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인상주의

GOGH, Vincent van, Starry Night over the Rhône September 1888

[디아티스트 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인상주의의 주된 조형원리는 색채실험이었다. ‘후기인상주의’라는 표현은 이 색채실험의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이는 평론가 로저 프라이가 마네와 함께 기획한 <후기인상주의자> 전시를 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하지만 시기적 구분을 위해 ‘후기인상주의’는 대체로 신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화가들에 국한한다. 

세잔, 고갱, 고흐 등의 후기인상주의 화가는 신인상주의가 작가만의 감수성을 과학적인 색채 분석에 희생하였다 보았고 내면세계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 
어쩌면, 이들을 후기인상주의라는 하나의 공통된 사조로 묶어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인상주의적 색채활용과 내면 표출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신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1. 세잔, 입체주의의 아버지

CÉZANNE, Self-Portrait on Rose Background 1875-77

세잔은 인상주의가 변화무쌍한 자연의 외관에 주력한 나머지 그것의 고요한 내적 질서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다고 보았다. 여타 인상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세잔은 대상의 외형에서부터 본질적인 특징을 발견하고자 했고, 이것을 가장 기초적인 조형단위로 환원시켜 묘사하였다. 

이 철학적이고 신앙적인 작가는 모든 사물은 보편적인 질서체계를 갖추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추출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특히, 원통, 원추, 구 등의 형태를 신이 만든 불변의 규칙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구상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타내어 자연에 내재된 영원불변의 구조를 질서감있게 재현하고자 했다. 

물론, 본질적인 형태와 더불어 색채의 중요성도 인식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인상주의자적이었다. 다만, 인상주의가 추구했던 색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이것을 색점이라기 보다는 색면에 가까운 단위로 구성한다는 차이를 띄었다. 

자연과 사물이 향유하는 본질을 색과 조형으로 탐구하고자 했던 세잔의 견고한 목적의식은 인상주의로 하여금 미술사적으로 유의미한 한 사조로써 인정받게 하고, 미술관 제도에 편입되어 당당히 전시될 수 있는 것으로 승격시켰다.

CÉZANNE, Paul, Mont Sainte-Victoire 1904-06

우선, 화면 전반적으로 평면성이 느껴진다. 색면들을 중점적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색면으로써 삼각형의 생 빅투아르 산이나 다면체의 집같은, 기하학적으로 환원된 대상을 용이하게 그려냈다. 

색으로 캔버스를 채워나갔다는 점에서 작가가 인상주의적 조형요소를 계승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존의 인상주의자와 세잔 사이에는 명백히 다른 접근 방식이 존재한다. 전자가 자연을 가변적인 것으로 여기고 그러한 성질을 색점으로 빠르게 화면에 옮겨냈다면, 세잔은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적 형태를 발견하고 그것을 색면으로 구사했다. 이처럼 가변성을 본질화시켜 그 속에서 불변의 구조를 찾고자 했던 것이 세잔 만의 인상주의 극복 전략이었다. 

CÉZANNE, Paul, Still-Life, 1890-94

세잔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사물에 내재된 불변하는 본질적 형태였다. 따라서, 작품 속 사과와 오렌지는 과일 본연의 특징이 드러나기 보다는 단순한 구 형태에 가깝게 그려졌다. 동시에 기존 인상주의에서는 드물게만 보이던 원근법과 그라데이션으로 입체감을 살리기도 했는데, 이것은 사물의 디테일 그려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것의 기본 구조인 ‘구’가 본래 지니는 완벽한 입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눈에 띄는 건, 위, 아래, 옆에서 본 시점들이 동시에 적용되어 같은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잔이 입체주의가 가장 중요한 조형전략으로써 내세운 ‘다시점’ 개념의 선구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고갱, 야수주의의 아버지

GAUGUIN, Paul Self-Portrait with Yellow Christ 1889

한편 고갱은 빛에 대한 관심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있었다. 그는 색채를 통해 상징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것을 예술의 주목적으로 삼았다. 모든 물체와 색채에는 고유한 상징성이 부여되어있다고 믿은 고갱은 그 상징성을 발견, 그려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자 했다. 이에 평론가 알베르 오리에는 고갱의 화풍에 대해 "상징주의적 표현을 발전시켜 새로운 이념을 구가한 양식"이라 평하기도 했다.

고갱은 나비파(Les Nabis) 화가들과 함께 ‘종합주의’라는 개념을 고안한다. 단순히 대상의 외적 형상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신성의 세계와 화가의 내면 세계까지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고갱은 구체적 실물과 추상적 정신, 즉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가 결합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수단으로 강한 색채, 그리고 단순화된 형태를 활용한다.

