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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12월 31일, 타임스퀘어수능대신 세계일주
박웅 칼럼니스트  |  qkrdndwk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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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9  22: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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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를 경유해 뉴욕으로 가는 길은 멀기보다 추웠다. 비행기에서 자다가 추위에 깨기를 반복했고 경유지인 시카고에서는 몇 시간 뒤 도착할 한 겨울의 뉴욕이 어떠할 런지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미국의 동부는 그렇게 서부와는 온도부터 달랐다.

 

매년 연말이 되면 전 세계 유명 관광지들의 숙박비가 폭등한다지만 그 가파름이나 수위에 있어 뉴욕을 따라잡을 수 있는 곳은 몇 되지 않는다. 매해 12월 31일 타임스퀘어에서 개최되는 뉴이어스 이브 볼드롭 행사는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신년 맞이 이고 누구든지 한 번 쯤은 그 현장에서 새로운 한 해를 반겨보고 싶을 테니까. 나의 경우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두 달 전에 그나마 싸다고 찾은 호스텔의 10인실 도미토리 가격이 하룻밤에 75달러라는 사실이 경악스러웠을 뿐이었다. 뉴욕에서의 새해는 그럴 듯 해보였고 평생에 한 번은 해봄직 했지만 값비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의 뉴욕을 고집한 이유는 그 모든 비용을 감수할 만큼 그 때의 뉴욕이 특별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호스텔을 찾아나섰다. 뉴욕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지하철인 뉴욕 메트로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지금 이 곳에 있다는 사실로 인한 묘한 흥분감이 들었다. 그 흥분감이 다소 쑥스럽고 진부하게 느껴졌지만 뉴욕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룻밤에 무려 75달러나 하는 호스텔은 썩 나쁘지 않았다. 침대 매트리스도 두꺼웠고 무엇보다 뜨거운 물이 잘 나온다는 데에 큰 점수를 주었다. 한 겨울 뉴욕에서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주인이 다소 불친절해서 기분이 나빴지만 어쨌거나 크로스백을 챙겨들고 다음 날 행사가 있을 타임스퀘어로 사전답사를 나갔다.

 

타임스퀘어 역은 언제나 붐비지만 그 유난스러움은 이 시기에 더하다. NYPD는 곳곳에서 질서 유지와 행사 준비, 그리고 내일의 일정과 가는 길을 물어보는 관광객들의 질문에 답해주기 바쁘고 방송사의 스태프들은 무대와 카메라 설치로 정신없다. 누구보다 들뜬 이들은 내일 하루를 위해 비싼 숙박비를 감수하며 전 세계에서 뉴욕으로 날아온 관광객들이다. 사진을 찍고 경찰에게 내일 몇 시까지 오는 것이 좋을지 물어보고 그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경찰의 답을 듣고 또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 해가 마무리되는 연말 특유의 흥분감과 그 흥분의 시간에 뉴욕에 있다는 즐거움이 공존했다.

   
▲ 타임스퀘어는 북적이고 또 북적였다.

 

밤새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날아온 탓에 타임스퀘어를 둘러보는 정도로 만족하고 다시 호스텔로 향했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일의 일정이 고단할 게 분명했다. 12월의 타임스퀘어에서 10시간 이상 기다리는 일이 썩 편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미 서부와는 차원이 다른 동부의 추위를 처음으로 체감한 날이라 더더욱 그랬다.

 

다음 날 아침 10시 타임스퀘어로 향하자 그 곳은 이미 경찰의 긴장과 관광객의 흥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아침 10시는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문제는 앞으로 남은 14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였다. 어디로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고 가방에는 바나나 몇 개를 챙겨 넣었지만 그 보다 무서운 것은 뉴욕의 추위와 새해 카운트다운까지 남은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은 본능적으로 주변의 모두를 친구로 만들어주었다. 모두들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14시간은 그렇게 보내기에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나마 맨 앞줄은 덜 지루한 편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방송사의 스태프들과 뉴욕 경찰, 그리고 순간을 위해 기나긴 기다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인터뷰이들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맨 앞줄에 있었던 덕에 무려 3번이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뉴욕에 오게 되었는지, 지금 이 순간 타임스퀘어에 있는 기분이 어떤지, 새해 소망은 무엇인지 같은 질문을 카메라를 든 인터뷰이들이 반복했고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하지만 거의 비슷해 보이는 답변을 들뜬 채 내놓았다.

 

잔뜩 신경이 곤두선 경찰들이 연신 ‘도미노!’, ‘피자!’를 외쳐대며 타임스퀘어 안으로 들어오려는 도미노 판매원들을 쫓아내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이러쿵저러쿵하기도 하고 (미디움 피자 한 판이 30달러였다는 사실은 특수한 상황에서 가격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였다.) 이따금씩 주머니에서 얼어붙은 손을 꺼내어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지만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5시간여가 흐르자 타임스퀘어의 유명한 전광판들이 정신없이 뱉어대는 광고의 패턴들이 읽히기 시작했다.

 

양말을 세 개 이상 덧신고 오지 않은 것이 뼈저리게 후회되었으며 맨해튼의 2014년 마지막 날 아침을 감싸던 왁자한 기운은 점점 펜스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시간을 때우고 있는 사람들의 무료함과 투덜거림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오후 5시쯤이 되자 설치된 스피커들에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어쨌거나 연말이었고 모두가 축제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음악은 지치고 늘어져 있던 타임스퀘어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Welcome to New york’이 나오자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 무언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이 도시는 말했죠. 뉴욕에 온 걸 환영해.’

