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Instagran

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네이버 20Pick

THE ARTIST MAGAZINE

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다음 스토리볼

THE ARTIST MAGAZINE

디 아티스트 매거진
THE ARTIST
디아티스트 on 네이버 블로그

THE ARTIST MAGAZINE

> 칼럼 > 영화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사울의 아들>(2015)
김진아 칼럼니스트  |  originaljina@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2.03  16:15:28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디아티스트매거진=김진아]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는 언제나 내게 큰 관심거리이다. 이것은 이미 영화적 흥미를 넘어 학구적 진지함으로 승화 돼버린 지 오래다. 관심의 시작은 이것이었다. 왜 그 많은 유대인들은 저항하지 못했는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희생되어야 했는가?

여러 서적을 구입하고 읽어봤지만 답은 매우 간단했다.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막강한 권력 앞에서의 공포는 절대 다수의 힘을 결박했고 그들은 그렇게 시키는 대로 각각의 수용소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온갖 회유의 방법으로 그들을 포위 했기 때문에 가족위주의 유대인들은 쉽게 저항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항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나름의 힘을 모아 독일의 패배 직전까지 싸웠다.

   
▲ ⓒ네이버 영화

이제까지의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그들의 희생과 고난의 시간들을 재연하는 기록적 영화의 성격을 띄어왔다. 하지만 이 영화 <사울의 아들>은 그런 것을 목적에 두고 있지 않는다.

이미 영화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포기한지 오래인 것처럼 보인다. 누가 몇 명이 죽어나가는지 영화는 관심이 없다. 이미 화면은 아웃 포커스와 4:3의 답답한 화면으로 사울만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하지만 긴장감을 놓치지는 않는다. 불편하지만 명확하게 들려오는 통곡과 오열과 울부짖음은 영화 내내 우리의 귓가에 맴돈다. 이것은 오로지 사울의 심각한 표정만을 따라잡는 화면보다 더욱 지배적이다. 우리는 그렇게 내내 어쩔 수 없이 총성과 통성을 들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영화의 필수 조건이다.

 

사울은 왜?

사울은 민폐 캐릭터이다. 그와 함께 시체 처리반(존더코만도)에서 일하는 다른 동료들은 언젠가 자신들도 죽임을 당할 거라는 두려움에 작전을 짜기 바쁘다. 그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들에게 권력은 무의미 하지만 당장 하루라도 연명 할 수 있는 작은 금붙이 조각은 권력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런데 사울이 이상하다. 갑자기 한 소년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하며 필사적으로 지키기를 원한다. 아니 어차피 죽었으니 지킬 수는 없다 치자. 그런데 꼭 그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장례절차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울이 있는 그 곳은 생명의 존엄에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죽음의 가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울이 하는 일처럼 대학살로 목숨을 잃은 많은 유대인들은 아무렇게나 뒤섞여 그저 재가 되어 강물에 뿌려진다. 그런데 사울이 한 소년을 자신의 아들이라며 갑자기 죽음에 가치를 부여 하려 하고 있다. 그러고 나니 생명의 존엄이 부활한다. 아, 영화는 죽음을 반증으로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있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한다. 영화의 말미에는 총격에서도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달아난다. 심지어 사울의 아들의 장례를 돕기로 한 랍비까지도 달아난다. 사울도 달아난다. 살아야 한다. 생명(삶)이 살아남아야 죽음을 지킬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서 우리는 탈출한 생명이 살아남길 바라게 된다. 더 이상의 총성과 통성이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공간이다. 그렇지만 다른 작은 생명에 의해서 우리는 모두 죽는다. 우리가 잃었다가 다시 되찾았던 그 두 가지의 가치(삶과 죽음)를 우리는 지키지 못한다. 그저 다시 총성만이 난무하다.

   
▲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사울의 아들인가?

