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미의 탄생, 고대 그리스 문명

Aphrodite, known as the "Venus de Milo" Late 2nd century BC

[디아티스트 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고대 그리스 문명은 전 편에서 설명한 에게해 문명 중 미케네 문명이 멸망하고 약 400년 뒤에 발생한다. 그 400여 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어 일명 ‘암흑시대(Greek Dark Ages)’라고 불리운다. 암흑시대를 거친 후 기원전 9세기 그리스 본토에는 인구 변화가 시작되고 미케네 문명을 흡수하며 그리스에 정착하는 움직임이 발생한다. 이들은 아테네, 스파르타, 올림푸스 산, 마라톤, 델피, 테베, 아르카디아, 올림피아 등을 중심으로 도시국가(Polis)를 형성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교역을 통해 이집트 등의 근동 문화와 접촉, 글 쓰는 법과 돌 깎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는 기원전 8세기 경 발명된 그리스 알파벳과 더불어 철학과 과학, 문학과 연극에 불을 붙였고, 또한 조각술이 발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문명이 고도화되면서 그리스는 오늘날의 프랑스와 독일 부근까지도 활동범위를 넓혀가게 되는데, 언제나 단결된 문화 정체성을 유지한다. 그리스 일대 사람들은 스스로를 ‘그리스인’으로서 정체화하곤 했는데 그러한 범지역적 동질감은 동일한 언어와 종교, 그리고 지역 간 평화를 앞세우며 매 4년마다 거행된 올림픽 대회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세상의 ‘배꼽(omphalos)’이라고 여길 정도로 문화적 우월감을 가졌다. 그러한 자부심으로부터 인간중심적 사상이 발달하게 되고, 이 인본주의는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고대 그리스 미술

인간중심적 사상은 미술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이전 문명들과는 다르게 신을 마치 인간의 모습처럼 나타내게 된다. 이 때, 신들은 외형 뿐만 아니라 성격과 행동까지도 인간과 가깝게 묘사됐다. 신에 의인화하고 인격을 부여했던 것은 그만큼 인간성 자체를 높이 샀다는 것을 뜻한다. 

회화

고대 그리스는 ‘회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다. 하지만 오직 극소수의 유물만이 남아있는 관계로 그리스 회화의 발전도는 화가와 관련된 일화들로 구전될 뿐이다. 예컨대, 누가 더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지 내기를 걸었던 두 화가 제우시우스(Zeuxis)와 파라시우스(Parrhasius)의 이야기는 당시 화가들이 지녔던 열정과 기술력을 가늠하게 한다.

도자화

그들의 실력은 회화작품 대신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증명된다. 당시에는 물항아리(히드리아), 기름항아리(레키토스), 와인 항아리(크라테르), 와인피쳐(오이노코에), 그리고 다용토 컵(앰포라) 등 다양한 종류의 도기가

발달했는데, 그 위에는 주로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 항아리에는 전사 아르킬레우스가 친구와 게임을 하고있는 모습이 새겨져있다. 마치 고대 이집트나 에게해 문명의 작품들에서처럼 인물의 옆모습이 강조되었는데, 다시점적이었던 이전 시기와는 달리 정해진 구도에서 그려졌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세밀히 묘사된 머리카락과 망또의 패턴은 예전 미술기법으로부터 진일보하였음을 보여준다.

작품의 미술사적 중요성은 작가 엑세키아스(Exekias)의 서명이 적힌 최초의 항아리라는 데에 있다. 이전 시기까지만 해도 익명화되었던 장인의 존재가 작품 위 ‘서명’을 통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는 미술품이 작가 개개인의 능력을 드러내는 업적으로써 여겨지게 되었음을 알린다. 

고대 그리스 조각

고대 그리스 문명은 크게 네 시기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미의 교본으로 수용되는 ‘그리스 고전주의’ 양식을 발전시키게 된다. 그 발전 과정은 현재까지 보존되어있는 조각들로부터 유추된다. 

