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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아트&디자인
가장 솔직하고 노골적인 소통, 예술과 섹스데이비드 워나로위츠(David Wajnarowicz)의 <얼굴 꿰매기 작업>, <뉴욕 랭보연작>
양효주 칼럼니스트  |  motu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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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1  21: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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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양효주]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을 막 지났을 때였다. 건장한 체구를 한 커플이 종려나무처럼 한 몸이 되어 출입문에 기대어 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여자의 모습이 어딘가 석연찮다. 옷차림과 화장이 너무나 선언적이라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여성성. 나는 날렵하게 눈동자를 굴려 그녀의 무릎뼈와 콧대를 재빠르게 훑었다. 엇, 촉이 온다. 이번에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귀에 꽂은 이어폰 한 쪽을 떼고서 그녀의 목소리를 분별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녀는 태생적이 아닌 선택적으로 여성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매서운 눈썰미를 만족스럽게 확인하던 차, 불쑥 내 머릿속을 관통하는 따끔한 일갈이 있었다. ‘So What?’

곧 무거운 절망감이 현기증처럼 나를 덮쳐왔다. 그동안 나는, 로즈 셀라비(Rose Selavy)라는 가명까지 쓰며 여성이 되고파 했던 마르셀 뒤샹과 보헤미안적인 기질과 동성애의 성향을 지닌 앤디 워홀의 삶과 작품을 탐닉하고, 팝 가수 프린스의 음악을 들으며 아방가르드의 자유로운 정신 속에서 지성의 그물을 짜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지행 불일(知行不一)의 한심한 작태란 무언가. 고백건대 뒤늦게 차린 반성의 행위라는 것도 고작 그들로부터 나의 유별난 시선을 거두는 것이 전부였다.

이어폰을 귀에 다시 꽂고 목적지로 가는 내내 생각했다. 나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보다 격하게 표현해서, 나를 적대시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순간 내 옆자리로 데이비드 워나로위츠(David Wojnarowicz)가 다가와 앉았다. 그가 내게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항상 내 자신이 이상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회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말해지지 않는 연대가 있다.” 가솔린 냄새가 나는 그의 유년의 기억들, 몸과 마음에 가해진 벌건 통증. 이 소외된 자의 울분으로 점철된 솔직하고 노골적인 예술세계를 나는 아프게 경청하기로 한다.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David Wojnarowicz)

 

데이비드 워나로위츠(David Wojnarowicz, 1954-1992)는 미국 뉴저지의 레드뱅크(Red Bank)라는 작은 타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아 그가 두 살이 되던 해 이혼을 했다. 선원이자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손에서 길러진 워나로위츠와 그의 형제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잔혹한 학대를 받으며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가한 폭력은 신체적 폭력에 그치지 않고 성적‧정신적 학대로까지 이어졌다. 그의 불안증과 동성애 성 정체성은 이때 형성되었다고 본다.

워나로위츠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을 뛰쳐나와 일찍부터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더럽고 깡마른 몸뚱어리를 팔기 위해 뉴욕 이스트의 소란한 밤거리를 정처 없이 부유했다. 섹스는 그에게 유일하게 타인과의 접촉이 허용되는 수단이었다. 이마저도 신통치 않은 날이면 밀물처럼 밀려드는 참을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을 자위로 달랬다.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David Wojnarowicz)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David Wojnarowicz)

 

그는 늘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가 자신과 같은 남성에게 매혹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성애자들)이 알면 그를 정신병자로 치부할지 몰라 겁에 질렸다. 그래서 혹 사특한 무리들에게 붙잡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히스테리에 눌려 신음했다. 당시는 동성애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시작된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이 일어나기 전이었으므로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힘겨웠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나 워나로위치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사회가 시행하는 엄중한 검열‧정화의 과정에서 폐기 처분되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인간 군상을 경멸하고, 고립시키고, 침묵시키는 이 사회의 자명하지만 은폐된 폭력성을 예술로 드러내고자 했다.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David Wojnarowicz), 《얼굴 꿰매기 작업》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David Wojnarowicz), 《얼굴 꿰매기 작업》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나를 병든 사회에서 서서히 분리시키는 쐐기였다.”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David Wojnarowicz), 《무제》, 1990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David Wojnarowicz), 《무제》, 1990

