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2006

[디아티스트매거진=박슬기] 말을 안하는데 어떻게 알아! 내게 연애 상담을 하던 남자사람친구에게도, ‘그러게, 답답하겠다’ 고 동조했지만 사실 나도 그 남자사람친구의 연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여자였다. 여자들은 정말 왜 그럴까.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고, 잊은 척 하면서도 다 기억하고 있다. 진짜 상처받은 일은 입으로 내뱉을 수가 없다. 이 일로 상처를 받은 내 자신을 인정하기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 일로 ‘진짜’ 상처를 받은 나를 알면 떠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남자 그랜트는 사랑하는 여자 피오나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서 결혼했다. 하지만, 어쩌면 결혼은 이 남자 혼자만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피오나는 (그랜트의 결혼목적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남편과 매일 혼자 이별했고, 그러나 다행히 매번 재회했으며, 그녀는 그 반복되는 재회에 안도했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여자는 알았고 남자는 몰랐다.
 

보통의 여자들이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 감정소모와 싸움을 일으키는 반면, 피오나는 감추면서 고고함을 유지한다. 요양원 간호사가 그런 말을 한다. she is a lady. 그녀는 정말 그러하다. 병세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녀는 고급스럽다. 그리고 요양원으로 완전히 떠나기 직전에 우아하게 펀치를 날린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당신은 내게 돌아왔지.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당신은 나은 편이야. 감사해.’ 그 조용한 한 방은 그랜트를 즉각 후회하게 만든다. 그러나 피오나는 우아하게 남편을 남편이 아닌 다른 낯선 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남자는 자신을 잊어가는 여인을 보며 이것이 혹시 지난날에 대한 복수인 척 꾸미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글쎄. 사랑은 잘못했다고 떠나는 일이 없다. 단지 사랑이 떠날 때 자신의 잘못을 떠올릴 뿐.
 

인간의 사랑은 참 이상하다. 이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으로 더 강렬히 파고든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떠한 대상이라기보다 대상이 지금 내 곁에 없는, 즉 부재하는 상태에 가깝다. 부재의 공기를 조금이라도 손에 잡아보고자 제도로 서로를 묶어두려고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영원히 잡아두는 것에 반드시 실패한다. 누군가 말했듯,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별이 우리를 찾아낸다.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이 극대화되는, 인간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