1. 아카익(Archaic) 시기 (c. 8th -6thBC) 

Peplos Kore. c.530 BC

작품명에서 ‘코레(Kore)’는 여성 또는 소녀를, ‘페플레스(peoples)’는 여성이 입고 있는 긴 겉옷을 뜻한다. 이집트 조각과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그리스 조각에는 남녀 별 묘사방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남성상은 주로 차려 자세로 옷을 벗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반면, 코레상은 윗 작품처럼 페플로스(peplos)를 반드시 걸치고 있다. 

작품은 딱딱하고 굳은 듯한 자세로 인해 얼핏 이집트 시기의 파라오 입석상을 연상시키면서도, 팔과 몸통 사이에 허락된 공간과 세심한 얼굴 묘사로 이집트 조각보다는 확실히 진보한 느낌을 준다. 

이 코레상에서 눈 여겨볼 만한 것은 얼굴에 희미하게 번진 ‘아카익 스마일(Archaic Smile)’이다. 이 때 ‘아카익(archaic)’은 ‘오래된’ 이라는 뜻도 있지만, ‘신비스러운’, ‘알 수 없는’을 뜻하기도 한다. 조각가들은 얼굴근육의 움직임을 해부학적으로 관찰하고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과정에서 이 시대만의 특별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미소의 미적 가치와는 별개로, 무뚝뚝한 얼굴에서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바로 아카익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색이 바랜 것처럼 보이는 이 조각 위에는 본래 왁스와 안료가 섞여진 것이 칠해져 있었다. 일명 ‘납화법’이라 불리우는 채색 기법이다. 하얗게 색이 벗겨진 조각상에 미세하게 남아있던 안료를 채취한 뒤 분석하여 색을 복원한 것이 바로 우측의 조각이다. 흰색 석고나 대리석인 줄만 알았던 그리스 조각들이 원래는 색칠되어있던 것.

2. 초기 고전주의 (c.490-460B.C.) 

고대 그리스는 페르시아 전쟁(c. 480BC - 448BC)을 기점으로 아카익 시대에서 고전기로 넘어간다. 혼란스러운 전세 속에서도 그리스인들의 예술의지는 좀처럼 꺾일 줄 모르며 고전주의 양식의 발단을 보이게 된다. 

Critios Boy c.480 BC.

아카익 시대의 남성상에 비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인간같은 얼굴 부위와 몸의 골격, 그리고 근육. 미묘하게 비대칭적으로 묘사된 어깨와 골반선은 인물이 좀 더 편안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처럼 척추와 다리가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는 자세를 일컬어 ‘콘트라 포스토(contra-posto)’라고 한다. 이 콘트라포스토의 등장은 초기 그리스 미술의 가장 특징적인 변화이다. 

Poseidon/Zeus, C.450 BC.

작품 속 인물은 포세이돈이나 제우스라는 추측이 있다. 묘사하려는 인물이 누구였든지 간에, 이 청동 조각은 전체적으로 생동감을 띈다. 앞을 향해 쭉 뻗어있는 왼팔과 무언가를 던지려는 듯한 오른 팔, 그리고 왼쪽 다리에 치우친 무게 중심은 작가가 특정 순간을 포착하여 표현하고자 했음을 드러낸다. 당시 조각가들은 인체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조각에 담아내고자 했다. 

당시 청동 조각상들은 ‘밀랍소멸식 청동주조법 (Lost-Wax Process)’으로 만들어졌다. 우선 흙이나 석고로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그 위를 밀랍으로 두껍게 덮는다. 그 위에 흙을 다시 뒤엎고 열을 가한 뒤 밀랍을 녹여 빼내면 안쪽 석고 층과 바깥 쪽 흙 층 간에 빈 공간이 생긴다. 여기에 녹인 청동을 부어 굳히고 바깥 틀을 떼어내면 조각이 완성된다. 고대 그리스 시기에 처음으로 발명된 이 청동조각상 제작 원리는 수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Discus Thrower, 460BC

작품 <원반 던지는 남자>는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 당시 대리석 조각에는 안정감을 위해 발 부분을 받쳐주는 나무둥지모양의 지지대와 함께 만들어졌다.

