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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피어난 화가 프리다 칼로
장예진 칼럼니스트  |  tjssu22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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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3  22: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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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 매거진=장예진] (자화상; 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 자화상을 그리기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 되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그려 넣을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적인 모습과 함께 그만의 심리적 상태와 내면의 풍경을 담는 것이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여성작가 프리다 칼로는 아주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녀만의 자화상을 완성한다.

 절망에서 피어난 화가 프리다 칼로

   
▲ 프리다칼로(1907.7.6~1954.7.13)

 과연 어떤 날들이 반복되었을 때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할까? 아마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반복된다면, 또 그 결과가 살아가는데 고통스럽다면,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런 날 들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내가 없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18살 칼로가 한 말이다. 세상을 다 알기엔 아직은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던 그녀는 교통사고로 인해 버스 난간의 창살이 몸을 관통하는 사고를 겪는다. 살아난 것이 기적일 정도로 엄청났던 사고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온 몸이 깁스로 칭칭 묶인 채 9개월을 꼬박 누워있었던 그녀는 자신의 몸은 다친 것이 아니라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신체에서 멀쩡한 부분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예술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팔과 손뿐이기에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던 칼로는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고, 그것이 가장 순수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것도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오는 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고통은 그녀의 삶을 항상 따라다니며 괴롭혔고 그 때마다 그녀는 더욱 작품에 열중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칼로는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키기 위해 밝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고찰하는 진솔한 내면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 부서진 기둥, 1944, 캔버스에 유채

 그녀를 괴롭힌 것 중 하나는 척추였다. 걷기위해 수차례를 걸쳐 진행된 척추수술은 그녀가 살아가는데 있어 큰 장애물이었다. 부서진 기둥을 그릴 무렵 척추의 고통이 극심했고 칼로는 제작된 코르셋에 의지하며 생활을 했다. 황량한 사막위에 덩그러니 있는 칼로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모습이다. 칼로의 몸에는 수많은 못들이 박혀 있고 그녀의 상반신을 지탱하고 있는 척추는 금이가고 부서져 있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지만 캔버스 속 칼로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치마를 부여잡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녀 이외의 어떤 누구도, 그리고 심지어 그녀조차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 부상당한 사슴, 1946,섬유판에 유채

 숲에는 부러진 나무가, 숲 너머에 보이는 바다에는 천둥번개가 치고 있다. 어느 하나 평화로운 것 없는 풍경 속에 칼로의 얼굴을 한 여린 사슴 한 마리가 화살에 맞은 채 숲을 뛰어다니고 있다. 고통 속에서 벗어나길 바라지만 끊임없이 찾아오는 아픔은 그녀를 좌절시켰다. 이러한 상황에 칼로는 자신을 한 마리의 사슴으로 표현했고 그 고통을 주위의 풍경과 등에 꽂힌 화살 등을 통해 나타냈다.

끊을 수 없는 애증의 관계 디에고 리베라

 칼로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디에고 리베라이다. 그는 당시 유명한 민중미술가 이자 칼로의 예술이 빛을 볼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이다. 칼로는 21살이나 차이 나는 리베라에게 마음을 뺏겼고 그 둘은 결혼을 하였다. 칼로는 그녀 자신 보다 리베라를 사랑했지만 결코 리베라는 칼로 자신의 것이 되지 않았다. 리베라는 칼로의 여동생과도 불륜을 저지를 정도로 여성편력이 심했고 칼로를 깊은 배신감과 절망에 빠트렸다.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18살 때 이후에 겪는 두 번째 대형 사고라고 표현했지만 결코 리베라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못했다. 끊을 수 없는 애증의 관계인 리베라에 대한 자신의 진실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칼로는 리베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캔버스에 옮겼다.

   
▲ 테후아나 여인으로써의 자화상, 1943, 압착목판에 유채

 리베라에 대한 강박적인 사랑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칼로의 이마에는 리베라가 새겨져있 다. 이는 한 번도 그에 대한 생각을 지운 적 없는 그녀의 상태를 짐작케 한다. 이미 그 둘은 서로의 분신이며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그녀가 캔버스 속에 착용하고 있는 테후아나 머리 장식과 의상의 순백색은 정신적 순결함과 고귀함을 나타내고 있다.

   
▲ 두 사람의 프리다, 1940, 캔버스에 유채

 칼로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 또 다른 칼로를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하고 있었다. 칼로는 이러한 분열적인 상태를 드러냄으로써 리베라로 인해 처한 그녀의 상황을 표현했다. 그 둘은 같은 동맥으로 이어져 있는데 오른쪽에 위치한 칼로는 리베라의 사랑을 받았을 때이고 왼쪽의 칼로의 동맥의 끝이 가위로 잘라져 있는 모습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시기는 그녀가 리베라에게 버림 받았을 때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칼로는 마지막 일기를 남기고 47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많은 시련을 겪었기에 그녀에게 있어 결코 짧은 인생은 아니었을 것이다. 삶의 반을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칼로의 작품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순수한 꽃과도 같다.

 프리다 칼로의 전시가 소마미술관에서 6월6일부터 9월4일까지 열린다. 서울의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어디론가 가고 싶다면, 소마미술관을 방문해 프리다 칼로의 삶을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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