 과정에 있어서나 결과 면에 있어서나 저 자신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하고 뜻 깊은 작업이 됐죠.

 

얘기가 나온 김에 줄거리를 간단하게 설명 드리면, 굉장히 바다에 속하고자 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바다’란 생물들이 살고 있는 지질학적 의미의 바다가 아니고, 어떤 의식적인 영역인거죠. 피안의 세계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육지의 세계가 있었는데, 스스로가 여기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어떤 여자아이가, ‘아, 나는 바다의 존재야’, ‘나는 바다에 속하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바다에 뛰어든 거에요 무작정. 그게 첫 번째 재킷이었어요. 파도 속에 뛰어드는 소녀.

 

하지만 원래의 인간은 사실 바다에 속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두 번째 재킷처럼 잠시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해도, 결국엔 부력 때문에 자꾸 자꾸 떠올라 버려요. 바다 속에 영원히 있어보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속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부력을 이기지 못하고 떠오르는 신체적인 한계와, 바다에 속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 사이에서 점점 소녀의 몸이 인간도 아니고 바다의 것도 아닌 기이한 상태로 변해 가는데요. 결국은 부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도 밖으로 밀려나오게 되요. 뭍으로. 소녀가 원래 살아가던 세계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에 바다 속에 뛰어들었던 건데, 결국 자신이 속하고 싶었던 세계에서도 도태되어버린 거죠. 이게 마지막 세 번째 앨범 <사이좋은 타인>의 재킷 이미지에요. 바다와 육지의 경계, 그 위에 인간도 바다의 것도 아닌 모습으로 누워서 육지와 바다 양쪽 모두로부터 타인이 되고 만 그런 존재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이 그림을 DADA전 전시장에 걸 때, 이 3부작의 전체 줄거리를 총괄하는 이야기를 진단서처럼 써서 같이 진열했던 거고요.

 

 

Q7-2. : 저는 그 세 앨범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세 개의 앨범 속에 실린 곡들을 순서 상관없이 마구잡이식으로 골라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 설명을 듣고 나니까 3부작 순서에 맞춰서 차례대로 들어보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각각의 재킷 그림들에 대한 이해도 되고.

 

A7-2. 사실 이 그림들은 외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앨범이 먼저이고 전적으로 그 음악들을 ‘위해’ 그려진 그림이다 보니까, 음악을 들으면서 보시는 것이 가장 어울릴 것 같고요.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각각의 앨범에 실린 곡들이 그 재킷 이미지에 담긴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3부작 앨범들에 실린 그림과 곡들은 물론 정서적으로는 같은 흐름을 띠지만, 그 각각의 노래들이 제 그림을 해석하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음악이 먼저 있었고, 그 후에 제가 그 곡들을 들으면서 작업한 그림들이니까요. 재킷에는 재킷만의 스토리가 있고, 앨범은 앨범 나름대로의 다른 이야기들을 노래하고 있는데, 다만 이 두 가지가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확장되어가는 ‘정서의 단계’가 같기 때문이랍니다. ‘3부작’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재킷 그림들이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우화적인 스토리를 지닌다면, 앨범에 실린 노래들은 조금 더 포괄적이고 직접적인 이야기를 해요. 듣는 사람들마다 나의 이야기로 대입해볼 수 있는. 초반에는 굉장히 개인의 관점에서, 즉 ‘나’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라는 사람에 대한 독백 이런 것들을 노래하다가 마지막 세 번째 앨범인 [사이좋은 타인]에 이르러서는 그 범위가 사회, 공동체에 관한 것으로 확장돼요. 사유의 단계가 ‘나’라는 점으로부터 점차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 곡 제목이 앨범 제목이랑 같은 ‘사이좋은 타인’이거든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맺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나 저렇게 다 좌초되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서로의 경계 언저리만 배회할 뿐 결코 진정한 의미로 함께하지는 못하는 ‘영원한 타인’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물음으로 갈무리가 돼요. 그래서 노래는 노래대로, 재킷은 재킷대로 나름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지만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이 두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정답은 없는 거니까, 그렇게 열려있는 마음으로 앨범을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좌초한 타인'에 첨부된 진단서. 라틴어로 된 가상의 학명이 눈에 띈다.

Q8. 이번 그룹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가상의 해협 속에 살고 있는 특수한 인어 개체들을 소개하는 컨셉인 만큼, 각각의 인어마다 붙여진 학명이 재밌었는데요. 모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또 읽을 수 없는 단어들 맞죠?(웃음) 쓸데없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그 학명들,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A8. 사실 글자들 위에 찍힌 부호들 때문에 그렇게 느끼실 수 있는데, 발음이 불가능하거나 없는 언어는 아니고 ‘대체로’ 라틴어에요. 보통 우리가 검색을 할 때, 예를 들어서 ‘문어’라는 동물에 대해서 검색을 하면 그 생물에 대한 설명과 함께 문어를 가리키는 ‘학명’이 나오잖아요. 그 학명들이 거의 다 라틴어더라고요. 대부분이 라틴어이고, 간혹 나오는 게 오래된 프랑스어.