인물은 한 손으로 원반을 던지려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릎을 잡고 있어 팔 전체가 어깨를 타고 하나의 포물선을 이루고 있다. 그와 대칭되게, 어깨를 너머 등을 따라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또 다른 포물선이 보인다. 전반적으로 곡선이 많이 활용된 작품이다. 

3. 고전주의 (c.450-400BC) >

페르시아 전쟁 종전(479BC) 이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431BC) 사이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아테네의 전성기가 펼쳐진다. 이 때는 미술, 정치, 시, 연극, 철학, 논리학, 역사, 수학 등이 발전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문학적 융성은 고전주의 미학이 탄생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 고전주의 시기의 예술적 성취에서 유래한 ‘고전적’이라는 표현은 ‘전통적이고, 질적으로 탁월하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주의 양식은 시공간적을 초월하여 오늘날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전미’가 발현된 조각들은 이마에서부터 매끈하게 뻗어있는 코와 우아한 표정이 특징이다. 이것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이상적으로 여긴 얼굴 생김새였다. 표정과 감정이 정제되어 매우 침착해 보이는 표정도 이상미의 일부로 여겨졌다. 신체적으로도, 이집트 시대부터 전해져온 ‘canon(비율)’의 개념이 발전한 ‘등신’ 개념이 등장한다. 초기에는 7등신이 이상적인 신체비율로 여겨졌으나, 이후 8등신으로 대체된다. 

고전주의 건축 

고전주의 양식의 조각들은 대다수가 신전과 광장 등이 모여있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건축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기원전 432년 완공되어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에게 바쳐진 파르테논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의 명물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교회나 성당처럼 신도들이 기도를 하러 오는 곳이 아닌, 말 그대로 신을 모시는 전당이었다.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었던 이 신성한 건물에는 거리와 상관없이 완벽하고 이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몇 가지 독특한 건축기법이 사용된다. 예컨대, 기둥의 가운데를 부풀리는 ‘엔타시스(Entasis)’는 기둥이 원거리에서도 온전한 수직형태로 보이게 한다. 

그리스 건축물들의 시그니쳐인 기둥(order)에 대해 살펴보자. 기둥은 크게 세 가지 양식으로 나뉘어진다. 우선, 기둥이 바닥에서부터 곧바로 세워지고 지붕과 맞닿아 있는 ‘캐피탈(capital)’을 심플하게 처리한 도릭(Doric) 양식이 있다. 여기에 바닥과 기둥 사이에 받침대 칼럼(column)이 더해지고 캐피탈을 둥글게 말린 양뿔의 형상으로 조각한 것이 이오닉(Ionic) 양식이다. 이 이오닉 양식에서 선이 얇아지고 한층 더 우아해진 코리티안(Corithian) 양식은 캐피탈이 굉장히 크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코리티안식 기둥의 캐피탈은 주로 식물의 이파리 모양을 따서 장식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도릭 양식의 기둥들이 바치고 있는 지붕에 사실주의적으로 새겨진 부조로 유명하다. 세밀하기 묘사된 말의 근육과 갈퀴, 그리고 그 위에 타고있는 전사들의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아테나 니케의 사원에 있는 한 부조에는 마치 젖어 있는 듯 신체에 밀착된 옷을 입은 니케의 모습이 새겨져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옷 속에 감춰져있던 여체를 드러내며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섬세하게 표현된 옷주름은 당시 조각술의 정도를 가늠하게 한다.

에렉테이온 신전은 그 지붕이 6개의 여인상으로 지지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조각상들과 지붕과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캐피탈 대신 관을 쓰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처리되어 있다. 

