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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탄자니아, 안녕 다르에스살람] (1) 처음 만난 다르에스살람동아프리카의 대도시, 다르에스살람을 처음 만나다.
김아름 칼럼니스트  |  kir92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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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5  13: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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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자니아의 경제수도, 다르에스살람의 바다풍경

[디아티스트매거진=김아름] 칼을 든 강도와 오토바이 소매치기가 도사리는 곳, 악명 높은 치안으로 요하네스버그, 나이로비와 더불어 항상 함께 언급되는 도시로서 늘 주위를 잘 살펴야 하는 건 기본, 밤 늦게 혼자 다닌다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고 밝은 낮에도 항상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 다르에스살람에 오기 전, 인터넷에서 보고 주위에서 들었던 무성한 소문들이다. 정보를 찾아볼수록 아프리카와 탄자니아에 대한 기대는 점점 걱정으로 바뀌어 머릿속을 까맣게 채워나갔다. 출국 일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 많은 정보를 찾기 위해 수시로 초록창에 탄자니아를 검색했고 더더욱 많은 공포의 에피소드들을(?) 알게 되었다. 과연 내가 탄자니아를 선택한 것이 잘한 결정일까, 지금이라도 국가를 바꿀까, 탄자니아에 가면 회사와 집만 무한 반복하며 강제 집순이로 지내야겠다 라는 등의 여러 생각들을 가지고 아프리카 뿔 아래 남반구에 위치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으로 떠나게 되었다.

아랍어에서 유래한 다르에스살람의 뜻은 평화의 항구이다. 드넓은 인도양을 마주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큰 항구를 가지고 있으며 오랫 동안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다고 한다. 현재 탄자니아의 경제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며 공식적인 행정수도인 도도마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다르에스살람’이다.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르에스살람을 탄자니아의 수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상당하다. 나 역시도 그 중 하나였다. 모두의 선생님, 구글에서 다르에스살람을 검색하면 도시의 사진과 함께 꽤 많은 바다 사진들이 연관 이미지 탭을 차지하고 있다. 힘찬 파란 빛을 내뿜는 다르에스살람의 바다사진들은 내가 들었던 소문들에 대한 걱정을 잠시나마 상쇄시켜줬고, 그 바다 위를 달리는 페리의 모습은 평화라는 단어가 의외로 다르에스살람에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 신변에 주의하면서 튀지 않고 살면 한국의 바쁘고 지쳐있던 삶을 벗어나 조금은 평화로운 곳에서 인도양을 바라보며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기대를 했었다, 물론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하기 전까지 효력이 발휘되는 말이다. 밤 12시쯤 인천 공항에서 출발해서 두바이를 경유해, 다시 다르에스살람으로. 약 20시간을 날아 오후 3시 즈음에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첫 발을 디뎠다. 처음 만나는 블랙 아프리카. 그 동안 검색하며 알아왔던 모든 정보들을 잊어버릴 만큼 긴장되고 설레는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 올랐다.

   
▲ 탄자니아 줄리어스니에레레 국제공항 전경

다르에스살람의 첫인상은 생각이상으로 격렬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들어온 공항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다소 후덥지근한 느낌을 주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수 많은 인파 덕분에 나는 떠밀리듯이 입국심사대가 있는 방향으로 쓸려갔다. 흡사 출근 시간의 신도림 역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좁은 틈 사이로 손을 올려 부채질을 하며 계단을 내려오니 더  많은 사람들과 시끄러운 소음들이 공항을 가득 채웠고 나는 혼돈에 빠졌다. 도착비자를 작성하는 사람들과 심사 받는 사람들, 그리고 거절당하는 사람들과 통과하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한 공항은 경찰 몇 명의 힘겨운 통제로 약간의 질서를 유지할 뿐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뚫고 경찰 앞으로 다가가 미리 받아온 비자를 보여준 뒤 통과신호를 받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도착비자를 받기 위해 뒤엉킨 사람들 사이를 겨우 비집고 나와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입국 심사대의 줄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분 없이 뒤엉켜 있었고 경찰들도 이 모습을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새치기를 하는 모습에 짜증이 났지만 장시간의 비행으로 지친 탓에 소리를 낼 힘이 없었다. 여기저기 눈치게임 하듯이 대기 줄을 타며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입국 심사대 앞에 설 수 있었다. 여권과 비자, 황열병 접종카드를 보여주고 그들의 지시에 따라 지문을 등록하였다. 다소 복잡한 확인 절차를 거치고 몇 개의 질문에 답을 한 뒤, 도착 40분 만에 탄자니아 입국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 없는 입국이 끝나고 수화물을 기다렸다. 하지만 수화물을 찾기 위해 갔던 컨베이어 벨트는 무거운 짐들로 인해 수시로 멈추었고 때로는 수화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수화물을 떨어트리기도 하였다. 종종 불이 깜빡이거나 불이 꺼졌지만 이내 다시 들어왔다. 각자의 짐을 찾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 주위로는 또 하나의 거대한 인간벨트가 형성 되어 있었고 나도 그 벨트의 부속품이 되었다. 10분, 20분, 30분... 좀처럼 짐은 나오지 않았다. 혹시 짐이 두바이에서 오지 않은 게 아닐까, 내 짐을 분실한 건 아닐까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인 가족과 프랑스인 할머니가 나와 함께 계속 같은 곳을 응시하면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였다. 40분쯤 지났을까, 나의 캐리어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그 모습을 보였고 나는 중국인 가족의 여전한 기다림과 프랑스인 할머니의 부러운 눈길을 뒤로 하고 입국장을 유유히 빠져 나왔다.

