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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영화
두 남자의 진심어린 사투, 영화 <재심>
강규일 칼럼니스트  |  louis1s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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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13  1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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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再審)
"이미 확정된 판결 내에서 사실 인정의 오류를 시정함으로 기존 판결로 불이익을 받은 피고인을 구제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 영화 <재심> 포스터(준영 역의 정우)

[디아티스트매거진=강규일 칼럼니스트] '탕탕탕' 재판에서 판사봉으로 결정된 판결과 구형, 하지만 중대한 오류나 흠이 있는 경우 이를 시정해 판결을 취소하고 종결된 사건의 재심판으로 불이익을 받았던 피고인을 구제하도록 만들어진 비상 수단적인 제도가 바로 1954년 9월부터 시행된 '재심'이다. 영화 <재심>은 과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피살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영화니까 가질 수 있는 '픽션' 즉 감독의 상상력과 더불어 실제 사건의 재구성을 감싸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방 크게 먹으려고 모험을 했지만 오히려 벼랑 끝으로 내몰려 갈팡질팡 하는 변호사 '이준영(정우)'.이미지 회복과 인생 역전을 꿈꾸던 그였지만, 15살 나이에 억울하게 형을 확정받아 소년과 청년 사이의 중요한 과도기를 차가운 교도소에서 살게 된 '현우(강하늘)'를 위해 그 날의 진실을 찾고자 한다.

   
▲ 영화 <재심> 포스터(현우 역의 강하늘)

그들의 눈빛이 이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숨겨진 진실과 부패한 세상과의 사투로 지쳤음에도 불구,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갈증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증오가 뒤섞여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피살사건을 재구성하다!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 8분경. 인적 없는 조용한 약촌오거리. 전라북도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에 당시 15살 최군이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택시를 몰고 가던 당시 42살 유모씨와 마주쳐 시비가 붙었다. 욕설을 퍼붓는 택시기사, 혈기왕성할 법한 나이의 최군이 스쿠터 사물함에서 흉기를 꺼내 유씨를 무참히 살해했다.
과연 이것은 진실일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택시 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범인은 살인에 사용했던 칼을 들고 도주하다 오토바이를 타던 최군과 부딪힌다. 최군은 쓰러졌고 범인은 그대로 달아났다. 뒤이어 경찰들이 왔지만 목격자 신분이었던 최군은 택시기사 살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1심에서 징역 15년, 다시 2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아 형을 확정했다. 10년 옥살이 후 뒤늦게 이뤄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때는 2016년 11월. 최군의 나이는 이미 30대를 넘어섰다. 이 사건의 진범은 지난해 12월 구속 기소되었다.

"내가 죽이지 않았어요. 억울합니다"
현우는 2000년 8월 약촌오거리 사건 현장에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16대 대선을 앞두고 1990년 이후 '두 번째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었다. 이로 인해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진 경찰들은 목격자였던 현우를 유력한 용의자로 둔갑시켜 범인 만들기에 나선다.
부패한 경찰 철기(한재영)의 연이은 구타와 혹독한 고문으로 졸지에 범인이 되어버린 현우는 10대의 나이에 홀어머니(김해숙)를 두고 차가운 교도소에 수감된다.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어미니의 모습이 안타까운 나머지 현우는 죄를 인정하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감형을 받는다.  

   
▲ 아들 현우과 이야기하는 엄마(김해숙)

사건이 일어난 지 3년 흘렀다. 경찰서에 진범이 나타났다. 현우의 억울함이 풀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하지만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이 날까 두려운 검사는 형사 철기를 이용해 사건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정의사회를 구현해야 할 검찰과 경찰로 인해 진짜 범인은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풀려나게 된다.
거대 로펌 '테미스(Themis)'에서 재기를 꿈꾸는 이준영 변호사가 현우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지만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더욱 강력하게 빛을 발하는 어두운 권력들이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준영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현우의 살인죄를 풀어줄 수 있을까?
영화는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했고 관객들이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드라마적인 요소들을 스크린에 녹였다.

"어디 한번 죽여봐! 너 절대 사람 못 죽여. 왜? 넌 살인자가 아니니까."
준영이 현우에게 외치는 이 한마디는 관객을 울컥하게 만든다. 그 날의 진실에 대해 소리치고 싶은 현우와 진실을 파헤치는 준영의 진심이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된다. 정우와 강하늘의 놀라운 연기가 화면을 한가득 채운다.

