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Instagran

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네이버 20Pick

THE ARTIST MAGAZINE

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다음 스토리볼

THE ARTIST MAGAZINE

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네이버 블로그

THE ARTIST MAGAZINE

> 칼럼 > 영화
<홀리모터스>, 풍부하고 신비로운 영화
김정민 칼럼니스트  |  ashgray15@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4.28  15:37:2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디아티스트매거진=김정민칼럼니스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홀리모터스> 포스터

 시 같은 영화랄까, 한 폭의 회화 같은 영화랄까. 대체 이 영화를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단숨에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해한 감동과 전율을 안기는 영화. 한없이 절망적이면서도 한없이 아름다운 영화. 그 형체를 감히 가늠하기 어려운 이 환상적인 걸작은 영화적 마법의 한 극단이며, 영화와 현실을 연결하는 가장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통로이다.

 

 

경계선을 지우는 영화

<홀리모터스>의 매력은 경계선을 지우는 데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지우는 경계선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 연기하는 캐릭터와 실제의 캐릭터 사이, 영화 안과 바깥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이며 심지어는 이 영화의 텍스트가 품고 있는 각 주제의 경계선까지 지워버리고 있다. 이 경계선 지우기는 각각의 것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연결고리를 만들어 텍스트를 보다 풍부하고 다층적으로 읽어내는 데 도움을 주며, 끊임없는 생각의 통로를 마련한다.

 

   
▲ <홀리모터스> 스틸컷

영화에 대한 영화

<홀리모터스>를 읽어내는 가장 유용한 해석 틀은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해석 틀일 것이다. 아예 첫 장면부터 활동사진을 집어넣고, 극장 속에 죽어 있는 군중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포문을 여니 말이다. 영화 중반에는 리무진 안에서 두 남자가 바뀌어가는 영화 환경에 대한 탄식을 담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영화 내내 파리 시내를 누비는 리무진은 이 영화의 제목인 ‘홀리모터스’를 나타내는 것인데, 사실상 레오스 까락스 감독이 사랑하는 영화를 은유하는 것이고, 최초의 영화인 <기차의 도착>에서 기차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홀리모터스>라는 제목은 ‘신성한 영화’를 은유하는 제목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홀리모터스>에는 이 ‘신성한 영화’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절망감과 무력감이 깊게 배어 있다. 레오스 까락스 감독은 ‘신성한 영화’의 죽음은 디지털 영화에 의해서 강하게 촉발되었다고 보고 있다. <홀리모터스>에서 주인공 ‘오스카’는 두 번째 역할로 모션캡쳐배우를 하게 된다. 이 때 ‘오스카’가 보여주는 움직임은 활력 넘치고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그것은 곧 디지털화 되어 괴상하기 이를 데 없는 이미지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레오스 까락스 감독이 디지털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렇다면 레오스 까락스 감독이 디지털 영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실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감독의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이미지화되어 표현된다. 리무진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아름다운 파리 시내를 보던 ‘오스카’가 이내 모니터를 통해 보던 그 아름다움이 디지털화 된 것으로 보이면서 절망감을 느끼는 장면이 그것이다.

 

<홀리모터스>에는 자신이 믿던 진짜 영화가 사라져가는 감독의 절망감이 지배적인 동시에 이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무력감이 깊게 배어있기도 하다. 죽어있는 극장의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공포감, 폐업한 사마리텡 백화점의 이미지 등에서 <홀리모터스>는 지속적으로 죽음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에 ‘오스카’는 바뀌어가는 세계에 적극적인 저항은 하지 못한다. 그저 쓸쓸히 그 사이를 걸어가며 죽음을 기다리는 무력감만을 보일 뿐이다.

 

결국 <홀리모터스>는 자기가 믿던 세계의 종말을 바라보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텍스트를 넘어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텍스트로의 확장을 가능케 하는 부분이다.

 

   
▲ <홀리모터스> 스틸컷

인생에 대한 영화

<홀리모터스>에서 영화와 실제 세계는 자주 혼동된다. 오스카가 연기하는 세계와 연기하지 않는 세계 사이가 마구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홀리모터스>의 이미지나 에피소드들은 영화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인간의 삶과 세계를 은유하는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 영화에서 자주 인용되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부터 그렇다. 이 이미지들은 본인이 좋아하던 영화의 죽음을 언급하는 이미지가 되는 동시에 한 인간의 인생과 그 인간이 몸 담았던 세계가 사멸해가는 것을 언급하는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무한한 것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죽음을 맞는다. 인생이든 세계든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데, <홀리모터스>에는 그에 대한 절망감과 무력감이 짙다.

 

인생과 세계를 은유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또 하나의 강력한 이미지가 있는데, 그것이 가면이다. 이 영화 속에서는 ‘오스카’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종국에는 그 세계의 모든 사람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고, 세계 자체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착각을 줄 정도다. 이런 생각의 강력한 동기를 주는 것이 종반부에 ‘에바’가 초록색 가면을 쓰는 이미지다. ‘에바’는 극 중에서 연기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마저 종국에 가면을 쓸 때의 충격은 상당하다. 그리고 그녀가 가면을 쓰는 시점이 집으로 퇴근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여러 상황에서 다른 모습을 연기해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홀리모터스>가 시선임을 알 수 있다.