우아하게 주름진 옷을 걸친 여인들은 한쪽 무릎을 구부려 콘트라 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천장을 바치고 있음에도 고요하고 침착해 보이는 표정이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4. 후기 고전주의 양식 (c.400-300BC) >

그리스의 고전주의 양식은 5세기까지 발전하다 이후에는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스파르타와 같은 다른 도시국가들이 부상하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대대적인 인구 유동 및 융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후기 고전주의 양식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육감적 미감이 등장한다. 예컨대, 이전 시기까지만 해도 전무했던 여성이 누드상 최초로 등장한다. 여성상들이 한층 더 글래머러스해졌다면, 남성상은 좀 더 우아하게 길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스 양식 초기의 7등신 캐논이 8등신으로 길어진 것이다. 

Praxiteles, Aphrodite of Cnidus, 350 BC

어김없이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 아프로디테상은 살집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몸매가 인상적이다. 한 손으로 성기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 몸 전체적으로 S자 형태를 강조하는데, 이 곡선에는 작가 이름을 딴 ‘프락시텔리안 커브(Praxitelian Curve)’라는 명칭이 붙게 된다. 신체에 표현된 프락시텔리안 커브와 더불어 매끈한 곡선으로 처리된 얼굴은 이후 17세기 서양미술에까지 이어진다. 

Apollo Belvedere,original of ca. 350-325 BC

이 조각상은 아폴론이 델피에서 큰 뱀을 죽이기 위해 활실을 당긴 순간을 포착하였다. 조각을 안정적으로 바치기 위해 발등 뒤에는 나무 기둥 조각이 세워져 있는데, 여기에 작품의 스토리를 강조하는 뱀이 새겨져 있다. 차분하고 경건한 표정, 그리고 섬세한 굴곡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으로부터 기품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신들의 모습만 제작했던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는 실존인물들이 조각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추남으로 악명높아 ‘이상미’와는 거리가 멀었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가감없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있는 작품도 있다. 

5. 헬레니즘 시기 (c.323-31B.C.)

헬레니즘 시기는 알렉산더 대왕이 서거한 기원전 323년로부터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황제로 등극한 기원전 31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이 때 부흥한 헬레니즘 문화는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활동과 문화교류로 동방으로까지 확장된 그리스 문화를 아우른다. 

Winged Victory of Samothrace, c.190 BC

이 시기에는 역동성이 느껴지는 조각들이 다수 등장한다. 윗 작품의 경우, 이제 막 지상에 내려와 날개를 접으려는 천사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그로부터 유려하게 드러나는 신체의 곡선이 아름답다.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다리는 뒤로 내뺀 자세로부터 대각선 구도가 강조되면서 신체의 생동이 한층 더 강조된 것이다.

헬레니즘 시기에는 그동안 고전주의 양식에서 선호되었던 이상미 뿐만 아니라 ‘추’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현실로 시선을 돌려 ‘아름답지 않은’ 대상들도 작품화하는데, 이 조각에는 노파의 주름진 얼굴과 몸, 그리고 삶에 지친 듯한 표정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있다. 

Laocoön and his Two Sons.

작품은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이 포세이돈이 보낸 물뱀에 짓눌려 죽는 순간을 묘사 한 것이다. 고통에 사로잡혀 강하게 뒤틀린 신체와 찌푸려진 이맛살은 죽음에 대한 저항을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고전주의 시대의 이상적이고 정적인 얼굴표현과 비교했을 때, 인물의 감정표현이 훨씬 더 거세게 드러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본토의 도시국가 문명으로부터 시작하여 더 넓은 지역을 포괄한 헬레니즘 시기까지 인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과학과 철학, 정치, 문학, 연극, 종교 등 다양한 분야가 발전하며 문화적으로 왕성했던 당시의 예술은 영원히 공감되는 아름다움, ‘고전미’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고전주의 양식은 서양미술사를 통틀어 오늘날까지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디아티스트 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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