   
▲ 다르에스살람의 모습

‘택시, 택시!’

 게이트를 열고 나오자 적극적으로 호객 행위를 하는 택시기사들과 가지각색의 피켓을 든 사람들은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뽐냈다. 누가누가 호객행위를 잘하는지 대회라도 하는 듯, 쉬운 먹잇감으로 보이는 동양여자에게 서로 다가오려 애썼다. 나는 그들 사이로 마중 나온 선배 인턴을 발견했고 다소 얼떨떨하고 어색한 모습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교통체증이 시작되는 시간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출발해야 한다는 선배인턴의 말에 나는 준비된 회사차에 두 개의 큰 캐리어를 실었다. 팔을 높이 뻗어 차 트렁크를 닫고 선배 인턴과 나는 승합차 뒷자리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과 차들이 정신 없이 엉켜 공항을 나오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들과 과격한 운전을 보여주는 차들 덕분에 오자마자 공항에서 사고가 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여러 번 식겁 했었다. 그래도 무사히 공항을 빠져 나와 큰 도로에 진입했고 숙소로 향했다. 장시간의 비행에 지쳐서 피곤했던 탓인지, 새로운 환경이 적응되지 않았던 탓인지 차창 밖의 모습은 정신이 없었다. 버스에 매달려서 가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끼어드는 오토바이들, 그 사이를 비집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물건을 파는 상인들까지. 공항에서 처음 만났던 혼돈보다 더 큰 그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보도 블록 이라고는 없는 거리에 수 많은 사람들은 잡초가 무성하거나 흙먼지가 날리는 길 위를 걸어 다니거나 뛰어다녔고 몇몇은 그 길 위에 나무 그늘을 이불 삼아 누워있기도 했다.

   
▲ 다르에스살람의 모습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건 한국의 출퇴근 시간에 맞먹는 교통체증 덕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은 외관을 가진 중고 버스들은 시꺼먼 매연을 품으며 서있었고 내가 탄 차의 시야를 방해했다. 설상 가상으로 오토바이들은 차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놀라운 곡예를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구글 이미지에서 봤던 파란 바다와 꽤 높은 빌딩들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프리카에도 교통체증이 존재하는 구나 라는 신기함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내가 이 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토바이에 치이지 않게 8개월 동안 집에만 있어야겠다는 다소 단순한 생각을 했었다. 뭔가 더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차 안에서 선배 인턴과 사무소의 일, 구성 그리고 탄자니아 생활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교통체증은 서서히 풀렸지만 버스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매연을 뿜어내며 달리고 있었다. 도로를 달릴수록 차는 도심에 가까워졌고 풍경은 점점 바뀌어갔다. 식물이 자라듯 점점 건물이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점점 사진에서 봤던 그나마 익숙한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가 그 이름난 다르에스살람이구나, 내가 이 곳에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긴장이 다소 풀리지는 않았다. 이야기 하는 것도 지쳐 나는 하염없이 창 밖 너머로 사람들과 차 구경을 했다. 낯선 풍경에 대한 긴장감이 차에 기대 앉은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약 20분을 달리고 달려 나는 숙소 앞에 도착하였다. 대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오늘은 닫은 건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경적을 울리자 무거운 철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선배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짐을 내려서 카운터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이곳. 숙소에서도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는 글이 생각나 다시 긴장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이 재미가 있었는 지 현지 직원들은 몇 번이고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생각보다 긴장은 쉽게 풀렸다.

“Hello”

빨간 유니폼을 예쁘게 입은 탄자니아 언니가 웃으며 나에게 처음으로 건넸던 저 인사가 나를 단숨에 무장해제 시켰다.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고 방을 안내 받아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자 마자 짐을 놓고 커튼을 열고 창문 밖을 바라 보았다. 낮은 지붕들 사이로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약간 열린 창문 사이로는 저녁 햇빛과 바람이 들어왔다. 솔솔 부는 이국적인 바람 냄새가 좋았다. 나의 첫 다르에스살람이었다.

   
▲ 마사이족이 그려진 머그컵

 

* 본 원고는 필자가 2016년 7월부터 2017년 3월까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8개월 간 거주하며 쓴 생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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