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 현대미술의 시초는 인상주의라 알려져 있다. 1860년 대 프랑스에서 발전하는 인상주의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에서 그 발단을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네는 인상주의자라기보다는 ‘현대미술’ 그 자체의 선구자이다. 우리가 그를 인상주의자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는 인상주의 전시에 참여한 적이 없다. 다만, 그의 작품은 이전의 미술과는 구별되는 모종의 ‘현대성’을 띄었고, 이를 추종한 후대 인상주의 작가들이 마네를 ‘인상주의의의 아버지’라 자처한 것이었다.

살롱전 vs. 낙선전

당시 프랑스에는 “살롱전”이라는, 화가들이 작품을 출품하여 예술계에 등단할 수 있는 전시회가있었다. 이 살롱전의 심사위원들은 국가차원에서 실시된 학회이자 예술교육학사제도인 “프랑스 학사원”의 회원이었고, 대개가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의 교수진이기도 했다. 따라서, 살롱전에서 발탁되는 화가들은 주로 에콜 데 보자르에서 교육을 받은 자들이었다. 프랑스 내 유일무이한 등용문임에도 학연과 지연이 암암리에 작용하는, 그런 불공정한 제도였던 것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래로 계몽주의 사상이 전파되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이 계급화된 예술제도에 비판의 목소리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863년, 보수적인 기성 예술계에 대한 전면적인 반발이 일어난다. 5,000 여 점의 살롱전 출품작 중, 무려 3,000 여 점이 심사위원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떨어지자, 낙선된 화가들이 항의를 한 것. 그들은 기성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불신하고 거부하였으며, 대중들에게 공정한 평가를 받을 것을 주장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낙선품들을 대중에 공개하고 전시할 수 있는 “낙선전”을 실시하였다.

트러블 메이커, 마네

MANET, Edouard, Luncheon on the Grass, 1863,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이미 논란스러운 낙선전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있으니, 바로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였다. 공원이라는 신도시문명의 공간 속 동시대 복장을 한 지식인 남성들. 그런데, 그 옆에 난데없이 발가벗은 여성이라니. 당시 낙선전을 보러온 교양 깨나 쌓았다는 남성들은 자신의 것과 닮은 옷차림을 한 남자들과 나체의 매춘부들과 함께 그려진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작품은 누드화로 읽히기엔 너무 동시대적이었고, 따라서 현실적이었다. 이는 기존 회화에서 통용된 여성의 누드화와는 사뭇 대조된다. 전통 누드화는 주로 시공간적으로 동떨어진 고대를 배경으로하고, 관객의 시선을 회피하는 듯한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그러한 여성을 바라보는 ‘부도덕한’ 남성의 모습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누드화는 본래 관객으로 하여금 지리적, 심리적으로 떨어져있는 미의 세계로 넘어가 아름다운 여성을 훔쳐보도록 하는 관음증적인 장치였던 것이다.

마네의 작품 속 여성의 빤한 눈길로 인해 관객들은 은밀한 환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전에 ‘이성적으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리고 작품은 남성 지식인을 대낮에 공원에서 벌거벗은 창녀들과 놀아나는 작자로 풍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MANET, Edouard, Olympia, 1863, Oil on canvas, 131 x 190 cm, Musée d'Orsay, Paris

<풀밭 위의 식사>와 더불어 미학적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또다른 작품으로는 <올랭피아>가 있다. 여성의 모습은 얼핏 비너스를 연상시키는 데, 실제로 티치아노(Tiziano)나 조르조네(Giorgione)의 비너스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마네는 과거 대가들의 그림으로부터 모티브를 따오되, 도상을 조금씩 바꾸어 자신만의 ‘현대성’을 만들어갔다. 이 작품도 <풀밭 위의 식사>와 마찬가지로, 당대의 사회상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현대적이다. 올랭피아가 차고 있는 초크 목걸이와 흑인 시녀가 들고 있는 배달 온 꽃다발, 그리고 욕망을 상징하는 고양이의 존재는 올랭피아가 창녀임을 암시한다. 어쩐지 현실에 있을 법한 이 여성은 심지어 관객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의심할 것도 없이, 이 작품은 대중들 사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전통회화에 대한 도전이 낳은 현대미술

그러나 주제와 별개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마네가 창조한 현대적인 조형 기법들이다. <올랭피아>는 전통적 회화기법을 깡그리 무시한 전례없는 작품이다. 예컨대, 마치 종이인형처럼 편평하고 하얗게 칠해져 있는 올랭피아의 모습은, 굴곡을 따라 명암이 분명히 처리된 여성누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시각적 불편함을 자아낼만한 것이다.

인물의 양감이 사라진만큼, 광원 역시 불명확히 처리되었다. 작품 속에는 조명이 부재하고, 오직 관객이 서 있는 공간의 불빛만을 편평히 반사한다. 이는 전통회화에서 그림 자체적으로 묘사된 광원의 개념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다. 

The Balcony, 1868-69, Oil on canvas, 170 x 125 cm, Musée d'Orsay, Paris

그러한 양감과 광원의 삭제는 이전의 회화와 구분되는, 새로운 개념의 캔버스를 창조했다. 본래 캔버스는 제 3의 세계를 보여주는 창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마네는 자신의 작품을 이차원적인 평면으로 온전히 환원시켜 캔버스 위의 그림이 다만 색채 덩어리에 지나지 않음을 자각시킨다. 이처럼 마네는 예로부터 통용되어온 회화개념을 부정해가며 '현대적인' 미술을 탄생시켰다. 

MANET, Edouard, The Fife-Player, 1866s

나아가, 마네는 전통화단에서 인기가 많았던 역사적 소재를 차용하기 보다 일상적인 주제를 그려내어 회화의 주제적 폭을 확장시켰다.

피리를 부는 소년을 납작한 색면들로만 표현한 이 작품에서는 배경까지 생략되어 이차원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회화는 또다른 세상을 캔버스 위에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 여겨져왔고, 따라서 배경의 삼차원적 재현은 전통적으로 굉장히 중시되었다. 하지만 마네는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였고, 그 결과 마치 인물이 화면 위에 부유하고 있는 듯한 독특한 느낌을 창조했다.

마네,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리다.

MANET, Edouard, A Bar at the Folies-Bergère, 1881-82, Oil on canvas, 96 x 130 cm, Courtauld Gallery, London

한편, 이 작품은 거울이 비추는 장면을 마치 배경처럼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전통적인 재현방법으로써의 배경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경 뿐만 아니라, 인물 묘사에 있어서도 마네는 '재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전통적 회화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거울에 비친 여성의 이미지는 거울 앞에 있는 실제 여성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고, 여성과 남성의 위치는 원근법의 규칙으로부터 벗어나 그려졌다.

거울에 반사된 대중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얼굴이 마치 뭉개진 듯 표현되었다. 이는 마네가 찰나의 순간 속 군중에 대한 '인상'을 묘사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마네는 전통 회화기법을 거부하고 바꾸는 과정에서 현대성을 창조하였고, 마네의 현대성을 추종했던 인상주의자들은 그의 뒤를 이어 새로운 회화의 시대를 열게된다. ■ [디아티스트매거진 = 염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