우선, 화면 위에 넓고 강렬한 색면을 구사하여 심리적인 호소력을 창출하는 것이 고갱만의 특징이다. 그는 색면을 칠하기에 앞서 굵고 검은 윤곽선으로 화면을 분할하고 묘사 대상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 시키기도 한다. 일명 ‘클로와조니즘(cloisonnisme)’이라 불리우는 이 기법은 관념 표현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종교적으로 심취했던 고갱이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결과였다.

GAUGUIN, Paul, Vision after the Sermon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1888,

작품 <설교 후의 환상,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을 보면 한 가운데에 위치한 나무나 설교하는 수녀들의 윤곽이 선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러한 윤곽선을 따라 나누어진 공간은 색면으로써 채색되는데, 이 때 각각의 색은 모종의 상징성을 갖는 것이다. 가령, 붉게 칠해진 땅은 천사와 야곱 간의 격투가 벌어지는 상상의 공간을 묘사하기 위한 주관적 색채인 것이다.

이 작품에는 현실 속 사람들과 상상 속의 야곱과 천사가 공존한다. 고갱은 실재와 관념을 종합주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가운데의 거대한 나무는 현실과 세계를 구분하는 클로와니즘적 기준선으로 작용한다. 전반적으로, 고갱의 회화적 특징인 종합주의와 클로와니즘이 동시에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GAUGUIN, Paul, The Spectre Watches over Her (Manao Tupapau), 1892

순수한 감정과 관념을 그려내는 데에 초점을 두었던 고흐는 기계와 물질주의에 빠져있는 서구권보다는 덜 문명화된 원시 지역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1891년부터 10년 간 타히티에서 작품활동을 지속한다.

문명과는 거리가 먼 타히티. 인공 불빛보다는 모닥불이 익숙한 그곳에서 고흐는 한 원주민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다. 작품은 깜깜한 밤중에 성냥불을 들고 집에 들어오는 고흐를 보고 죽음의 신이 찾아온 줄 착각하여 공포에 떠는 아내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작품 속 배경에 칠해진 진한 보라색과 침대 밑 바닥의 푸른색은 그리고 침대보의 선명한 주황색과 대비된다. 고갱은 이 색들이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과 그로인한 공포감이 자아내는 어두운 느낌을 묘사하고자 했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낙원 속 여인마저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념적인 주제의식도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처럼, 대상의 형태와 색채로부터 특별한 기호와 의미를 축출하고자 한 고갱은, 특히 색의 상징성에 입각하여 내면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한 고갱의 색채 미학은 이후 야수주의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3. 고흐, 표현주의의 아버지

GOGH,Self-Portrait with Grey Felt Hat Winter 1887/88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늘 괴로웠던 고흐. 추구하는 이상에 비해 현실이 비참해 보이는 순간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다는 그는, 자신의 유일한 감정 표출수단이자 소통창구를 그림으로 삼았었다. 

하지만 당시 인상주의적 기법만으로는 화가에게 내면을 분출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가 부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작품 <해바라기>에서처럼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는 점은 고흐가 여전히 기존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나, 고흐는 감정표현에 있어서의 인상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고흐는 자신의 마음 속 극단적인 감정까지도 여실히 드러내는, 오직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사조를 개척한다. 

감정을 그려낸다는 것이 비록 다른 사람들 눈에는 왜곡되어 보일지언정 화가의 감정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라 믿었던 고흐. 그는 자신의 희로애락을 역동적인 필체로 구사한다. 그의 격정적인 표현력은 이후에 등장하는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GOGH, Vincent van, Starry Night June 1889

<별이 빛나는 밤>에는, 기본적으로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어 괴로워하는 고흐의 내면이 드러난다. 작가의 독특한 필체를 따라 꿈틀거리는 대기 사이로는 당시 공동묘지에 많이 심어졌던 사이프러스 나무가 큼지막히 그려져있다. 이 사이프러스는 죽음을 상징하는 요소이다. 

한편, 이 불안정한 분위기는 공기 중으로 상승하여 밤하늘을 밝히는 별빛으로 한 차례 정화되는듯 하다. 작품은 작가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미래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복합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읽힌다.

GOGH, Vincent van, Wheat Field with Crows July 1890

어느 날, 고흐 앞으로 동생 테오가 재정적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서신이 도착한다. 안그래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고흐는 충격을 받고 이내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은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그린 그림이다. 흐드러지듯 그려진 검은색 까마귀 떼는 당시 고흐가 느꼈던 극도의 좌절감과 고립감을 드러내고 있다.

세잔, 고갱, 그리고 고흐

세잔, 고갱, 고흐의 공통점은 모두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지니는 한계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인상주의가 색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에 머물렀다면, 이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회화의 자율성’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화법은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 않고 캔버스 위에 색채와 선이라는 조형요소만으로 미적인 가치를 창조한다. 회화 자체에 내재된 미감에 주목한 세잔, 고갱, 그리고 고흐는 이어지는 20세기 현대미술에서 분기점을 이루어냈다. [디아티스트 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