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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의 세월을 만지다
이준건 칼럼니스트  |  dlwnsrjs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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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7  17: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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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에 놀러왔을 때, 제주도에는 세 가지의 흔한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바람, 여자, 돌. 짜고 끈적거리는 바람이야 제주도를 돌아다니는 동안 많이 느꼈고, 그 말을 하는 어머니 옆으로 길게 늘어진 돌담길을 보며 돌이 많다는 말도 참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여자는? 글쎄, 어린 시절이라 여자가 많다는 말에 '진짜로' 확인은 안 해 보고 그냥 수긍했던 것 같다.

 

성인이 돼 다시 찾은 제주 공항. 렌트카를 빌려 제주시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삼다도에 관한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비가 추슬추슬 내리는 것이 불든 말든 바람은 그저 짜증만 더할 뿐이었고, 콘크리트 건물들로 가득한 시내에서 돌이 참 많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다만 여자가 많다는 말은 공감할 수 있었더래나. 렌트카를 빌리는 장소에서부터 가는 관광지마다 여행 온 여성들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으니.

   
▲ 법환동 어딘가에서.

그러던 중 법환동을 찾았다. 지인의 추천으로 제주의 향취를 느끼기 위해 찾아간 곳이련만, 속된 말로 '시골 포구'나 다름 없었다.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보이는. 아, 당연히 그 바다는 당신이 꿈꾸는 그런 바다가 아니었다. 주민들이 실제로 일을 하는 노동의 장소로서의 바다. 게다가 길이 좁고 구불구불해서 차를 끌고 다니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좁은 골목을 지나갈 때면 '제발 아무 차도 들어오지 말아라'라고 혼자 간절히 기도하곤 했을 정도니 말이다. 결국 가까운 거리는 가능한 한 걸어서 다니게 되었다.

   
▲ 법환동 골목길.

하지만 그렇게 걸어다니다보니 예전에는 미처 관찰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겠지만, 바로 '돌담의 색깔'이 그것이다. 자가용을 타고 씽씽 다닐 때야 돌담의 색깔이든 아무래도 좋았지만, 걸어서 마을을 돌아다니려니 조금씩 색깔이 다른 돌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강렬한 색깔로 페인트칠해진 그런 돌담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색깔 말이다.

   
 
   
▲ 법환동 골목길에 묻어있는 시간의 흔적.

아침이라 그런지 동네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사진기 하나를 들고 동네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이곳이 나의 동네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호기심에 돌담 하나를 손으로 지긋이 눌러보았다. 차갑고 딱딱했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살짝 축축하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그러나 이제는 (너무 유명한 나머지) 잊혀지고 있는 평범한 돌담길을 직접 손으로 만져 보고 사진으로도 열심히 남겼기 때문일까.

   
▲ 범섬의 풍경

법환동에서 볼 수 있는 멋스러운 풍경을 하나 더 꼽자면, 돌담 사이사이에 비치는 범섬의 풍경이다. 성산 일출봉을 닮은 범섬은 동네의 고도가 높지 않은 편이라 어디를 가든 잘 보인다. 물론 안개 때문에 살짝 희끄뭇하게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잠깐이었지만 어느새 정든 마을을 떠나가며 이곳이 가진 여유로움을 부러워했다. 무엇보다 흐르는 세월에 굴하지 않고 우직하게 서 있는 저 돌담들이 부러웠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에 의해 허물어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서울의 화려함도 좋지만,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듬직하게 서 있는 돌담들도 좋다. 시간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법환동의 돌담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 속에 은근한 평온함을 준다.

 

법환동/제주도 서귀포시 법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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