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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영화
키아로스타미 3부작을 논하다
고대영 칼럼니스트  |  kodae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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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5  14: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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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디아티스트매거진=고대영] 닭이 달걀을 낳고 그 달걀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다시 닭이 된다. 그러한 과정을 보며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진다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지그재그 3부작이 처음엔 내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3부작의 첫 번째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이후 두 번째 <그리고 삶은 계속되고>를 보며 작품 속 배역들에 대해 슬슬 의문점이 들기 시작한다. 극중 감독으로 나오는 배우가 실제로 아이가 걱정되어 찾아다니는 것인지, 그 아이는 실제 코케에 사는 아이인지 등 모든 게 궁금해진다. 혼란스러움은 세 번째 <올리브나무 사이로>가 다큐와 같았던 두 번째 작품에 대한 촬영 현장을 다룸으로써 정점에 다다른다. 관객들로 하여금 이것이 영화인지 아니면 다큐멘터리인지 의아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리얼리즘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러한 궁금증을 유발했다면 그 영화는 감독의 성공한 작품이 되는 셈이다.

감독이 추구하는 리얼리즘은 영화 한편에 녹아 있을 수도 있지만 키아로스타미의 3부작처럼 영화와 영화 사이를 이어주는 리얼리즘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단순히 ‘이 영화는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또는 우리도 겪어봄직한 내용이기 때문에 리얼리즘이다’ 식의 설명을 넘어서 세편의 영화가 하나씩 개봉될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이게 전부인가, 아니면 다음 작품에 더 있는 게 아닐까’ 를 의심하게 만드는 그러한 시리즈였다. 쉽게 말해 이번 3부작은 마치 우리에게 ‘당신이 영화라 여기던 것이 현실이었다면 혹은 현실이라 여기던 것이 영화였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듯 했다.

구체적으로 영화 속 리얼리즘에 대해 생각해보면 또 다른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영화 속 빠져선 안 되는 것들이 있다. 3부작의 부제이기도 한 ‘지그재그 길’ 그리고 그 길 위를 오가는 주인공들이 그것이다.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이제 하려고 한다.

첫 번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제목 그대로 친구의 집을 찾아다니는 꼬마 아이의 이틀간의 시간을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본인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한국 시나리오 마켓에 내다 놓았다면 다운로드 수가 한자리에 머물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감독의 리얼리즘에 대한 세밀함이 담겨있어서 이것들을 느끼는 재미라면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충분하지 않나 싶다. 영화 속 대표적인 장면들만 회상해 보자면 주인공 아이가 친구 네마짜데를 찾으러 다니는 과정에서 사촌 헤마티네의 집을 먼저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애써 네마짜데 사촌의 집에 다다라서는 이웃들이 누굴 찾느냐는 질문에 가엾고 귀엽게 ‘네마짜데’라고 답한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공감하게 하는 장면이다. 요즘 말마따나 ‘다 왔는데 왜 찾지를 못하니’라는 한탄이 나올만한 부분이었다. 이러한 대사는 정말 이 아이가 NG를 냈는데 그냥 밀고 나갔는지 싶을 만큼 자연스럽다. 사실 기존의 어린 아이들은 영화나 드라마에만 나오면 천재가 되어왔다. 모든 걸 한 번에 말하고 한 번에 이해하고 그런 존재로 부각된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아이들은 정말 일상에서 흔히 보는 아이들의 행동, 습관, 심지어 실수마저 닮아있다. 좀 생각하다가 말을 꺼낸다던지, 혼자 중얼거려 잘 들리지 않는다던지 말이다. 리얼리즘의 장점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관객을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에 이입이 된다기보다는 이 어린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마음을 갖게 하는 점이 이 영화가 갖는 리얼리즘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네마짜데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라며 다른 네마짜데에게 퇴짜 당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좌절을 했고 할아버지가 데려다 준다고 말했을 때는 안도감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리얼리즘이 주된 색깔을 뜨이지만 영화를 좀 더 영화답게 만들어 주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숙제를 하던 중 바람에 문이 갑자기 열리는 장면을 통해 관객은 아이의 불안감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다음날 숙제 검사의 예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中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책 속에 낀 꽃의 엔딩은 주인공 아마드에게 영화 러닝타임 동안 수고했다고 일러주는 듯 했다. 이렇게 리얼리즘 영화라고 해서 모든 게 관객의 눈에 풀어서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진부한 영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곳곳에 현실적인 이야기와 함께 연출적 요소를 함께 함으로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결실을 맺게 된 것 같다. 여담이지만 영화 속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리얼리즘과 다소 상충되는 장면인데 바로 주인공 아마드의 뜀박질 속도가 줄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는데 처지는 모습이 없다. 특히 계단의 경우 좁고 굽은 곳이 많기에 롱테이크를 다른 장면에서만큼 쓰지는 않았는데 곳곳에 끊고 이어지는 흔적이 남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정말 리얼리즘이라면 아이가 앉아서 숨 고르는 장면도 롱테이크로 가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이란 특유의 근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걸까.

