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대중화 "예술 교육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THE ARTIST 매거진=한임연 에디터]예술의 대중화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 및 그 범위의 확산 과정과 역사적 맥락을 같이 한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으나,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17 -18세기를 거치면서 예술의 향유층 범위가 부르주아 및 시민 계층으로 확산됨에 따라 현대에서는 그 대상이 ‘모든 사람들’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 역사가 갖는 몇 천여년이란 기나긴 시간에 비해서 모든 사람의 기본권이 확립된 것은 고작 100년도 채 안 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때문에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것에 있어 아직도 수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함에는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여러가지 부작용에 대한 염려와 및 이미 성역화되어 버린 기존의 고정관념 등으로 인하여 예술의 대중화가 더디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예술의 대중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먼저 방향을 설정하고 나서야 이를 바탕으로 예술의 대중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근본적 토대 및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술의 대중화가 나아야가 할 방향
그렇다면 예술의 대중화는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의 존재의미에 대해 논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예술의 가치는 우리의 삶 속에서 ‘도구’로서 기능할 때 비로소 발현된다. 다시 말해 예술이란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나은 삶으로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관은 오늘날 예술의 대중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즉, 예술의 대중화를 통해 삶 속으로 예술을 쉽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우리의 삶을 보다 풍성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로 예술은 우리 삶 속의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예컨대, 예로부터 회화는 텍스트와 함께 어떠한 사건을 역사의 한 증거물로 남기는 기록의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최근에는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음악과 미술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것들 외에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예술로부터 받는 영향은 생각보다 막대하다. 예술을 받아들이는 궁극적 매개가 바로 인간의 가치관과 사고이며 이는 인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대중화는 바로 이러한 예술이 인간의 삶에 보다 긍정적이고 유익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술의 대중화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한 근본적 토대

그러나 사실, 예술이 위와 같은 기능을 잘 발현하기까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역량문제가 뒤따른다. 씨앗이 제 아무리 좋아도 토질이 이에 적합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열매를 맺기 힘든 것처럼, 실질적으로 예술을 수용하는 대중들이 이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른다면 예술의 대중화는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단기적이고도 구체적인 예술의 대중화 방안을 설정하기 이전에 보다 근본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예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역량을 높이는 일’이다(여기서의 ‘역량’이란, 예술을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자주적이고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예술적 소양’과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대중들의 예술적 역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

예술은 돈있고 여유있는 자들만의 전유물이 절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 할 만큼 우리의 일상은 ‘예술적인 어떤 것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식탁을 차릴 때나 그릇을 고를 때에도 나름의 미적 기준을 준수한다. 근래에는 SNS나 블로그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지가 뜨거운 주제로서 각광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우리가 오고 가는 길에 무심코 보고 지나친 나무와 꽃들도 예부터 예술의 주된 소재로 사용되어 온 것들이다. 그러한 예술을 보다 풍부하게 느끼고 이것을 자신의 삶 속으로 십분 용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감상자 스스로의 예술적 역량이며, 이는 어려서부터의 ‘교육’을 통해 늘일 수 이다.

실례로 독일을 들어보자. 독일은 오래전부터 예술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에도 예술을 공부하려는 많은 유학생들이 가장 일순위로 선택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명실상부 독일은 예술 교육에 있어서도 남다른 면모를 보여왔다. 근대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교육운동의 발상지답게 독일은 예술 교육에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듯 하다. 주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바덴 - 뷔르템베르크 주의 경우 초등학생들은 약 8시부터 12시 전후까지 정규 수업을 듣고 난 후 오후부터는 전적으로 예술문화 교육을 받게 된다. 지난 1월 한 달 간 필자에게 초등학생이 3명이나 있는 독일의 한 가정집에서 홈스테잉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받았던 가장 큰 문화충격 중 하나가 아이들이 오후의 모든 학사일정들을 악기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며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보낸다는 사실이었다. 고작 5,000여명이 사는 시골의 한적한 마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다양한 예술 수업을 접하고 있었다. 게다가 예술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있는 독일은 저소득층에의 예술 관련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2011년 독일은 ‘교육 및 참여지원정책Bildungs-und-Teilhabepaket’이라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음악학교 등 예술 관련 수업비를 매달 10유로씩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지원은 만 18세까지 받을 수 있을 만큼 장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업 방식도 독특하다. 실례로 독일의 미술수업에서는 그림 하나를 제시해주면 이에 대하여 학생들이 자유롭게 비평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단순히 미술과 관련된 이론이라든가 기법 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접근하는 방법까지 배우는 것이다. 예술 수업에 쏟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술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낼 수 있어야만 비로소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을 갖다 줘도 그것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지만 만약 그들에게 그동안 접해 온 예술이 자신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얼마만큼 미치고 있는가 물어보면 대부분 선뜻 대답하기 어려워 할 것이다. 이는 그동안 획일화되고 지루한 이론 위주의 교육, 일주일에 겨우 2-3시간 밖에 배정되지 않은 예술 관련 수업 등 예술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 기존의 교육 시스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진정한 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앞으로 어떤 식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까?

획일화된 예술교육은 없는 것만 못하다. 서로 다른 개인의 취향과 개성, 고유의 경험과 가치관 등을 고려한다면 분명 같은 작품이라도 받아들이는 내용에는 차이가 있을 터인데, 획일화된 교육은 이러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차단해버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예술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많은 작품들을 접하고 이를 통해 자기 고유의 창의적이고도 열린 해석을 가능케 하도록 해야 한다. 즉, 열린 사고의 장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사례처럼 어떠한 특정 작품에 대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해석해보는 시간을 자주 가져 보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수업 시수도 늘려야 한다.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고등학교가 음악과 미술과목을 선택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는 학생들이 예술 ‘느끼기’는 커녕 이를 수용하기 위한 기본 바탕을 다지는 데에도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현실을 고려하여 다이나믹한 개편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고등학교 3년 내내 예술을 꾸준히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들이 어려서부터 예술을 현실의 삶과 접목시키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예술을 통한 치유 뿐만 아니라 예술을 통해 현실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 예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류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 왔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예술을 자신의 삶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현 시대의 예술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