 

제 생각에 학명의 대다수가 라틴어인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단어의 많은 경우도 그 어원이 라틴어에서 시작을 하잖아요. 이제 실생활에서 쓰이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서양 언어의 원류로 여겨지는 언어였고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널리 쓰였던 언어이기 때문에, 일상언어로서는 사어(死語)가 되었지만 어떤 학술적인 영역에서는 이 라틴어를 쓰던 시기부터 붙여진 학명들을 그대로 쓰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말하자면 학술적인 영역에서만 살아있는 ‘학명어’가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이렇게 라틴어로 된 학명의 사례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저도 제가 만들어낸 가상의 개체들에 라틴어 학명을 붙여보게 됐어요. 다만 사전에 있던 것을 그대로 갖다 쓴 것은 아니고, 원래 있던 학명에 제가 그 생물체에 대해 붙인 특성을 뜻으로 가지고 있는 라틴어를 붙여서, ‘합성어’를 만들어낸 건데요.

   
▲ 꽃점을 치는 인어, 2017 ⓒ도밍

예를 들어서 ‘꽃점을 치는 인어’라고 해볼게요. 우선 ‘인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인어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들이 여러 개가 있어요. Merrow라던지,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고르고요. ‘꽃점을 치는’이라는 수식어는 단일단어로 번역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이런 경우는 라틴어 중에서도 정말 오래된 사어들을 보면 ‘점을 치는’, ‘사랑에 집착하는’, 이런 식으로 명료한 뜻 하나로 치환되기보다 굉장히 문학적인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들이 있어요. 그런 단어들 중에 제가 표현하려고 하는 인어의 특성과 가장 잘 맞는 단어를 골라서 아까 검색했던 ‘인어’라는 단어와 합성하는 거죠. ‘Fatiloquus Merrow(점을 치는 인어)’. 이런 식으로요. 경우에 따라서는 프랑스어, 그 중에서도 고어 프랑스어나 사어 프랑스어를 라틴어와 섞어서 만들기도 했고요.

 

 

Q.9. ‘그라폴리오’(Grafolio)에서 <기묘한 병 백과>의 연재를 시작하신 것이 2014년 무렵이고, 블로그에서는 훨씬 이전 시기부터 그림들을 올려오셨어요. 어느덧 이오 박사에 의해 수집된 각종 병의 사례가 100여개에 이르렀는데요. 백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를 ‘환자’라고 지칭해볼게요. 그간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오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연, 혹은 환자가 있을 것 같은데요. 모든 그림들이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께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세 점 정도만 꼽아주세요.

   
▲ <기묘한 병 백과> 중 - 015. 마음을 부수는 마법, 2016

A9. <기묘한 병 백과>는 제가 시작은 2014년에 했는데, 그라폴리오에서 정식으로 고료를 받으면서 연재를 하게 된 건 작년 부터에요. 그렇게 정식 데뷔를 하게 되면서 그간 그려온 그림들을 주욱, 모아서 정리해놓고 봤는데.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애틋했던 것들도 있고, 그림 화면이 제 마음에 탁, 받았던 것들도 있더라고요. 사실 제 마음에 남은 그림들은 실제로 사람들한테 반응이 좋았던 작품들과 별개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몇 점을 꼽아보자면.. 우선 제가 글을, ‘진단서’를 쓰던 과정이 기억에 많이 남는 그림은 15번인데요. <마음을 부수는 마법>이라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그림 화면 자체보다는 거기 붙일 글을 쓰면서 제가 감정이입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마음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기묘한 병 백과> 중 - 055. 눈물 눅은 이끼 병, 2017 (c) 도밍
   

<기묘한 병 백과> 중 - 056. 매달릴 꿈이 필요해 문 미끼, 2017 (c)도밍

그 다음으로는, 제가 의도했던 것들이 화면 위에 잘 표현되어서 좋아하는 그림들이 있는데. 56번 그림(<매달릴 꿈이 필요해 문 미끼>)이랑, 55번 그림(<눈물 눅은 이끼 병>)이에요. 특히 56번 같은 경우는 그림 자체도 제가 의도한 비극이 잘 나온 데다, 같이 써서 붙인 글도 표현하고자 했던 정서들이 잘 전달되게 적혔다고 생각을 해서. 제 작업들 중에 손꼽히게 좋아하는 그림이에요.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실제로 제가 자주 느끼는 류의 감정이어서 그렇기도 하고요. 같은 맥락에서 55번 그림도 그래요.