두 번째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의 경우 전편보다 더 단순한 흐름을 지니고 있다. 전편의 주인공 아이를 찾아나서는 감독 본인의 이야기인데 물론 감독 역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하고 있다. 러닝타임 내내 ‘코케가 어디니’와 ‘이리로 가면 나오니’ 정도의 대화만이 오가는 영화지만 이 작품이 훌륭한 이유는 역시 리얼리즘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극 중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와 보이는 태도는 의외로 매우 긍정적이다. 이 또한 신의 뜻이 아니겠는가 라는 말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이란인들의 전형적인 정통 이슬람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꼬마아이 마저 서툰 발음으로 신의 뜻임을 강조하니 말이다. 이러한 인간의 사상을 통해 현실성을 높이는 한편 앞서 말했듯이 다소 혼란을 주기도 한다.

극중 영화감독의 역할을 하는 배우는 시종일관 지난 영화의 포스터를 들고 다니며 이 아이가 어디 있는지를 찾아 묻는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영화에 나온 것을 알기에 단번에 알아보기도 한다. 여기서 이러한 장면들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감독의 질문에 답하는 주민들은 실제로 그 아이를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전편을 본 나처럼 말이다. 나도 그 아이를 알고 있다. 이 순간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부터가 실제인지 구분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분명 영화 속 감독은 키아로스타미가 아니기에 심어놓은 배우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분위기는 마치 그들마저 내가 영화 속에 있는지 아니면 단순 인터뷰의 현장인지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오죽하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쉽게 뇌리에서 떠나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이 이야기는 세 번째 <올리브나무 사이로>와 함께 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세편의 영화를 다 보면 좋겠지만 만약 그럴 상황이 안 된다면 가장 추천하고픈 작품이 바로 이 세 번째 작이다. 이 작품 하나를 보면 키아로스타미의 리얼리즘이 무엇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를 촬영하던 현장을 배경으로 다시 영화화 한 것이 <올리브나무 사이로>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촬영 스틸샷이나 메이킹 필름이 아닌, 또 다른 창작물이다. 이 영화 역시 극중에 감독의 역의 배우가 나온다. 결국 첫 번째부터 이 영화까지 총 세 명의 감독이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은 이 모두가 키아로스타미 한명인 것이다. 마치 거울 두 개 사이에 서있는 나를 떠올리게 한다. 거울 속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도 나는 계속 나오고 이 3부작에서는 같은 나를 두 배우를 통해 재생산해 내는 것이다.

   
▲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포스터

세 번째 영화가 리얼리즘을 깨닫기 좋다고 느낀 이유는 바로 이 촬영 현장이라는 배경에 있다. 촬영 현장 안에서 배우와 감독은 서로의 의견 대립을 이루는 모습들이 나온다. 실제로는 25명이 지진으로 죽었지만 감독은 극적인 요소를 위해 더 많은 사망자로 부풀릴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배우는 그러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리얼리즘의 영화 속 감독이 좀 더 극적인 상황을 주문하는, 아이러니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또한 촬영이 진행되었던 지역은 여성이 남성을 부를 때 ‘-씨’ 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데 감독은 그걸 알지 못한 채 NG를 내는 여배우를 질타하기도 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현실과 영화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또한 감독의 연출된 의도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다큐멘터리 장르가 아닌 이상 감독은 리얼리즘을 원하든 또 다른 표현주의를 내세우든 인위적으로 관객들에게 비춰야만 한다.

지금까지 각 영화 속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다음은 세 작품을 한데 모아 키아로스타미 감독만의 연출에 대해 논하려 한다. 리얼리즘이라는 굳이 정형화된 표현을 떠나서 단지 영화를 ‘보기’위해 선택한 관객들에게도 이 3부작은 매우 훌륭하게 인식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한 이유에는 몇 가지 요소가 담겨 있다. 첫째는 감성이다. 영화 세편 모두 극적인 전개나 충격적인 반전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물 흐르는 듯한 전개 속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 나누는 대화와 몸짓,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절함과 무심한 듯 하면서도 신경을 써주는 관심 등이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했다고 생각한다. 귀찮지만 대답은 다 해주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이라던 지 학교 선생님의 설명, 그리고 이웃 아주머니의 안내 등이 그러하다. 둘째는 롱테이크 기술에 있다. 화면을 크게 잡고 그 화면 안에서 많은걸 일어나게 하는 그만의 방식이 영화 속에 존재했다. 이런 롱테이크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화면의 움직임은 그만큼 관객들의 시야를 다양하게 해준다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실제로는 그만큼 제한을 둔다고 생각한다. 시각의 이동은 가능해질지 모르지만 시야의 확장에는 분명 방해가 있을 것이다.