사울의 동료는 계속해서 이야기 한다. 너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아들이 없다. 그저 사울을 미친 사람 취급하며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여길 뿐이다. 그 소년이 사울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 사울의 아들이 맞냐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아닌 것 같아 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사울의 아들일 리가 없다. 사울은 자신의 비참한 상황, 그리고 어느 것도 지켜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늘 시체만을 처리하는-에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곳엔 내가 무언가를 지켜내야 하는, 지키고 싶은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은 매우 비극적인 곳이다. 그런데 그런 죽음과 비참의 현장에서 죽지 않고 숨을 뿜어내는 소년이 있다. 사울에게 지켜낼 것이 생겼다. 자신에게 날아든 작은 생명이다. 물론 소년의 숨은 오래가지 못한다. 곧바로 숨졌지만 사울의 신념과 사명의 표적이 된 소년은 살아있든 죽어있든 지켜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사울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야만 한다.

그래서 소년이 사울의 아들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소년의 등장은 그들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남이 죽어나가든 말든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그 상황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이미 영화의 배경은 도덕과 윤리의 영역이 아니다. 장례를 돕지 않고 달아난 랍비의 행동을 꾸짖을 수 없다. 그리고 죽은 자 때문에 산 자를 죽이냐는 동료의 비난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이미 그곳의 삶의 가치는 사라졌었기 때문이다. 사울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우린 이미 예전에 죽었어”

 

   
▲ ⓒ네이버 영화

 

결국 그들은...

 결국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은 저항을 했다. 몰래 사진을 찍어 독일군의 만행을 숨겨 놓기도 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극악무도한 행위를 폭로하려 애썼다. 그것이 모두가 총을 들고 결의를 다진 막강한 반란군들의 저항은 아니었어도 어쨌든 우리는 그들이 마지막 남은 힘으로 지켜낸 것들을 통해서 그러한 사실들을 애도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많은 홀로코스트 영화 중에서도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잊지 못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은 크게 없다. 소설을 그대로 이미지화 시켜 놓았다. 독일군의 아들과 유대인의 아들이 철창 너머로 친구가 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들은 서로를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철창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독일군의 아들은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다른 유대인들과 섞여서 가스실로 끌려가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 영화는 두 소년들의 우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늘 철창 사이에서 그들의 우정을 보여준다. 그 쇠창살은 겉으로는 낡고 엉성해 보이지만 무서운 어른들이 나눠 놓은 금기된 세계의 구분이고, 그 공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지만 두 소년에게는 그것이 무의미 하다. 그저 두 사이의 애틋함만 가중시켜 줄 뿐이다. 영화는 결국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모두가 동등하고 모두가 중요한 존재, 어른들의 기준으로 분류해 놓은 귀한 존재(독일군의 아들)도 그들 사이에서는 어리석게도 처벌받아 마땅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 영화는 옷을 다 벗은 채 남녀노소가 알몸으로 뒤섞인 채 한 공간(가스실)에 우르르 몰려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울의 아들은 영화의 시작이 그러하다. 홀로코스트 영화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 장면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 그 곳에는 삶과 죽음의 가치가 동등하고 평등하게 존재하는 곳이다. 아니 그랬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공간이지만 그 곳은 그랬어야 했다. 그 안에서 결국 그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 가슴 아픈 사실에서 숭고한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울의 아들은 명확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지만 죽음이라는 영화적 수미상관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진아 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디아티스트
디 아티스트 소개기사제보광고홍보 및 제휴문의 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회사명: 골든허스트  |  The Artist Daegu: 대구광역시 수성구 들안로 59, 4층  |  대표자명: 김혜인
대표전화: 070-7566-8009  |  일반문의메일: theartistmag@naver.com  |  사업자등록번호:107-20-48341  |  신문 등록번호: 대구,아00205
등록일: 2016년 12 월 14일  |  발행인/편집인: 김혜인  |  청소년 보호 책임자: 김경식
Copyright © 2021 디아티스트. All rights reserved.
golden hurst
by ndso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