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인상주의의 시작

전 편에서 마네의 작품들을 설명하며 ‘낙선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는 프랑스 학사원에서 주최하는 당대의 등용문 ‘살롱전’의 불공정한 심사제도에 반대하여 낙선한 화가들이 자체적으로 기획한 전시였다. 그러나 낙선전에 만족하지 못하는 작가들이 곧 생겨났다. 이들은 사실주의 화가였던 나다르(Nadar)의 스튜디오에 《화가 조각가 및 판화가 무명협회전》을 주최하는데, 1874년 4월 5일에서 5월 15일까지 열렸던 이 전시는 사실상 제 1회 인상주의전이다. 

한 기자는 출품된 작품들이 ‘본질’보다는 ‘인상’만을 그렸다고 조롱하며 작가들을 “인상주의자(impressionnistes)”라고 부른다. 당시 미술계에서는 인상을 그리는 것을 일종의 스케치로 여겼던만큼 이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이 상당히 미숙하게 보였던 것. 작가들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을 미완성작으로 여기기도 했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논란과 대중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이 인상주의 전시회는 1886년까지 총 여덟 차례 열리게 된다. 

직관을 따라서

MONET, Claude Impression, Sunrise 1873 Oil on canvas, 48 x 63 cm Musée Marmottan Monet, Paris

이 작품은 인상주의적 형식을 따른 최초의 그림이다. 작품은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짧은 시간동안 눈에 보이는 장면과 그 순간 느낀 감정을 묘사했다. 

모네는 기존의 화가들이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사실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제로, 그들이 추구했던 재현적 완벽성이라는 것은 관념적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사물의 절대적 형태와 색채에 대한 모종의 룰을 내세웠던 전통 회화기법을 따랐을 뿐. 획일적으로 조작된 ‘사실’들의 허구성을 인지한 모네는 자신의 눈을 진실성을 믿기로 했고, 관념적이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보고 느낀 것을 그려냈다.

각각의 사물을 뚜렷한 윤곽으로 그려낸 이전 회화와 상반되게도, 모네의 작품은 스치는 듯한 붓터치로 명확한 윤곽없이 그려졌다. 작가가 대상의 색채와 형태가 빛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알고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모습을 재빠른 손놀림으로 포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직관에 따라 흐르듯 칠해지는 붓질에는 화가의 감정과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이 과정에서 작가만의 독창성이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다. 화가의 직관성을 드러나는 것은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요, 이는 곧 ‘현대성’의 표출이었다. 

근대사회의 발전상을 담은 소재

MONET, Claude Gare Saint-Lazare 1877 Oil on canvas, 76 x 104 cm Musée d'Orsay, Paris

인상주의의 탄생은 단지 우연한 것만은 아니었다. 당대의 사회상이 필연적으로 이끌어낸 것일 수도 있다. 우선, 산업화에 따라 기계문명이 발전하면서 도시가 발전하고, 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이 발명되었다. 그 중에서도 대기와 빛 속에서 매 순간 변하는 기관차의 모습이나 그것이 내뿜는 증기는 인상주의자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이 움직이는 대상들을 스냅사진 찍듯 묘사하는 인상주의적 기법은 당시 발명된 사진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한다.

산업 발전으로 확보된 시간적, 경제적 여유 속에서 여가생활이 발달한다. 사람들은 공원 등지로 나와 야외활동을 즐겼다. 인상주의 화가들도 야외 드로잉을 즐겼는데, 이는 작가들의 소재적 관심사가 근대적 풍경에 있고, 또 햇빛을 중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에 물감튜브가 발명되면서 야외 드로잉 자체가 용이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MORISOT, Berthe In the Grass 1874 Pastel on paper, 73 x 92 cm Musée du Petit Palais, Paris

이처럼 19세기의 도시문명 발달과 함께 성장한 인상주의자들은 근대사회의 풍속도와 같은 작품을 다수 그려낸다. 예를들어, 르누아르는 행복한 여가생활을 중점적으로 그리면서 빛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여류 화가 메리 카사트와 베르트 모리조는 어머니로서의 삶과 여성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들의 순간적인 인상을 그려냈다. <무대 위의 무희>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는 억압받고 소외된 여성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동작이 멈춘 듯한 장면으로 묘사하곤 했다. 

빛의 기록 

빛과 반사광을 중시한 인상주의자들은 야외에서 햇빛 아래 반사된 빛들의 움직임을 그리는 스스로를 일컬어 ‘외광파’라고 했다. 

그들은 사물의 절대적 고유색에 대한 환상을 한꺼풀 벗겨내고 자연이 보여주는 있는 그대로의 색채를 관찰, 묘사하면서 일명 ‘색채의 자율성’을 획득하게 된다. 예컨대, 자연 속 나뭇잎의 색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듯 언제나 초록색인 것이 아니라, 햇빛에 따라 때로는 노란색, 때로는 갈색으로 자유로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HOSCHEDÉ-MONET, Blanche Haystack, Effect of Snow 1890-91 Oil on canvas, 46 x 62 cm Fondation Claude Monet, Giverny

MONET, Claude Haystack in the Snow, Morning 1890 Oil on canvas, 65 x 92 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위 작품은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변화를 연구한 것이다. 그리고 변화하는 빛 속에서 대상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탐구하고자 했다. 동일한 대상이지만 빛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어 서로다른 느낌을 준다. 

색채동시대비이론, 보색대비로 생동감을

RENOIR, The Swing, 1876

 색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19세기 미술계의 분위기에 따라 인상주의자들 역시 색채의 효과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들을 생동감있는 화면으로 나타내려한만큼 색채 배열에 큰 신경을 기울였다.

그들은 언제나 ‘순색’을 선호했다. 물감에서 갓 짜낸 바로 그 색이다. 팔레트 상에서 두가지 이상의 색이 섞인, 일명 ‘중간색’은 순도와 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인상주의자들의 선택에서 제외되었다. 그러한 순색들을 캔버스 위에 배열하는 데에 있어서도 ‘보색’을 활용했다. 한 색깔이 보색관계에 놓여졌을 때 채도가 높아지고, 그만큼 화면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상주의 기법은 그들이 주창한 ‘색채동시대비 이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위 그림에서 르누아르는 그림자가 드리운 부분은 남색으로, 직사광선이 떨어지는 부분은 노란색으로 칠하였다. 보색인 남색과 노란색을 병치시킴으로써 생동성을 강조한 것이다. 

색채분할법, 점으로 칠하다

MONET, Claude Garden at Sainte-Adresse 1867 Oil on canvas, 98 x 130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태양의 빛이 단 1도라도 틀어지기 전 원하는 순간을 단번에 그려내기 위해서는 재빠른 손놀림이 필수다. 이 작품 속의 꽃들은 이파리 하나하나 꼼꼼한 붓질로 그려지기 보다는, 송이가 뭉뚱그려진 채 하나의 색점으로 묘사되었다. 

이처럼 찰나의 인상을 순식간에 묘사하기 위해 색채를 작은 점으로 분할하여 점으로 찍어내는 기법을 ‘색채분할법’이라고 한다. 붓 모서리로 무질서하게 두드려대는 과정에서 색채들은 이리저리 흩날리거나 겹치게 되는데, 이 때 인상주의자들이 그토록 기피하던 중간색이 비의도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또한 색채분할법이 활용된 인상주의 작품의 묘미라면 묘미겠지만, 그러한 불규칙한 터치를 거부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색점을 활용한 자들이 있으니, 바로 이어지는 편에서 소개할 신인상주의 작가들이 되겠다. ■ [디아티스트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