 

  어느 날 정치가들은 이 아이에게 반대하는 법을 제정할 것이다. 어느 날 가족들은 그 자녀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것이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가족의 후세에게 그것을 물려줄 것이다. 그 정보는 이 아이의 삶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 (...) 이 아이는 전기 자극, 마약, 실험실에서의 조건 요법의 대상이 될 것이다. (...) 그는 집과 시민권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상실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그가 자신의 벌거벗은 신체를 다른 소년의 벌거벗은 신체 옆에 두고 싶어 하는 욕망을 발견한지 1, 2년 안에 발생할 것이다.”*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David Wojnarowicz)《뉴욕의 아르튀르 랭보연작》, 1978-78

 

워나로위치의 랭보 연작은 뉴욕의 거리와, 지하철, 카페, 푸줏간 등을 오가는 가면 쓴 남자의 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이다. 가면을 쓴 사람은 방랑자 또는 관음자로 해석할 수 있다. 가면은 진짜 얼굴을 보여줄 수 없거나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지를 표상한다. 표면적으로 가면을 쓴 이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관찰자로서 주유한다. 동시에 가면 속에 진짜 자아를 감춤으로써 타인의 경멸적 시선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누린다. 영국의 비평가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은 워나로위치의 랭보 연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관계 맺음과 혼자 있음의 쟁점을 다루며, 특히 한 개인이 적대적인 사회에서, 그의 존재를 관용하기보다는 아마도 죽기를 더 원할 것 같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주제에 집중한다. 그것은 다양성을 열정적으로 선호하며, 균질적인 사회가 사람들을 얼마나 고립시키는지 예리하게 알아차린다.”**

   
David Wojnarowicz, Arthur Rimbaud in New York (times square), 1978-79
   
David Wojnarowicz, Arthur Rimbaud in New York (On Subway), 1978-79
   
David Wojnarowicz, Arthur Rimbaud in New York, 1978-79 
   
David Wojnarowicz, Arthur Rimbaud in New York (diner) 1978-79
   
David Wojnarowicz, Arthur Rimbaud in New York, 1978-79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David Wojnarowicz), 《아름다운 사람들 (video still)》, 1988

 

   
David Wojnarowicz, Beautiful People (video still), 1988
   
David Wojnarowicz, Beautiful People (video still), 1988

 

어쩌면 우리는 목숨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에 노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순결함’이란 이름으로 차별성을 허용하지 않는 병든 사회에 무기력하게 감염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 경악해야 할지 모른다. 《성적 의존성의 발라드》의 사진집으로 유명한 낸 골딘은 워나로위츠에게 그의 작품에서 가장 이루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덜 느끼게 하고 싶어. 나에게 제일 의미 있는 건 그거야.”, “신발을 통해 느껴지는 그 소리의 파동이, 순식간에 느껴지는 외로움이,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는 유리 벽 안에서 숨 쉬는 것 같은 기분이 어땠는지. (...) 내가 혈관을 갖다 붙여서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텐데. 내가 당신 몸을 열어서 당신의 피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당신 눈으로 내다보고 당신의 입술과 내 입술이 영원히 한데 합쳐질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텐데.”***

지하철이 어느새 목적지인 선릉역에 다다르자 나는 그의 얘기를 마저 듣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귀에 대고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한 구절을 읊었다. “이봐, 넌 혼자야. 홀로 세상에 맞서야 해. 마음이 안 내키더라도 사람들을 보러 나가 즐기고 연기를 해야 할 거야. 이 땅에 발붙이고 있는 동안은 말이야.” 애석하게도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뿐이었다.

 

<참고문헌>

*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외로운 도시』, 어크로스, 2017.

** 위의 책

***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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