롱테이크는 이러한 부분을 보완해준다. 말 그대로 한 테이크를 길게 가져다줌으로써 특히나 키아로스타미의 3부작에서는 이러한 장면들이 연출을 극대화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롱테이크가 두 가지 있었는데 첫째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의 마지막 장면과 <올리브나무 사이로>의 마지막 장면이다. 전자의 경우 지그재그 길 위에서 청년의 도움으로 차가 움직여 올라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차가 지그재그를 오르다가 다시 청년을 태우고 떠나는 그 롱테이크 속에서 영화가 앞서 보여주었던 이야기가 집약 되어있었다고 생각한다. 지진 피해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고 생존자들은 집을 잃고 텐트에 모여 살지만 그들은 축구중계를 고대하고 혼례를 올린다. 물론 그 상황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영화가 하고픈 이야기는 ‘우리가 삶에서 겪는 모든 것들이 다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듯이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라는 것이다. 그 두 시간에 가까운 이야기는 마지막 차가 지그재그 인생길을 오르며 그래도 달리는, 멈추기도 하고 누군가를 태우기도 하며 그럼에도 목적지로 향해 달리는 모습으로 대변되는 것이었다.

   
▲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 中

후자의 경우는 <올리브나무 사이로>에서 남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처자에게 외면을 받음에도 끝까지 쫓아가 구애를 하는 장면이다. 지그재그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너무 멀어 점으로 보인다. 그렇게 끝이 나나 싶어 좌석에서 일어났다면 그 관객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표할 뿐이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불이 켜지기 전까진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렇게 승낙을 못 받을 것 같았던 남자는 경쾌한 리듬의 음악과 함께 저 멀리서 뛰어오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지그재그의 길을 오르고 내린 끝에 얻어 낸 결과물. 그 결과물을 쥔 채 다시 올라야 하는 지그재그 길은 결코 힘들거나 지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이 그렇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는 게 인생이고 키아로스타미는 그것을 영화 속 롱테이크를 통해 구현해 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롱테이크 속 지그재그 길이라 말하고 싶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며 떠올랐던 사람이 있었다. 한국의 홍상수 감독이다. 홍상수 감독 역시 리얼리즘적 영화를 만들어 온 장본인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그이지만 국내에는 그의 영화를 보고나서는 그래서 이게 뭐라는 건지 싶은 사람들 역시 상당수이다. <오! 수정>, <극장전>등을 본 적 있지만 나 역시도 그의 영화를 통해 그렇게 깊은 삶의 통찰이나 교훈을 느낀 적은 없었던 듯하다. 물론 영화라고 다 교훈적일 필요는 없다. 어벤저스를 보고나서도 이러한 느낌은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어벤저스처럼 눈요기라도 되었다면 관객들은 만족 할테지만 이 두 거장의 영화는 그마저도 이룰 수 없다는 점이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또한 리얼리즘만이 갖는 특징 아니겠는가. 홍상수의 영화는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키아로스타미의 그것과 일맥상통 한 면이 있지만 차이점 역시 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홍상수의 리얼리즘에는 분명한 캐릭터의 색깔이 있다고 본다. 정말 현실에 있음직한 인물이 그럴만한 환경에서 보통 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지만 그 행동 역시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특이한 행동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 개개인의 색은 존재한다. 키아로스타미의 경우 인물들이 갖는 성격이나 행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주변 환경이나 인물이 겪는 하나의 큰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같은 리얼리즘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분명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조건 보여준다고 리얼리즘이 아닐뿐더러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가에 따라서도 다양한 리얼리즘이 나올 수 있다. 결국 키아로스타미의 지그재그 3부작은 극히 평범한 한 인물이 하나의 소소한 목표를 가지고 관객들과 함께 찍는 로드무비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운전하는 주인공의 옆자리는 관객의 자리가 되어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을 함께 보기도 하고 길을 묻기도 한다. 때로는 길을 찾는 아이의 뒷 꽁무니를 따라가며 이 집은 맞는 거겠지 하며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또한 여자에게 고백을 하러간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 초조해 하다가 저 멀리서 펄쩍 뛰어오는 모습을 보며 함께 기뻐하기도 한다. 이게 바로 키아로스타미의 3부작의 결론이자 리얼리즘이라 생각한다. 결국 리얼리즘은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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