   

<기묘한 병 백과> - '프시케의 장', 2017 (c)도밍
   

<기묘한 병 백과> - '프시케의 장', 2017 (c)도밍

마지막으로는 제가 <프시케의 장>이라고 이름 붙여놓은 시리즈 작업이 있는데요. 그 작업을 위해 제가 무척 오랜 시간동안 구상하기도 했고, 그 시리즈가 앞으로의 <기묘한 병 백과> 세계관에 있어서 약간의 힌트를 주는, 영화로 치면 스핀-오프(Spin-Off) 격의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중요해요. <프시케의 장>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 주인공 여자애가 극장 밖으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렇게 극장 밖으로 나와서, 걔가 나중에 ‘*이오’가 돼요. (*‘이오’는 <기묘한 병 백과>의 세계관 안에서 화면 밖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병들을 소개하는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필자 주)

 

 

Q9-1. 그럼 <프시케의 장> 마지막 화에서부터 ‘이오’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군요?

   
▲ <기묘한 병 백과> - 진단서를 집필하는 이오, 2014 ⓒ도밍

A9-1. 네, 맞아요. 앞으로 이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계획이에요. 사실 ‘이오’라는 인물은 제가 오래전 작업을 시작하던 단계에서부터 이미 만들어 두었던 건데, 어떤 별도의 백그라운드 스토리가 있는 존재는 아니었어요. 어떻게 탄생했는지 등등 인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연보다는, 얘가 세계관 안에서 무언가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각각의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정도의 설정만 있었던 거거든요. 그랬던 인물을 제가 조금 더 살을 붙여서 시리즈 시퀀스 작업을 만든 게 <프시케의 장>이에요.

 

사실 프시케(Psyche)가 ‘영혼’이라는 뜻이 있잖아요. '이오'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름이고. 그래서 ‘프시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한 인물이,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은 후에 앞서 설명한 그런 존재, 즉 기묘한 병을 연구하는 서술자가 되는 것으로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만들고 있고요. 아마도 <프시케의 장> 초반에 나왔던 프시케의 모습이 앞으로 제가 내보낼 이오의 모습이 될 거에요.

 

 

Q10. 오늘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껏 ‘일러스트레이터 도밍’의 그림 이야기를 쭉 해왔으니, 이번엔 ‘인간 도미솔’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예술이란 가장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형태의 스피커(Speaker), 즉 발화장치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과 형식이 무엇이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와 타자 사이에 오가는 공감과 소통이니까요. 아티스트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 또 20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도미솔’씨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정리하자면, 작가님은 왜 그림을 그리시나요?

 

A10. 정말 원초적으로 뭉뚱그려 대답하자면,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그림이 좋은 건데요. 그걸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면,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거든요. 한 서너 살 때부터 크레용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사실 예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그 방식이 공예가 되었건, 음악이 되었건, 글이 되었건, 어쨌거나 ‘내가 만들어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 그런 창작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가 저한테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것을 실현시킬 수단으로 그림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리는 일’이 제게 잘 맞는 방식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겠죠?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그런 이유가 하나 있고요.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한편으로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저를 구성하게 되기도 하잖아요. 거꾸로. 내가 새로 무언가를 창조해내기도 하지만, 그렇게 창조된 것들이 역으로 다시 나를 구성하기도 하는. 그런 과정에서 제가 행복을 얻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배설’에 대한 얘기에요. 사실 제 그림을 보신 많은 분들이 제게 물어보세요. ‘그림이 무척 우울하고, 축축하고 전반적으로 마이너한데, 실제로도 그렇게 우울함이 많은 분이세요?’하고요. 그림들이 어둡다 보니까 제 성격도 무척 우울하고 말도 별로 없고, 침착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으시거든요. 그런데 막상 저를 만나 얘기해보시고는 외향적이고 말도 많고 이러니까 놀라시는 거에요. 사실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배설’하고 싶은 욕구,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서 좀 씹어 뱉어놓고 싶은, 그런 것들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그게 좀 강한 편인 것 같고, 그림이 그 수단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저의 원래 성격이 조금은 우울한 편이고, 정서 또한 마이너한 편인 것은 맞아요. 누구한테나 있는 그런 정서가 남들에 비해 조금 강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의 타고난 부분이 그렇다고 해서 제 삶까지도 그렇게 우울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제 내면의 그런 부분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씹어서 뱉어놓는 거죠. 그렇게 그림을 통해 내어놓고 나면, 실제 삶에서의 저는 그런 어둡고 불안한 감정들을 말이나 인간관계 속에 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인간 도미솔은 굉장히 밝은 사람이거든요. 밝고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편인데 그렇게 삶을 살아가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그 반대방향의 것들은 다른 면으로 뱉어놓는 거죠. 마음의 출구처럼. 저한테 그림이라는 건 그런 의미들을 가져요.