   
▲ 준영 역의 정우와 현우 역의 강하늘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과 희망 없는 시대에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검경이 자신들의 안위(安危)와 눈부신 실적을 위해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나약한 시민들을 골라 용의자로 지목하고 급기야 감금과 고문을 일삼는다는 것은 후진적이고 비극적이며 구시대적인 픽션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팩트다.
영화 <변호인>에서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겪었던 고초(苦楚)나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김경호 교수(안성기)가 당했던 억울함 그리고 사법부를 향해 던지는 소신발언 모두 이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가슴 아프고 씁쓸하지만 결국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

앞서 언급했듯 돈과 명예만을 좇던 이준영이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명성을 위해 현우의 누명을 벗겨주겠다고 앞장선다. 권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던 현우의 모습을 보고는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동료 변호사 창환(이동휘)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준영의 모습을 보고 말한다.
"변했다. 너. 가능성도 없는데 뭘 이리 열심히냐?"
하지만 세상의 부조리함에 분노해 '진심'으로 '진실'을 찾는 준영은 과거 자신과 같이 돈과 명예를 좇는 창환에게 같은 말을 한다.
"너 많이 변했다"
영화의 러닝타임 119분 동안 준영은 그렇게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돈'을 좇던 그였지만 '정의'앞에 선다.

   
▲ 동료변호사 창환(이동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준영

영화는 준영의 캐릭터를 통해 '정의사회 구현'을 이야기한다. 재심이라는 것. 어쩌면 조간신문 사회면 자투리를 활용해 기사화가 되고 금방 잊힐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무관심한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이다.

   
▲ 실제 사건을 담당했던 박준영 변호사

극 중 이준영 변호사의 실제 모델인 박준영 변호사는 목포대학교에서 전자공학과를 전공하다 중퇴했다. 2002년 사법고시에 패스해 변호사가 되었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끝에 수많은 사람들이 누명을 벗었다. 수임료를 받지 않았으니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실현한 정의로 인해 감동을 받은 시민들로 인해 '박준영 변호사의 크라우드 펀딩'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부조리한 사회, 희망 없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피해를 입거나 억울하게 고초를 겪은 그들을 위해 일해왔다. 영화 역시 이러한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 법정에 선 이준영 변호사(정우)

"저는 현우를 변호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된 한 소년에게 사죄하러 나왔습니다."
영화의 엔딩신에서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준영의 모습과 이 대사는 심금을 울리는 한마디이자 대한민국 사법부가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할 메시지다. 
사실 '영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쉬운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정우와 강하늘의 연기는 기존 작품의 캐릭터를 넘어선다는 느낌이 들만큼 폭발적이다. 부패 경찰 철기 역의 한재영 역시 조연으로서 자신의 몫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베테랑 배우 이경영이나 김해숙 또한 완성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는 반면 실화 재구성에 가까운 플롯은 기존의 유사한 작품들과 같은 핏줄이라 자칫하면 진부해 보일 수 있다. 특히 준영이 재심에 착수하는 테미스에서의 첫출발부터 재심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증거를 수집하고 증인을 확보하는 과정들이 마치 짜여진대로 그리고 아주 순탄하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굉장히 많은 고뇌와 '사투'라고 불릴만큼의 좌절도 있었을 법하지만 119분이라는 러닝타임에 담기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동네 건달(박두식)이 현우를 찾아가 이런 이야기를 남긴다.
"법이란 것은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야. 그걸 믿냐?"
사실 이런 류의 영화는 '영화로서의 아쉬움'이 문제가 아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법,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법이 오히려 사회의 부조리를 형성하고 가진 자들을 위해 쓰인다는 지독한 현실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태윤 감독과 박준영 변호사가 이 영화를 통해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가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이 사회를 조금씩 바꿔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조금씩이라도 변화해주기를 희망해본다.

   
▲ 율법의 신, 테미스(themis)

준영이 조건부로 몸담았던 법무법인 '테미스(Themis)'는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법과 정의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눈을 가린 채, 천칭과 검을 들고 있다.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보기 위한 것이며 천칭은 공점함, 검은 천벌을 상징하고 있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다뤄져야 할 법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더 이상 현우와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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