 

<홀리모터스>는 이 세계나 인간의 삶은 영화와 같고, 어떤 세계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스러져갈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절망감만이 있는가? 그것은 또 그렇지 않다. <홀리모터스>에는 사멸해가는 세계에 대한 공포가 있지만 동시에 운동감에 대한 찬양이 전편에 깔려있기도 하다. 운동감은 죽음의 반대되는 이미지다.

 

   
▲ <홀리모터스> 스틸컷

운동감에 대한 영화

<홀리모터스>에는 초기 영화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초기 무성영화의 기법이나 관습이 더러 보이기도 하고 리무진으로 대표되는 큰 기계를 사용하던 당시의 영화 환경에 대한 그리움이 영화 전편에 깊게 배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활동사진이다. 그리고 이런 활동사진은 영화 속에 종종 인서트 된다. 이 활동사진들은 엄밀히 말해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레오스 까락스는 이 활동사진들을 영화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첫 장면에 넣을 만큼 그가 활동사진을 중요하게 여겼던 이유는 그 운동감 때문일 것이다. 정지되어 있던 사진이 움직이는 순간에 대한 환희와 그 생명력. 레오스 까락스 감독은 이를 영화의 핵심이자 삶과 세계의 핵심으로 본 것이고, 운동감 덕분에 세계가 아름답고 영화가 아름답다고 본 것이다.

 

이런 운동감에 대한 찬양은 영화 전편에 여러 방식으로 표현된다.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카메라, 움직이는 리무진의 이미지 등 시각적인 것은 물론이고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영화의 마지막 리무진들이 대화를 나눌 때, “움직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아.”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결국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운동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홀리모터스>에는 멈춘 것은 공포의 대상이나 분노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움직이는 거의 모든 것은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운동감을 아름다움의 핵심 중 하나로 보고 있는 것이다.

 

   
▲ <홀리모터스> 스틸컷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

 

<홀리모터스>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 중반부에 리무진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오스카’에게 “아름다움? 그것은 보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다른 것이에요.”라고 말한다. 이는 아름다움은 명확한 정의가 없는데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의미가 있냐는 질문으로 보이기도 하고,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에 ‘오스카’는 반문한다. “보는 사람이 없어지면요?”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아무도 봐주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다수에게 아름답다고 추앙받던 모델을 ‘오스카’는 광인의 모습을 하고 납치한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의 미학으로 그녀를 연출해내어 새로운 모습을 만들고 거기에 스스로 발기한다. ‘오스카’는 연출자로써 자기 나름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었고, 거기에 취한다. 하지만 그녀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영화는 묻는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타인은 공감하지 않는다면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가?’라고 말이다.

 

이는 다시 영화에 대한 감독 스스로의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영화의 아름다움이란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내 아름다움을 누가 봐줄 수 있을까?’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다면 내가 믿는 이 아름다움이 실존한다고 계속 믿을 수 있는 것인가?’

 

   
▲ <홀리모터스> 스틸컷

‘막간’이 주는 희망

<홀리모터스>의 끝은 더없이 처량하다. 활력 넘치는 활동사진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우리도 결국 폐차될거야”라는 리무진의 체념으로 끝난다. 힘들었던 하루 끝에 집에 들어가지만 남게 되는 것은 다시 시작하고 싶은 후회다. ‘오스카’는 처절하게 후회하고 반성하는 듯하지만 우리는 안다. ‘오스카’는 다음날 똑같이 이렇게 힘든 일들을 반복할 것임을. 이 영화는 영원히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맴돌다가 결국 사라져가게 되는 인간의 비극성과 무력함을 떠올리게 하니까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이 끝을 향해 가고 인간은 이를 막을 힘이 없다면 우리는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홀리모터스>에 답은 없다. 레오스 까락스 감독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영화에 해답지를 마련해놓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풍부한 텍스트를 토대로 관객 나름의 답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내게 이 영화에서 가장 환상적인 순간은 ‘막간’이었다. 지난하고 힘든 하루의 일과 중에 잠시 ‘막간’이 주어진다. 그 순간은 음악과 움직임으로 채워져 있고, 삶에 대한 의지와 활력이 가득하다. 이 순간은 하루 중에 잠깐 주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것이 인간을 살게 한다. 어쩌면 인간은 그 찰나의 행복을 위해 괴로운 나머지의 순간을 참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찰나의 행복은 살아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귀한 것이다. <홀리모터스>에서 죽어가는 노인을 연기하던 ‘오스카’는 말한다. “죽는 것도 괜찮겠지, 하지만 죽으면 사랑을 할 수 없잖아.” 끝이 있으면 어떤가. 그래도 지금은 살아있지 않나. 살아서 그 귀한 행복을 아직은 누릴 수 있지 않나. 아직은 ‘막간’을 누릴 수 있지 않나.

 

 

김정민 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디아티스트
디 아티스트 소개기사제보광고홍보 및 제휴문의 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회사명: 골든허스트  |  The Artist Daegu: 대구광역시 수성구 들안로 59, 4층  |  대표자명: 김혜인
대표전화: 070-7566-8009  |  일반문의메일: theartistmag@naver.com  |  사업자등록번호:107-20-48341  |  신문 등록번호: 대구,아00205
등록일: 2016년 12 월 14일  |  발행인/편집인: 김혜인  |  청소년 보호 책임자: 김경식
Copyright © 2022 디아티스트. All rights reserved.
golden hurst
by ndso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