 

 

Q11. 이야기를 듣다 보니 덕심(?)으로 지켜봐왔던 작가님의 그림들이 좀 더 새롭게 보이는 듯합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네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매혹적인 그림으로 밍덕(도밍 덕후)의 가슴에 불을 질러 주시기 바랍니다, 흐흐. 마무리로, 저와 같이 이미 작가님의 그림을 사랑하고 있거나 혹은 앞으로 사랑하게 될 독자들에게 향후 작업하실 그림들에 대해 살짝, 맛보기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와 별개로 하시고 싶은 끝맺음 말씀이 있다면 그것도 환영입니다!

 

A11. 사실 요즘 굉장히 얼떨떨한 상태에 있어요. 왜냐하면, 이번 그룹전시가 제가 2년 만에 참여한 전시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실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분들이 그림을 보러 와주신 거에요. 제가 방명록을 전시장 위에다 올려놨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심지어 어떤 분들은 그 하루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왔다고도 하시고. 그런 인사말들이 적혀있는 방명록을 보면서 제가 되게 얼떨떨했거든요. 저는 그렇게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는 줄 몰랐어요. 왜냐하면 그분들이 전부다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제 그림들에 댓글 같은 걸로 일일이 피드백을 주셨던 게 아니기 때문에. 몰랐던 거죠 그렇게 많은 분들이 제 그림을 보고 계셨다는 걸. 그래서 요즘에 굉장히 생각이 많아진 상태에요. 내가 뭘 했지,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보러 와주셨지, 그런 생각을 좀 했었는데….

 

사실 인터뷰 초반에도 말했지만 제가 하는 작업은 말 그대로 ‘관객’이 없으면 존재하기가 힘든 프로젝트에요. 왜냐하면 제가 이 작업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제가 뱉어낸 그림이 감상자의 마음에 가 닿아서, 그 사람의 마음상태를 알아채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제 그림을 봐주시는 분들이 없으면 성립 자체가 안돼요. 그래서 사실 굳이 어떤 이야기들을 따로 해주지 않으신다고 해도, 그냥 제 그림을 계속 들여다봐주고 계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고, 저로서는 계속 해나갈 수 있다는 힘을 받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작업에 있어서는, 앞으로는 조금 더 제가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보려고 하고 있어요. 이오의 이야기처럼, 세계관의 밑바탕에 깔려있던 얘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진행될 거고,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예전처럼 한 장 한 장의 개별적인 병들에 대한 소개보다는, 앞서 등장했던 이야기에 대한 응용이라던가, 혹은 그 이야기들 사이에 감춰져 있었던 연결고리 같은 것들이 나오기 시작 할 거에요. 화면에 있어서는, 좀 더 모호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상자가 그림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형태보다는, 이제는 조금 더 불명확하고, 말로 정리해 표현하기 힘든. 하지만 그래서 좀 더 직관적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가보고 싶어요. 덩어리처럼.

 

그래서 그림 속에 나타나는 이미지에 있어서도 점점 더 ‘사람’의 모습을 벗어난 형태로 그리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제 입장에서 약간 편한 방향으로 끌고 왔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감정을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온 만큼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림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비교적 직접적인 방향으로 이뤄져 왔는데. 앞으로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어려운 과제를 주고 싶어요. 더 폭 넓은 주제와 대상을 다뤄볼 수 있도록. *

 

 

한 시 즈음 만나 시작한 대화는 어느덧 세 시간을 훌쩍 넘겨 이어졌고, 함께 카페 문을 나선 때는 이미 한낮의 더위가 행인들의 살갗위로 끈적끈적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등골을 따라 흐르는 땀의 온도를 느끼며 우리는 신호등을 함께 건넜다. 인사동에서 성황을 이룬 전시가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벌써 새로운 외주 작업을 위한 시동을 걸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잠시 숨을 고르고 주문받은 영화 포스터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앞으로 자신이 해나갈 것들(혹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계획을 넌지시 들려주었다. 졸업을 코앞에 둔 4학년, 학부생으로서의 마지막 여름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미술인으로서의 고민만큼이나 사회인으로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문득, 그녀의 백과사전 속 ‘이오’박사의 얼굴이 묘하게 그녀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아픔만을 소개하던 이오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처럼, 이제는 ‘인간’의 형체로부터 또 한 번 껍질을 벗게 될 그림들 속에서 진화한 모습으로 나타날 청년 도미솔이 궁금해졌다. 아마도 우리,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그녀의 연금술에 놀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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