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전민지] 서울의 몇몇 백화점만 들여다보아도 디올 매장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플래그십 스토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소비자를 만나는 이유가 뭘까? 요즘 생겨나는 플래그십 스토어들은 과거의 기업이 제품을 전시하고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그것과는 또 다른 형태를 띤다. 브랜드 이미지의 고급화와 차별화를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백화점의 좁은 공간에서 보여줄 수 없는 브랜드만의 성격을 보여주는 공간인 것이다. 이에 기업들은 단순히 매출을 높이기 위해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치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브랜드 관련 체험공간을 마련하며 브랜드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특히 이 ‘체험공간’은 관광객과 충성도 높은 고객을 모두 유혹하는 장치의 기능을 다한다. 백화점에 걸린 옷 사이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디올의 다른 면모를 만나볼 수 있다니, 청담동 거리에 굳이 들어갈 일이 없었던 대학생 ‘관광객’과 디올의 컬렉션에 나름 관심은 있던 ‘충성고객’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나는 디올 플래그십 스토어를 찾아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중국도, 일본도 아니다. 아시아 최대 매장 ‘하우스 오브 디올’이 다른 곳도 아닌 한국 서울 청담동 거리 한복판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위에서 누군가가 상자 속의 드레스를 꺼내는 형상의, 그리고 그와 동시에 디올의 시그니처 까나쥬 패턴을 더한 건축물. 세계적 건축자이자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크리스티앙 드 포르잠파르크가 4년 가까이 준비한 역작이다. 한참동안 건물 외관을 구경하고 만져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이라는 넓은 공간 속에서 층마다 서로 다른 테마의 디올을 만나보기 위해 발을 들였다. 각 층은 레디투웨어, 신발, 가방, 악세사리, 디올 옴므, 갤러리 그리고 꼭대기의 피에르 에르메 카페로 이루어져 있었다. 감히 뚫어져라 보기도 너무 아까운 드레스들을 넘어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엔 외관의 느낌과 유리의 재질을 적절히 융합시킨 계단이 있었는데, 그 감촉은 여느 건축물 속 계단과는 달랐다. 엠보싱보다는 덜 말랑거리면서도 유리의 차가움과 조화를 이루는, 알 수 없는 재질이 이 건축물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가방 코너에서는 디올의 새 부티크 오픈을 기념하는 한정판 레이디 백이 전시되고 있었다. 건물의 외관에 가득했던 카나쥬 패턴에 꽃무늬가 더해진 백, 그리고 한국의 상징으로 ‘추정되는‘ 호랑이 모양의 키링까지.

  5층에서는 디올의 레이디 백을 기본 틀로 삼아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디올의 정신을 표현한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도슨트도 있었기에 작품 하나하나 설명을 자세하게 들으며 디올의 재탄생을 눈앞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한 층이 빼곡하게 디스플레이된 작품들을 통해 지금껏 꽁꽁 숨겨져 있던 레이디 백이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일탈을 맛보는 그 순간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다. 모던과 클래식의 만남이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 이곳의 갤러리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피에르 에르메 카페로 향했다. 특이하게도 5층과 6층은 계단으로 연결되어있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왕래할 수 있는 구조였다. 덕분에 스테인리스와 철의 느낌으로 가득해 건물 구석구석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엘리베이터에서 잠깐이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대단한 곳에, 시간의 벽을 뚫고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내렸을 땐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저녁 시간이 지난 터라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할 때였는데, 카페 바깥의 테라스에서는 거대한 테슬로 만들어진 파라솔이 바람에 따라 스으으 소리를 내며 춤을 췄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부 직원들과 도슨트 모두 건물의 내부에 대한 설명에만 집중했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디올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관심보다는 유니크한 건축에 대한 흥미가 더 컸기에 방문한 것이었는데도, 외관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줄도(!) 듣지 못해 실망스러웠다. 기계로 찍어낸 듯이 사각형으로 가득한 청담동의 건물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하늘하늘한 이 건물을 그저 눈으로만 보고 넘기기엔 디올의 드레스 라인이 너무나 아름답다. ‘예쁘니까 들어와 보세요’라고만 하지 않고 이 건물 구석구석의 예술적 특징에 대해 알려준다면 더 훌륭한 브랜드 마케팅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