   
▲ 전역의 방송사 스태프들은 긴장과 흥분으로 분주하다.

 

   
전광판들은 한 해의 일들을 쏟아낸다,
   
맨 앞 줄은 분주한 사람들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덜 지루한 편이다.

 

올해 축제의 헤드라이너 중 하나인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는 정말이지 이보다 지금 여기, 12월 31일의 타임스퀘어에 어울리는 가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잘 어울렸다. 뉴욕은 그렇게 센스있는 선곡으로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단순히 스피커를 체크하기 위함이었는지 음악은 잠시 후 꺼졌고 군중은 ‘We want Music!’을 소리 높여 외쳤지만 음악은 다시 흘러나오지 않았다. 잠시 웅성거리다가 다시 공기는 막연한 기다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되는 6시가 머지않은 찰나였다.

 

6시가 되었다. 광고와 신년 축하 메시지를 송출하던 빌딩 위의 대형 전광판은 TV 화면으로 바뀌었다. MC가 드디어 2014 뉴이어스 이브 볼 드롭의 시작을 알렸다. 오랜 기다림이 절반의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온전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6시간이 더 필요했다. 축제의 스폰서인 코스모의 분홍모자와 중국의 붉은 목도리가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스태프들은 거대한 바퀴 달린 바구니에 모자와 목도리를 잔뜩 담아와 던졌고 여기저기서 받지 못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마침내 시작된 이 행사가 달아오르는 와중 화면에서는 끊임없이 영상이 흘러나왔다. 올해 축제의 특징과 의미, 지난 1년 동안 지구촌을 들썩이게 한 사건들이 반추되었고 간간히 누구인지 모를 유명인들이 한 해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정말 1년이 가고 있었다. 정말로 2014년이 가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한 해와 함께 넘어가고 있었고 이 행사가 끝난 후에는 가끔씩 몇몇만이 그 일들을 진지하게 뒤돌아 볼 터였다.

 

   
▲ 저 스크린 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들떠 있었다. 나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지구는 거대했기에 2015년은 모두에게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은 이미 새해를 맞이했을 터였다. 런던, 카이로 등등 뉴욕보다 먼저 새해를 맞이하게 된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카운트다운이 방송 중간 중간에 끼어들었다. 2015년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뉴욕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8시가 넘어가자 타임스퀘어는 더욱 번잡하고 화려해 졌다. 매 시간이 지날 때 마다 터지는 폭죽은 점점 더 커졌고 스피커에서는 2014년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유행곡들이 울려 퍼졌으며 10시가 넘어가자 종이가루와 거대한 풍선들이 분위기를 더했다. 무작위로 선택된 것인지 사전에 협의된 것인지 운 좋게도 단상 위에 오른 사람들은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소망을 말하기도 했으며 사랑고백을 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을 통해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흔하지 않은 것 이었다. 1년 뒤 이날 저 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현재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지금 지구에서 가장 들뜬 현장에 있었으니까.

 

11시가 되었다. 사실 드디어 새해가 밝아온다는 설렘보다는 빨리 카운트다운을 보고 이 현장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하게 들었다. 현실은 현실이었다. 이미 13시간 남짓을 추위 속에서 기다린 차였고 1시간 뒤면 드디어 끝이라는 생각이 나를 더 들뜨게 만들어 주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카운트다운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으로 들뜨는 건지 10분 씩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는 커져갔다. 물론, 세상의 많은 일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 순간은 인상 깊었지만 덤덤하게 찾아왔다. 11시 59분이 되었고 60초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소리 높여 함께 숫자를 세었고 전광판의 숫자가 1에서 0으로 넘어가는 순간 폭죽과 종이가루가 머리 위로 흩뿌려졌다. 함께 긴 시간을 버텨준 주변 사람들을 껴안으며 해피 뉴이어를 외쳤다. 키스를 하는 연인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본 적 없는 사람이고 보지 못할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이 선사하는 유대감을 통해 우리는 진심으로 당신의 새해가 행복하기를 빌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였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시간은 흘렀고 나는 뉴욕에 있었다. 헛되지 않은 한 해였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채 15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강력한 현실의 자장으로 빨려 들어가야만 했다. 우선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매해 이런 식의 교통정리에는 이골이 났을 NYPD가 아니었다면 모두가 무사히 타임스퀘어를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타임스퀘어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 으로 향하는 데에만 40분은 걸렸고 입구에서 지하철을 타기까지도 족히 30분은 넘게 걸렸다. 한 해의 마무리는 더할 나위 없이 휘황했지만 한 해의 시작은 복잡하고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문자 그대로 인파(人波)를 뚫고 호스텔에 도착하자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방은 텅 비어있었다. 다들 클럽이든 어디든 제 나름대로 새해를 축하할 만한 곳에 있었다. 외지의 10인실 도미토리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눕자 정신이 들었다. 평생에 한 번은 꼭 해볼 만한 일이지만 누군가가 뉴욕 왕복 항공권을 준다 해도 두 번은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 1월 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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